장향숙-조국 위원이 말하는 인권위 파문의 전말은?

"MB정부, 촛불 이후부터 인권위를 정파적으로 이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상임위원 2명의 동반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어 직원들이 내부 게시판에 성명서를 올리는 등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 인권위 운영 방식으로 인해 인권위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인권위의 위상이 상당히 악화됐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현 위원장 취임 1년 3개월여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프레시안>은 조국 비상임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과 장향숙 상임위원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조국 비상임위원 "이명박 정부, 인권위 판단을 정파적 공격으로 이해"

▲ 조국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상임위원들이 사퇴를 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현 위원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인권위의 기준이 변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도 인권위는 인권의 관점에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당시 정권에서는 인권위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 판단하고 내버려뒀었다. 당시 인권위는 이라크 파병, 경찰의 농민 강경 진압 등에서 여러 차례 권고안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가 촛불 정국 때 논평을 낸 뒤부터 정부에 대한 비판적 권고나 의견을 내면 자신에 대한 정파적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보였다. 인권위가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국제인권법임에도 현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틀어졌다고 생각한다.


-촛불 정국 이후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의 정부 눈치보기가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새 위원장은 취임부터 스스로를 인권 전문가가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부담되는 권고는 하지 않으려 하고 미루려는 일련의 모습을 보여 왔다. 사표를 낸 상임위원들은 그런 위원장의 모습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회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다.

상임위원들은 몇 번 위원장과 부딪치고 사표를 내려 했지만 주위에서 말려 여태까지 왔다. 하지만 상임위원들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상임위원의 권한을 빼앗는 상임위 운영 규칙 개정안을 전원위에 상정한 것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다. 현 위원장은 이들의 임기가 남은 이상 이들이 연말까지 상임위에서 수차례 더 권고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 이들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의도로 개정안을 전원위에 상정했다고 생각한다.

상임위원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기에 결국 문제(사퇴)를 크게 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은 직원들도 다 알고 있었기에 게시판에 성명서도 발표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현 위원장은 인권위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직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런 게 복합적으로 곪아있다 이번에 터진 셈이다.


장향숙 상임위원 "민주화로 생긴 인권위, 인권위 후퇴는 민주화 후튀"

▲ 장향숙 상임위원. ⓒ연합뉴스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이런 일을 겪었다.

10월 11일 선임된 뒤 가진 첫 상임위에서 그간 상임위가 얼마나 파행적으로 진행됐는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상임위에서 상임위원들은 성폭력범 화학적 거세법과 관련한 권고안을 재상정해 폭넓게 논의하자는 의견을 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그 안건을 전원위로만 가져가려 했다.


상임위 이후 상임위 운영규칙 개정안이 나왔고 그 내용을 보니 모든 안건에 대해서 상임위를 무력화하려고 한다는 것 밖에 다른 의도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미 위원장은 상임위가 의제를 상정할 수 있는 권한도 빼앗아 갔었다. 거기다 상임위 의결권조차 빼앗아 버리겠다니 상임위원들이 사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인권위 직원들이 현병철 위원장 관련 비판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현재 인권위에서는 바른 목소리를 내려 해도 눈치를 봐야 한다. 마음이 있어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오늘 발표된 성명서는 인권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현 문제를 심각하고 참기 어려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두 상임위원이 내몰리는 상황을 보면 참담하고 아픈 마음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위가 만들어졌는데 인권위의 지금 상황을 보면 되레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문상

결국 이번 사퇴와 성명서 파문은 쌓일만큼 쌓은 현병철 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구체적 행동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부터 인권위 조직 축소 등을 통해 힘 빼기에 나섰고, 안경환 전 위원장은 임기를 4개월 남겨두고 사퇴했었다.

당시 홍보대사였다 안 전 위원장과 함께 인권위를 떠난 작가 공지영 씨가 이번 사퇴 파문을 두고 자신의 트위터에 "문경란 상임위원은 한나라당 추천으로 인권위원이 돼 합리적인 보수로 인권위에서 훌륭한 역할을 했는데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 했다"며 "앞으로 인권위가 어디로 갈지 정말 걱정"이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안경환 전 위원장은 퇴임하면서 "정권은 유한하지만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다. 현병철 위원장의 임기는 2012년 7월. 인권위 주변에서는 "인권위가 파문과 내홍을 겪으며 조직에 큰 상처를 입어 정권이 바뀌기도 전에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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