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케이블카 설치 규제 완화…전국 산에 '난립 위기'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으로 '난개발' 빗장 풀어줘

정부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함에 따라, 전국 산에 케이블카가 난립해 자연 경관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게 됐다. 당장 케이블카 설치 '0순위'로 꼽혔던 설악산 로프웨이(케이블카) 사업 역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장거리 케이블카' 난개발 시작되나

기존 자연공원법 시행령은 국립공원 등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연장을 2㎞ 이내로 제한하고, 정류장의 높이도 9m로 규제하고 있었다. 이는 '장거리 케이블카' 신설을 금지해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제성을 내세워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을 막는 제동 장치 역할을 해왔다.

▲ 경상남도 통영시에 위치한 미륵산 케이블카의 모습. ⓒ뉴시스

그러나 지난 20일 강원도에 따르면, 국무회의에서 대폭 완화된 내용의 자연공원법 시행령이 통과됐다. 시행령의 거리 규제는 2㎞에서 5㎞로 완화됐으며, 정류장도 15m까지 높일 수 있게 됐다. 케이블카 신설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규정이 풀려 사실상 '난개발'의 문턱을 열어준 셈이다. 환경부는 이명박 정부 들어 케이블카 규제 완화에 발 벗고 나섰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개정안 통과로 가장 먼저 혜택을 본 곳은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 중이던 오색로프웨이 사업이다. 양양군 서면 오색지구와 설악산 관모능선 구간을 연결할 계획인 오색로프웨이는 총 연장이 4.73㎞에 달해 그간 사업 착수에 어려움을 빚어왔지만, 이번에 '2㎞ 거리 기준'이 풀림에 따라 탄력을 받게 됐다.

당장 강원도와 양양군은 관련법이 개정됨에 따라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주익 강원도 관광진흥과장은 20일 "오색로프웨이는 침체된 설악권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설치단계에서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공기를 최대한 앞당기고, 인근의 온천·박물관·호수·바다 등 관광명소와 연계한 특별 관광 상품을 출시하는 등 로프웨이 설치·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단체 반발…"환경부가 앞장서 국립공원 관광지로 전락시켜"

지난해 5월 환경부가 케이블카 설치 기준을 완화한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한 이후, 지자체들은 앞다퉈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왔다. 당장 설악산 외에도 지리산·한라산·북한산·속리산 등 국립공원 20곳 가운데 절반가량인 9곳에서 모두 17개 노선 설치가 논의 중인 상황이다.

환경부는 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국립공원위원회가 케이블카 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난립 위험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으로 일단 장거리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해진데다가, 자연보존지구 내 숙박시설까지 허용되면서 국립공원 내 대규모 개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 지난해 6월 녹색연합·설악녹색연합 회원들이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훼손된 대청봉 정상에 다시 녹색이 자리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녹색 천으로 정상 주변을 덮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연합뉴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은 "이명박 정부는 1967년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래, 자연보존지구에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자연공원법을 개정한 최초의 정부가 되었다"며 " 환경부가 앞장서 국립공원을 관광지로 전락시키고, 민족의 영산에 철탑을 꽂는 한심한 일"이라고 반발했다.

또 "이제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설치 규정이 완화되었으니 국립공원을 개발하려는 세력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라며 "설악산, 북한산을 신호탄으로 전국의 명산에 케이블카 건설 움직임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 뻔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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