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지인은 출산을 하고 나서 고열을 내린다며 산부인과 병원에서 등에 얼음 찜질을 했단다. 그는 그때부터 뼈를 파고드는 냉기를 이기지 못해 한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뜨거운 찜질을 하는 바람에 신랑과 각방 생활을 한다. 아마 독자들 중에도 산후 조리를 잘 못한 탓에 평생 고생한다며 푸념하는 여성을 주변에서 봤을 것이다.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현대 의학과 한의학 사이에 차이가 있다. 현대 의학에서 분만은 아기를 낳는 과정이다. 수축이 시작돼 자궁목이 확장되는 단계, 아기가 나오는 단계, 태반이 나오는 단계, 이렇게 3단계로 구분해 기계적으로 설명한다. 그 이후의 단계인 출산 후 조리 과정을 놓고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조적으로 한의학은 산고를 겪고 나서 산모의 건강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출산에서 산모의 몸은 비유를 하자면 뜨거운 여름과 같다. 태반 속의 태아를 있는 힘껏 밀어내다 보니 근육도 늘어나고 인대도 늘어나고 심지어 뼈와 관절마저 늘어난다. 골반이 늘어나면서 출산하는 과정을 보면 이런 지적은 더욱 생생하다.
출산 후 조리 과정은 이렇게 이완된 신체 조직을 본래대로 수축시키는 과정이다. 출산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서, 이완된 조직에 필요한 것은 얼음이나 물이 아니라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보충하는 일이다. 출산 후에 산모의 몸은 퉁퉁 부어 있으면서 축 늘어져 있다.
수건이나 이불이 젖어 물기가 있으면 축 처진다. 축 처진 천을 본래대로 수축시키기 위해서는 물기를 짜내고 햇볕에 말려서 다리미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산 후 이완된 몸도 수분을 쫓아내고 열을 가해야 정상 상태로 수축하여 근육과 관절이 제자리로 천천히 돌아간다.
▲ 산후풍을 걱정해 산후 조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정말로 비과학적인 풍속일까? ⓒworldpress.com |
막 출산을 한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2세를 출산하기 위해 자신의 내부 혈액과 기운을 너무 많이 소모하여 내부 영양분이 빠져 나간 탓에 외부 온도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사지관절에 한기가 들어와 굳어지고 차가워지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출산한 여성이 산후풍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산후풍의 원인은 네 가지다. 첫째, 혈액이 모자라는 혈허형. 출산 시나 산후에 출혈이 과다하거나 평소 혈액이 부족한데 다시 출산해 경맥, 관절이 혈액 공급을 받지 못해 굳어지는 것이다. 둘째, 외감형. 산후에 몸이 허약하고 관절이 늘어난 상태에 감기처럼 차가운 기운을 만나거나 바람을 쐬어서 생기는 경우다.
셋째, 어혈형. 어혈형은 분만 과정에서 형성된 피 찌꺼기가 몸 안에 축적되어 도랑에 수초가 낀 것처럼 혈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다. 피부가 검푸른 색이거나 아랫배가 아프고 오로가 그치지 않는다. 넷째, 신허형은 부신의 기능이 떨어져 있는데다 출산이 인체에 많은 부담을 준 것이다. 신의 경락이 통과하는 허리 무릎 발꿈치에 통증이 잘 일어나고 귀에 소리가 나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경우다.
산후풍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약물은 익모초(益母草)다. 이름 그대로 부인들 특히 산모를 위한 약이다. 물가에서 잘 자라며 여름이 되면 시들어 간다고 '하고초'라는 별명도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흙도 타들어 가지만 물은 도리어 무성하다. 인체도 출산 시에는 열이 나고 진액을 소모하지만 부기가 생겨 물이 무성해진다.
익모초는 물가에 자라므로 부종을 내리며, 여름이 되면 수렴하여 시들므로, 몸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떠오르는 양기를 수렴한다. 그래서 전통 민속 풍속에는 유두(음력 6월 보름)에 익모초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유래가 있으며, 한여름 더위에 입맛이 없으면 익모초 생즙을 마신다.
당의 측천무후는 익모초를 갈아서 더운 얼굴을 서늘하게 만들고 촉촉한 윤기를 더하는 특효약으로 사용하였다. 막 태어난 아이의 가려운 피부염에도 열을 식히는 익모초 물을 달여서 목욕을 시킨다.
산후풍은 인체가 느끼는 고통 중 산고라는 가장 큰 부담을 겪은 이후의 질병이다. 꾸준한 관리와 주변 가족들의 배려가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산모의 고통을 감히 누가 안다고, 산후풍은 없다, 이런 소리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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