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능한국인' ㈜도암엔지니어링 오관준 대표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딛고 연 매출 82.9억 원의 제조 회사 일궈내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차례씩 통학하는 48세 늦깎이 대학원생이 있다. 뒤늦게 무슨 배움의 꿈이 그리 클까 싶어 물어 보니 오관준 ㈜도암엔지니어링 대표는 각기 다른 대학에서 최고경영자 코스 듣기만 벌써 세 번째란다.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9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힌 오관준 대표, 그는 "배우는 시간이 내겐 달콤한 휴식시간"이라며 웃었다.

4남4녀 중 셋째로 제주도에서 태어난 오관준 대표에게 밭일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보다 우선이었다. 식구가 워낙 많아 먹고 살아야 하니 싫어도 해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온 가족이 동참했지만 오 대표의 어머니는 해마다 봄이 오면 온 동네를 돌며 쌀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오 대표는 일찍이(초등학교 때) '대한민국 최고의 전기 분야 전문가'가 되겠다고 꿈을 정한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호롱불에서 전기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며 '전기'라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전기 알아가기'에 몰입한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제주도 한림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집은 제주도였지만 방향이 반대라 그는 뜻하지 않게 자취를 해야 했다. 덕분에 밭일 돕기를 안 해도 되니 공부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오 대표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 후 수업료가 저렴한 천안공업전문 대학에 입학한다. 전기 분야의 최고 전문인이 되려면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대학을 입학하게 된 것이다.

대학시절에는 오원면업(주)이라는 방직공장에 취직해 전기를 수리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다. 야간대학생이었던 그는 사장님의 배려로 저녁 수업 시간은 빠지지 않고 갈 수 있었다. 그때 번 돈은 생활비로 알차게 썼다.

대학을 마친 그는 천안에 '명전사'라는 전기공사업체 책임기술자로 취직을 했다. 1년간 경험을 쌓고 군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엔 바로 한국전기안전공사 제주지사에 기능직군 공채로 입사를 한다.



"최고 기술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고 취업 후에도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기술사 자격증을 빨리 따는 게 그 당시 목표였죠."

36살이 되던 해, 6번의 실패를 딛고 기술사 자격증을 따는데 성공했다. 오 대표는 자격증 취득 1년 후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2달 만에 ㈜도암엔지니어링이라는 서비스? 회사를 개업한다. 자본금 5000만원에 직원 6명이었다.

"그런데 웬 걸로. 개업한지 6개월 만에 전부 날라 갔어요. 수금이 가장 큰 문제였죠. 열심히 일해주고 수금이 안 되니 참 속상하고 막막했습니다."

회사 개업 후 3~4년간은 일해주고 돈 못 받기 일쑤였다. 직원들 급여 줄 돈도 없어 은행에서 빌려다 주기를 몇 번했다.

그때부터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구상에 매달렸다. 건축과 토목을 함께하는 전기 토털을 하면 좋겠다는 판단에 9년 만에 설계와 감리까지 추가하고 조경기계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이제야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입니다. 작년부터 매출이 늘었어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작년 매출82.9억, 직원도 현재 122명에 이른다. 현재 대형 건축 도로공사, 단지 개발 발전소 건설사업, 풍력발전에까지 손을 벌린 상태다.

"힘든 적이요? 많았죠. 왜 없었겠습니까. 몇 년간은 돈 버는 것은 고사하고 만날 까먹고 매일 야근에 사업한다고 술도 자주 먹으니 아내가 짐 싸들고 나가겠다며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지만 그땐 힘들었죠."

오관준 대표는 사업 철칙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 돈을 빌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힘들 때는 가족들에게 손도 벌리고도 싶었지만 악착같이 그 철칙을 지켜냈다. 약사 아내 덕에 집안 경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것도 사업에 올인 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됐다.

그가 사업하며 제일 힘든 점은 '좋은 인력을 구하는 일'이었다. 기능인이 많지 않은데다가 지역도 제주도이다 보니 인력난은 더 심했다.

"사회전반으로 기능인을 활성화 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공업계 교육 시스템도 빨리 바꿔야 할 것 같고요. 기술 교육은 기본이고 경제나 경영, 법 분야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교육도 필수로 받도록 해야 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기술만 배우니 사회에서 부딪히며 터득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길이 너무나 길고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오 대표는 2009년, 제주도에 있는 탐라대학교 토목공학과 야간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했다. 배움의 목마름 때문이었다. 제주 대학에서도 최고 경영자 과정을 이수하고 이번 학기부터는 서울 카이스트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학교별로 제각기 커리큘럼이 달라 도움이 많이 된단다

"요즘은 미래 산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 회사를 에너지 절약 전문 기업으로 키우고 싶은데….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싶습니다."

그는 얼마 전 근처 과학기술단지에 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해 땅 1500평을 매입했다. 카이스트 대학과도 공동으로 제주도에 연구중심 기업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회사를 키워 현재 고등학생인 두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인지 물었다.

"아니요. 제 사업체는 저희 가족의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회사입니다. 제 소유물이 아닌 직원들의 기업을 만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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