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핸드로, 점프슛! 잘했어, 그거야."
중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살다 한국에 온 손비비(42) 씨가 코트 위에서 일일이 동작을 보여가며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손비비 씨도 처음엔 선수였으나 농구를 가르치는 것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농구팀 이름은 '포위드투(ForWithTo) 글로벌마더스'.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 11개국 출신 이주 여성 30명이 모인 농구팀이다. 이미 유소년 팀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 엄마가 대부분이다. 미국 자선단체 포위드투재단의 도움을 받아 창단했다.
30~40대 여성이 대부분인 이 팀은 상당수가 농구를 처음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나타샤 씨도 있다.
그녀가 한국에 온 것은 21살인 2006년 1월이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취업해서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한국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한국 교회에 다녔던 나타샤 씨는 어느 정도 우리말을 알고 있었다. 나타샤는 고려인 3세다.

한국은 좋은 나라, 다만 경쟁구조는 여전히 어려워
나타샤 씨에게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병원이나 음식점 등 인프라가 잘 돼 있는 곳이다. 안전하고 치안도 잘 관리된다. 한국인과 결혼해 자녀를 한 명 두고 있는 나타샤는 아이를 키우면서 한국이 더 좋아졌다.
반면, 한국 특유의 경쟁구조는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타샤 씨가 보기에 한국은 아이를 뱃속에서부터 이것저것 신경 쓰고, 경쟁구조에 들어가는 사회다. 나타샤 씨가 자녀를 키우면서 만났던 한국 부모들 상당수가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자살률 1위인 나라 아닌가.
최근 다시 시작한 일에서도 경쟁이라는 키워드는 빼놓을 수 없다. 가정폭력을 당한 이주여성을 돕는 상담센터인데 이곳에서 통·번역 일을 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이혼소송을 할 경우, 진술서를 번역하는 일 등을 한다.
주목할 점은 여기서 실적, 즉 하는 일의 건수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센터 측에서는 이를 매우 강조한다. 가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한국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존재
지금은 많이 줄었으나 신기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몇 년 한국에서 살았느냐 등 질문이 언제나 이어진다.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았으나 여전히 질문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불편한 시선도 존재한다. 러시아나 구소련 국가에서 '이상한' 일을 하러 오는 외국인 여성이 존재하다 보니 자신에게도 그런 색깔이 덧씌워 질 때가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 한국 매체에는 외국인 다문화 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등장했다. 나타샤 씨는 그런 시선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여러 이유로 나타샤 씨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못한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려인 3세인지라 러시아인처럼 금발에 파란 눈도 아니다. 승무원일 때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러시아 말을 왜 이렇게 완벽하게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정작 나타샤 씨는 그 회사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나타샤 씨는 자신을 '러시아-한국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단순히 어떤 언어를 쓰느냐, 혈통이 어디냐만을 따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일종의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나타샤 씨는 한국에 뿌리를 내린 지 오래다.
일하는 워킹맘의 해방구는 농구
그런 나타샤 씨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농구다. 한국농구발전연구소가 창단한 ‘포위드투(ForWithTo) 글로벌 마더스'라는 팀에서 선수로 활동 중이다. 나타샤 씨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서울 용산구문화체육센터 체육관에서 농구 훈련을 받고 있다.
아직 농구 룰도 잘 모르고 경기에도 나가본 적은 없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외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오롯이 나 자신, 즉 나타샤라는 존재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의미가 크다.
농구팀에서는 누구의 엄마로 불리지 않고 본인 이름이 불린다. 자신도 다른 선수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런 개개인들이 모여 밥도 먹고 수다도 떠는 시간은 한국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좀처럼 맞닥뜨리지 못했다.
경기 성적은 좋지 않다. 6번 경기를 치렀고 6번 모두 패했다. 사실 이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일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주일에 2시간 시간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 농구 실력이 붙더라도 개인 상황에 따라 팀을 떠나는 이들도 상당하다. 새 선수가 들어오면 처음부터 다시 연습하는 식이다. 이들 팀이 승리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렇게 농구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1승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10월에는 다시 대회가 열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pQy3EXZy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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