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다 일어나 '난 여자야' 하지 않는다"
2020.02.09 11:33:58
[인터뷰 下] 트랜스젠더 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트랜스젠더' 이슈가 최근 몇 주를 휩쓸었다. 미디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트랜스젠더는 군인으로, 대학 입학을 앞둔 수험생으로, 그리고 변호사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한다. '트랜스젠더가 불편하다'고. "트랜스젠더 여성이 어째서 여성이냐"는 혐오 섞인 말부터 "머리 기르고 치마 입으면 여자냐" 등 칼날 같은 조롱을 쏟아낸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A 씨’는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A 씨가 관심을 모으며 덩달아 실검에 오른 한희(본명 박한희) 변호사. 처음 A 씨의 숙명여대 합격 사실이 알려졌을 때 A 씨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희 변호사의 글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한희 변호사는 그런 A 씨를 통해 다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소수자들은 그렇게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용기가 된다. <프레시안>이 7일 서울 은평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한희 변호사를 만나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이슈를 짚어봤다.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 한희 변호사가 7일 서울 은평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최근의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라고 불린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다. 변호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한희 : 최초라는 타이틀을 좋아하지 않는다.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라고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전에 다른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느 연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전체 인구의 0.3%라고 한다. 변호사가 2만 명인데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트랜스젠더가 저 하나일까 싶다.

'트랜스젠더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드러난 사람이 저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자꾸 불리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이 트랜스젠더를 대표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트랜스젠더지만 저와 다른 분들도 굉장히 많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회사도 다녔었다. 트랜지션을 하기 전이었다. 정체성을 감추고 사는 게 힘들었다. 평생 이렇게 감추고 만은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일반 회사원이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바로 해고당하거나, 아니면 해고를 강요당하게 되는데, 자신을 지켜낼 수단이 없다. 그에 비해 전문직은 그럴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게 정신과 의사랑 변호사였다. 제가 가진 기술과 지식으로 저와 같은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둘 다 트랜스젠더가 많이 찾는 사람들인데 그에 비해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의사는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서 변호사를 택했다.

프레시안 : 변호사가 되시고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 들어갔다. 희망을만드는법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변호사 활동 하면서 성소수자들을 많이 도와 주었나.

한희 : 로스쿨을 졸업한 2017년부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주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저희 희망을만드는법은 인권침해와 차별적 관행을 바꾸기 위해 소송, 입법정책, 교육, 현장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여러 차별들이 있다. 그 중 특히 노동권은 문제가 된다. 변희수 하사 사건 같은 경우는 부당해고로 볼 수 있고 구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다만 많은 경우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접적 해고를 당하기보다는 눈치와 따돌림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다. 성소수자인 것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으로 당사자들이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직접적인 차별 외에도 트랜스젠더가 겪는 법적 어려움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친구가 돈을 안 갚아서 소송하고 싶은데 주민번호 때문에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별 정정을 거치지 않아서 법적성별과 외관이 다른 거다. 소송을 하면 트랜스젠더인 게 알려질까 소송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도움을 구하신 경우도 있다.

'낙인'이 되는 주민등록번호

프레시안 : 예전 인터뷰 보니까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로 시작한다고 했다. 아직도 그가. 정정할 생각은 없는가.

한희 : 법적성별을 정정하려면 대법원 규정상 성전환수술을 해야 한다. 저는 안 했다. 할 생각도 없다. 꼭 그 수술을 해야만 '여성'이라고 인정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서) 사실 이런 거 보여줄 때마다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다.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불편함은 일상적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민번호 쓰는 일이 많다. 병원 갈 때부터 은행, 공공기관, 동사무소, 보험 가입, 휴대전화 가입할 때나 선거할 때도 그렇다.

당장 올해 선거가 있는데, 선거인명부에도 성별이 표기된다. 투표 전에 서명하지 않나. 그때 감독관이 본인 아닌 거 같다고 물어볼 수도 있고. 그래서 실제로 선거를 안 하는 사람들도 많다. 생각해보면 선거할 때 투표인의 성별이 꼭 필요한가? 이름 주소 생년월일 정도만 확인하면 동일인인거 확인할 수 있는데. 그냥 관행으로 넣는 거 같다.

법적성별을 정정하지 않은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산다. 가장 많은 게 카드사. 카드를 만들 때도 본인 인증을 해야 하니까. 대면상담하거나 그럴 때 계속 본인 맞으시냐고 묻는 거다. 주민번호랑 외관이 다르니까. 확인도 여러 차례 거치고 심한 경우에는 본인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카드발급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해외 출국할 때도 문제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한 두 마디 듣고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받는 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몇 번 겪으면 위축돼서 안 하게 된다. 2014년 인권위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의 60%정도가 주민번호 때문에 일상적 업무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프레시안 : 결국 업무를 포기하게 되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럼 그분들은 결국 사회에서 지워지는 것 아닌가

한희 : 그렇다. 본인 명의로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파트너가 있다면 파트너 명의로 하거나 형제 명의로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어쨌든 본인 명의의 계약이나 이런게 어려우니까 법적으로 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다.

주민번호를 바꿨다 하더라도 어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변경이력이 남는다. 또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신 분들 같은 경우에는 취업하면서 학력을 적는데, 여고를 나왔다거나 하면 드러나는거다. 어찌됐든 과거에 지정성별로 살아온 이력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언제가 됐든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 한희 변호사가 7일 서울 은평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최근의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다.

한희 : 트랜지션이 단순히 어느 날의 갑작스러운 변덕이 아니다. 어느 날 자다 일어나서 '난 여잔 거 같애' 이런 게 아니다. 내면의 갈등을 오랫동안 거친다.

저는 사춘기 때부터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2차 성징이 오면서 혼란을 많이 겪었다. 스스로 '나는 트랜스젠더다'라고 생각한 건 28살 때다. 10년 넘게 고민한 거다. 그때까지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닐까, 드라마를 잘못 봐서 그런가, 이러면서 혼자 계속 고민했다. 직장 다니고 나이 먹고 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사회와 타협하려고 했지만 결국 안 됐다. 이걸 설명하기가 어렵다.

프레시안 : 로스쿨 재학 중에 트랜지션 하셨다고 들었다. 주변에 큰 충격이었을 것 같다.

한희 : 1학년 때는 남자 모습으로 다녔다. 1학년을 마치고 한 학기 휴학하고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면서 트랜지션을 했다. 복학 전에 친한 친구들 몇 명만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복학하고 개강하면서 인권법학회가 있었는데, 거기 총회에서 커밍아웃했다. 나는 트랜스젠더고 앞으로 여성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하고서 머리가 하얘져서 내려왔다.

학우들이 많이 지지해줬다. 드러내놓고 배척하고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애들 같은 경우에는 1학년 때는 오빠라고 하다가 커밍아웃하니까 바로 언니라고 불러주는 애들도 있었고. 성소수자에 대해 옛날에 비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화장실 가는 게 불편했다. 수업 듣거나 할 때는 상관없는데 화장실은 좀 다르지 않나. 1학년 때는 남자화장실을 다니던 사람을 여자화장실에서 만나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복학하고 한 1년은 제가 다니던 법대가 아니라 옆에 있는 미대화장실을 가거나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장애인 화장실을 갔다. 최대한 스스로 피해 다녔다.

주민번호, 학교 교육 그리고 '차별금지법'

프레시안 :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숨어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뭐가 있나. 

한희 : 우선 성별 이분법식 시설이나 제도의 폐지다. 사실 지난해 10월에 행정안전부에서 주민번호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뒷자리를 임의로 부여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성별표시는 남긴다는 거다. 굳이 성별 구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건지, 그건 안 없애겠다는 건데 이해가 잘 안 된다.  

또 학교 교육도 중요하다. 초중고 교육에서 성소수자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지금은 사실 거의 교육을 안 한다. 사회과 교과서, 윤리 교과서에서 한 챕터정도 '다양한 소수자가 있다' 이 정도다.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에서 성소수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아예 지침으로 언급하지 말라고 써있다. 남자·여자가 있고 이성애자가 있고, 성별은 두개로 나뉘고 이런 것들만 가르치는 거다. 동성애 이야기도 없다. 사회에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접해야 하는데 그걸 모른 채로 자라나니까 성소수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배우면 이해가 달라질 수 있는데. 교육부에서 이렇게 나오는 건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언급이 적은 게 아니라 하지 말라고 지시를 하고 있는 거니까.

마지막으로는 차별금지법. 차별이랑 혐오를 겪었을 때 구제받을 수 있고 차별적인 관행을 바꿀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필요한 거 같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 문제가 일상적인 문제부터 고용문제까지 정말 크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 구제받기 어렵고 국가가 이를 시정할 의무가 없다. 차별금지법은 국가가 차별을 방지하는 의무를 주는 거다.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숨어는 다양한 성소수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한희 : 그것만으로 바로 바뀔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법 하나 생겼다고 차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오해를 받는 부분이 기독교단체를 처벌한다 하는데, 핵심은 차별 당하는 개인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그러한 차별을 방지하는 정책을 만들고 평등정책, 반차별정책을 만드는 의무를 가지게 된다는 데 있다. 

교육을 통한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교육현장에서 반차별과 평등에 대해 교육할 의무가 생긴다. 마치 현재 직장 내 성희롱 방지교육이나 장애인식 교육 등이 필수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반차별과 평등에 대한 교육을 들어본 사람과 안 들은 사람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교육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차별의 당사자가 구제를 받는 것도 있지만 법을 통해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거다. 뭐가 차별인지, 뭐는 해선 안 되는 건지... 그런 식으로 사회가 점점 바뀌고 그렇게 되면 성소수자들도 자신을 드러내기 쉬워질 것이다.

50년 뒤? '무지개 어르신'으로 남고파

프레시안 : 예전 인터뷰에서, 40대, 50대 트랜스젠더 롤모델이 없다고 다. 생각해보니 '트랜스젠더 여성' 하면 예쁘게 꾸민 젊은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더라. 50년 후를 가정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나.

한희 : 롤모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김비 작가라고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오상 펴냄), <플라스틱 여인>(동아일보사 펴냄) 등을 쓰신 분이다. 글을 담담하게 잘 쓴다. 자기가 겪은 일들을 과장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게 다. 묵직하게 많은 울림을 다. 

50년 후에 저는 일단은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지금처럼 열심히. 변호사라는 직업이 정년이 없다. 여건만 된다면 50년 뒤에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것 같다. 농담이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노인되면 무지개 깃발 들고 '무지개 부대', '무지개 어르신'하자고. 50년 후에도 그러고 싶다. 성소수자들 도와주고, 그들의 존재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있나.

한희 : 정신없이 한 주를 보냈다. 제가 갑자기 실검에 올라서 놀라기도 했. '트랜스젠더가 그동안 연예인이나 먼 세상의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군인도 있었고 대학생도 있고 변호사도 있더라', '우리 직장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가지면 사회가 성소수자들 이슈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단순히 특이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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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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