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북미 정상회담 취소는 네오콘의 승리"
2018.05.25 18:14:57
"협상 재개 될 것…文대통령 '촉진외교' 해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 북미 정상회담 일정 취소에 대해 △북-미 쌍방의 메시지 관리 실패 △의제 조율 문제 △미국 내 강경 보수파(네오콘)의 영향력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미국의 의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문 교수는 다만 향후 북미 간 대화 재개를 통한 비핵화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나 미국 국내정치 상황 등을 근거로 들었다. 문 교수는 25일 사단법인 '내나라연구소'와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의 미래'에 참석해 한 기조 강연에서, 학자로서의 사견임을 전제로 이같이 분석·전망했다.

트럼프의 '취소' 이유는?


문 교수는 미국의 돌연한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관련해 "표면적 이유는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 때문이라는데, 실제로 그런가 학자로서 복기하고 취재해 보니 (북미 간) 의제 조율이 잘 안 된 것 같다"며 "기본적으로 의제에는 CVID가 들어가는데, '시컨싱(sequencing. 순서)'을 어떻게 하느냐, 즉 선(先)폐기 후(後)보상이냐, 동시교환이냐 등 여러 가지에 대해 북측과 미국이 충분한 교감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그런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하면 실패 가능성이 클 것이고, 실패하면 (미국) 국내정치적 파장이 클 것이니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을 좀 갖자, 의제 조율을 한 다음에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을 것이고 주변 참모들도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문 교수는 실제로 싱가포르 현지에서 북미 간 실무자 접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정황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문 교수는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이나 미국 모두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1부상이 지난 16일 담화에서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 재고려'를 언급한 대목은 사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이 가능한 모델'이라고 말한 데 대한 비판을 한 것"이며 "최선희 부상의 (24일) 발언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리비아 전철을 밟을 것', '군사 옵션이 살아 있다'는 발언을 원색 비난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도 "대사(大事)를 앞두고 미국이나 북한이나 메시지 관리를 잘 해서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해야 하는데, 기싸움 때문인지 잘못된 언술(言述)을 교환함으로써 사태가 상당히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양쪽을 모두 비판했다.

문 교수는 "셋째,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배후에는 볼턴 보좌관이나 펜스 부통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닌가"라며 "이 두 분 미국 내에서 네오콘(neo-conservative)으로 분류되는 분들"이라고 짚었다. 문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펜스-볼턴 그룹이 대북정책을 두고 의견차를 보였다는 이날자 미 <뉴욕타임스> 보도를 언급하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네오콘이 이번 사태에서 유리한 고지를 가지게 된 것이고 어찌 보면 (그들의) 승리"라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또 전날 이뤄진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조치와 관련해 "미국 측에서는 폐기한 건 좋지만 언론인들만 부르고 (검증할) 전문가들은 부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의 핵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할 수 있고, 제가 알기로는 (실제로) 미국 측이 그런 의구심을 제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상의 4가지 요인이 "복합 작용"하면서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취소 결정이 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의 경과에 대해 "지난 16일(김계관 부상 담화 시점)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며 "미국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실무자 예비 접촉을 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북한이 나타나지 않자 미국은 '북한이 정말 대화에 나올 의지가 있나'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미국 언론 보도 내용"이라고 짚었다.

이런 상태에서 최선희 부상의 담화까지 나오니 미국은 '정말 북한이 우리와 대화를 하려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전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전화를 걸어 '도대체 김정은의 의지가 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 갔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동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북미 대화 앞날은?

문 교수는 다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조심스레 낙관론을 폈다. "미국이나 북한이나 지연을 시켜서 이득을 볼 게 없으니 열기기 식기 전에, 생각보다 빨리 (재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망의 근거로는 크게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 내용 등 최근 북미관계의 맥락 △북미 대화 채널의 준비 상태 △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트럼프 모델'의 개략적 내용 △미국 국내정치 상황 등이 제시됐다.

문 교수는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에서 '당신(김정은) 마음 바뀌면 편지나 전화를 하라'고 했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문은 열려 있다'고 한 것은 의미가 있다"며 "만약 북한이 계속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상황에서 협상 돌파구가 만들어진 상태인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상당히 걱정했겠지만, 북한은 (최근) 억류 미국인 3명을 풀어주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자발적으로 선 폐기하는 등 계속 좋은 행보를 보였다. 기본적으로 맥락이 좋은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돌발적 사태로 갈 것이라 보지 않는다"고 했다.

문 교수는 낙관의 두 번째 근거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의 라인이 살아 있고, 미국만 원하면 언제든 쉽게 북한과 대화 채널을 열수 있다"는 점을 들며 "백악관은 (NSC) 부보좌관, 차장 중심으로 (대북 실무) 접촉의 예비 인선도 다 해놨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들의 의지만 있다면 쉽게 채널이 재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또 "셋째, 가장 낙관적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 <폭스뉴스> 인터뷰나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 얘기"라며 "'트럼프 모델'의 윤곽이 나왔다. 이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결과"라고 짚었다.

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에는 '일괄타결'만 이야기했으나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비핵화가 물리적으로 단시간에 될 수 없기 때문에 페이즈드 인((phased-in)),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처음으로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과거 '선 폐기 후보 상' 입장을 견지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행보를 보이면 체제 보장이나 경제 지원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종전 선언과 평화조약도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이것은 (북한이 주장했던) '단계적·동시적 방식'과 상당히 공통점이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선 폐기 후 보상'이라는 기본 틀을 벗어나 북한과 보조를 맞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자신이 이번달 초 미국에서 백악관 고위 인사를 만났을 때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의 준비 상태를 물었더니 그 고위 인사가 "백악관·국무부·에너지부 등이 TF를 만들었고 과거에 해놓은 것도 있다"고 답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준비 상태가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져 있다고 전했다.

문 교수는 '낙관'의 네 번째 근거로는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을 짚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이란 비핵화 협정을 탈퇴했는데 북한까지 파국으로 몰면 이란과 북한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며 "이란 문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지만, 북한은 얼마든지 협상 재개를 통해 11월 중간선거 전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내정치적으로 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조만간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에 '봄'이 오려면…

문 교수는 당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 3개국 정부가 각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첫째는 북한의 '자제'"라며 "미국이 저렇게 나왔다고 군사적 도발로 나오면 파국으로 간다. 그러면 북한이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행히 (25일 오전) 김계관 부상 담화는 상당히 정제됐고 점잖게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며 "상당히 긍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공세적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북한이 계속 비핵화 행보를 보이며 국제 사회 지지를 받는다면 미국도 결국 대화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북한에 제안했다.

문 교수는 미국 정부에 대해서도 "숨고르기를 하고 좀더 전향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미국도 좀 가라앉으면 체계적이고 신중한 정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 발언 이후 백악관 쪽에서 '잘 될 것이다', '곧 열릴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여러 군데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게는 좀더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피곤하겠지만 중재 외교가 아니라면 촉진 외교라도 해야 한다"며 "김정은·트럼프와 얘기를 하면서 판을 살리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 지금까지 온 것이 사실상 문 대통령의 공인데, 당장은 좌절이 있더라도 우리 대통령의 역할이 계속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자적 결정에 우리가 당혹스럽기는 하겠지만 이것이 '코리아 패싱'은 아니다"라며 "우리 대통령이 화해협력의 촉진자,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등 미 고위층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과 관련, 실제로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 진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저도 감이 잘 안 온다"며 "다만 저는 북한 비핵화든 종전 선언이든 중국은 처음부터 참여돼야 한다고 본다. 중국과 합의해야 비핵화도 빨라지고 평화체제도 빨리 올 수 있다. 중국 같은 크고 가까운 나라, 정전협정 당사국이 배제된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