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평생 대통령 해먹을 줄 아느냐?"

[故 백남기 추모 현장] "서울대병원 의사 노조가 있었다면…"

지난해 11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뒤, 지난달 25일 사망한 고(故) 백남기 씨를 추모하는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집회 참가 시민은 백 씨가 사망한 장소인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 종로타워 앞에서 고인에 헌화하며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검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8일 서울 혜화동 이화사거리에서 백남기 투쟁 본부 주최로 민주노총 공공 부문 노동조합을 비롯해 약 3000명(경찰 추산 2000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백남기 농민 추모 대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고인의 큰 딸 백도라지 씨는 "오늘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주가 다 되어 간다"며 "아직까지 장례식도 못해 드려 자식으로서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신청한 부검 영장이 25일까지 기한이 정해져 있는데, 그 안에는 저희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며 "애초에 이런 일을 일으킨 것이 비무장 농민을 공격한 경찰과 정부인데, 이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빼앗아 가서 부검하겠다는, 적반하장격인 행태를 보고 있으니까 너무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백 씨는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사람들 다 처벌받게 하고 사과받을 일이 남았다"면서 "앞으로 더 힘내서 열심히 싸우겠다"고 밝혔다.

▲ 8일 백남기 추모 대회 참가자들이 르메이에르 종로타워까지 행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투쟁 본부 측 전국여성농민회 김순애 회장은 "지난 10월 5일 야 3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과반이 넘는 163명의 의원이 동참한 특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특검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새누리당이 특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고 새누리당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특검 도입을 막겠다고 한다. 국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특검 서명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 대회에는 야3당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박주민, 표창원 의원과 국민의당 황주홍, 정의당 윤소하, 이정미 의원 등이 자리를 지켰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백남기 어르신의 가시는 길조차 편히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올리겠다"면서도 "더민주와 야3당은 유족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30년 전인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을 필두로 10월 건국대 사태, 이듬해 1987년 2월 박종철 열사, 6월 이한열 열사 등 국가 폭력이 자행됐는데 지금이 이런 일이 데자뷔되는 시국인 듯하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말씀 드리겠다. 대통령 평생 해먹는 것 아니다. 실질적 임기는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세월호, 백남기 농민 진상 규명 지시하라"라고 촉구했다.

고 백남기 씨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누워 계셨던 백남기 선생의 얼굴을 뵈었을 때 그 평화로운 모습에 많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로 백남기 선생은, 그리고 그때 외쳤던 쌀값은 제 공직 삶의 일부가 됐다"며 "여기 계신 두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특검을 세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가장 먼저 부검해야 할 것은 검찰과 경찰"이라며 "쌀 한 가마니가 16만 원에서 13만 원까지 내려갔는데 아무런 대책도 내지 못하고 있고, 성과 연봉제를 도입해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아 국민을 불안케 만드는 이 정권에, 비이성적인 국정에 메스를 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날 추모사를 낭독한 천주교 전주교구 김회인 신부는 "물대포가 나오기 전 (박근혜 대통령은) 외국에 나간다면서 '불법 폭력 시위 엄단하라'고 했다. 그래서 명령을 따른 경찰들은 차벽을 세웠다. 그날 폭력의 궁극적인 원인은 누가 제공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 신부는 "그런데 그(박 대통령)가 자신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권력을 위해 휘둘렀던 폭력을 비호하기 위해 (백남기 씨가) 물대포로 죽은게 아니라고 한다. 삼청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라며 박근혜 정부의 부검 시도를 비판했다.

그는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 사망했다는) 증거와 증인이 이렇게 많은데 이걸 조사하고 부검하겠다고 한다. 이런 쪼잔한 놈들이 어디 있나"라며 "국민을 죽이고도 1년 동안 당당하게 무시했던 그 양반들이 이제 와서 뭐가 무섭다고 부검하고 난리인가"라고 꼬집었다.

김 신부는 "그들은 시민 계급이 하나가 돼서 곳곳에서 목소리를 외치는 것을 무서워 한다. 그래서 지난해 그렇게 사람을 죽여 버린 것"이라며 "우리는 당당히 책임자가 누구인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추모 대회를 마친 뒤 백남기 씨가 물대포를 맞은 장소인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워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은 이곳에 간이 분향소를 만들어 백 씨의 영면을 기원하는 헌화 시간을 가졌다.

▲ 르메이에르 종로타워 앞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 ⓒ프레시안(최형락)

▲ 르메이에르 종로타워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는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백선하 교수의 사망 진단서, 노조가 있었다면

이날 추모 대회에는 성과급제 반대를 위해 12일째 파업을 진행중인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 분회 박경득 분회장이 참석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진단서로 인해 자부심이었던 '서울대병원'이 이제는 수치심이 됐다"고 말했다.

박 분회장은 사망 진단서와 관련, "사망 진단서에 외인사라고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외인사라고 선택하게 되면, 그 다음으로는 타살 여부를 기록해야 한다. 타살인지 아닌지를 컴퓨터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다. 담당 교수는 그 선택을 하기가 아마 힘들었을 것"이라며 "저는 서울대병원에 의사 노동 조합이 있다면, 이런 사망 진단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의 양심을 지킬 용기는 노동조합에서 나온다. 백선하 교수를 욕하기 전에 노동자 개인으로서 '나 혼자 그 상황에 나갔다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 양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며 "어쩌면 그 교수처럼 나도 눈을 감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분회장은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모두 성과급제 적용을 받고 있다. 수익을 낸 순위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서고 그 순서에 따라 성과급을 받게 된다"며 "누구 하나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병원에 저항하지 못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모든 노동자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 의사처럼 진단서 하나 쓰지 못하고, 병원을 믿고 찾아온 환자들에게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그런 공공 기관 노동자가 되기 싫어서 12일째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파업에서 승리하는 것이 백남기 어르신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고 강조했다.

▲ 추모 대회 참가자들이 르메이에르 종로타워 앞에서 헌화를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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