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는 1998년 2월 노사정 합의에 따라 명문화됐습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기본 골자로 하는 네 가지의 정리해고 요건이 충족했을 때 할 수 있도록 노동법이 개정됐습니다. 그 후로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자기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한마디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정리해고는 생계 터전을 뺏는 것을 넘어 그 노동자의 대인 관계와 가족 관계 전체를 파괴했습니다.
심지어 노동자의 목숨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정리해고-비정규직화는 현재 사회의 만악과 고통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정리해고법이 시행되면서 거리엔 노숙자가 늘어났으며 자살률과 이혼율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보장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에 자행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그 상징입니다. 다른 모든 사업장에서와 다름없이 사측은 ‘산 자’와 ‘죽은 자’로 노동자를 갈라놓았습니다. 이런 분류 자체가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죽음이었습니다. 회사는 ‘산 자’에게는 높은 노동 강도와 애사심을 요구하였습니다. 일자리를 미끼로 '죽은 자'들에 대한 철저한 외면도 요구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연대감, 공동체 의식 등 모든 인간성까지 내놓으라는 잔인한 요구들이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산 자'들처럼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버리라는 반사회적 요구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정리해고는 일터의 인간관계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상층 1~2%에 불과한 독점자본들의 무한한 이윤과 안전을 위해 우리 사회의 근본 자체를 허물려는 반사회적 요구였습니다. '죽은 자'들은 일자리만 잃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자존과 관계, 그리고 미래 전체를 빼앗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26명의 동료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비참과 울분의 해고노동자로 10여 년째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을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2005년 어느 날 정리해고의 칼날이 들어왔고, 어쩔 줄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급히 만들어 싸워온 지 10여 년입니다.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양화대교변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도 해보았습니다. 그곳에서 고공단식까지 해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10년 만에 간신히 교섭을 통해 정리한 코오롱 해고자들처럼 새벽에 당산동 본사 건물에 들어갔다가 경찰특공대들에게 끌려나와 보기도 했습니다.
그 세월을 다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단위사업장의 명칭만 벗고 보면 이렇게 하나같이 똑같습니다. 콜트-콜텍은 지금도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어떤 ‘경영상의 위기’도 없이 팡팡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는 신차 발매를 앞두고 있고, 헐값에 쌍용자동차의 자산과 기술을 인수한 마힌드라 자본은 세계적인 다국적 자본으로 팡팡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법인 분리나 회계 조작 등 명분만 만들어놓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법원은 그런 눈가리고 아웅, 조삼모사 식 조작에 최종적으로 법의 권위까지 부여해주는 기구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게 정리해고제가 시행된 지 16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최소한 양보하더라도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어야 하는 정리해고 법 조항은 기업들의 갖은 편법과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조금씩 완화됐습니다. 지난 2014년 6월 12일 대법원은 (주)콜텍의 '정리해고 무효 확인소송'에서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흑자를 내고 있더라도 "미래에 도래할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판결까지를 내렸습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라는 정리해고의 요건조차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기업에 정리해고 대문을 활짝 열어준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이제 '정리해고'라는 괴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상의 사유'에 의한 고통 분담이 목적이 아닙니다. 노동자 서로를 개별화시켜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삼게 하고,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 줌으로써 모두를 말 잘 듣는 노동자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본인들 축적의 위기를 노동자의 희생으로 보전하려는 추악한 일에 불과합니다.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기 위한 자본의 무기일 뿐입니다.
정리해고로 그간 이십여 년 족히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안정된 일터를 잃었습니다. 정규직이 정리해고된 자리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값싼 노동자가 채워졌습니다. 96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산'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미래는 그 자체가 공포로 변했습니다. 무슨 거창한 이론이나 고매한 논리로 이야기되지 않아도 수많은 이가 희생되어야 했던 원인은 간단합니다. 그간 한국 재벌의 곳간은 차곡차곡 쌓여 이미 사내 유보자산만 수백조 원이 넘고 있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에만도 37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기업은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에 대한 성과는 오로지 자본의 몫이었고, 노동자들에겐 불안한 고용과 고통, 불투명한 미래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정리해고법은 이제 폐기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도구로 이용되어 온 비정규직 법제도 또한 폐기되어야 합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이명박 정부의 친 기업정책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는 노동의 유연화를 강조하며, 정리해고 요건을 법적으로 더욱 완화하는 정책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리해고는 이제 그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비굴하게 회사 눈치를 보고, 높은 노동 강도를 온몸으로 견디어 내야 합니다. 또한, 노동조합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회사의 꼭두각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시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더라도 안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들을 담아 2015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쌍용차와 저희 콜트-콜텍, 스타케미칼 등 정리해고에 맞서 싸워 온 노동자들이 쌍용차와 스타케미칼 굴뚝에 올라가 있는 동료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정리해고 철폐를 주장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합니다. 기륭전자와 학교비정규직들, 사내하청노동자들 등이 함께했던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1차 행진 당시에도 우리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함께 했었습니다.
2차 행진은 1월 13일 신차 발매에 맞춰 서울 상경투쟁에 나선 쌍용자동차 투쟁을 함께 지키면서, 정리해고 법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 제기에 나서는 사회적 투쟁입니다. 우리 정리해고 당사자들이나, 조직된 비정규 노동자들 몇몇만 나서서는 되지도 않고 맞지도 않는 일입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나서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함께 지켜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오체투지는 '불상'(?)과도 '불쌍'과도 상관없는 행동입니다. 새해의 시작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요구이기에 위대한 요구들에서 출발해보자는 사회적 제안이자 요구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수평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연대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가장 정확한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보자는 꿈입니다. 아픔만 많았던 2014년과 다르게 2015년 반격의 첫걸음을 ‘당신’과 함께 나아가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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