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대학원생이 밝혀낸 '엑셀 불황'
최근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한 20대 대학원생의 사소한(?) 발견에 혼쭐이 나고 있다. 지금까지 전개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1월, 메릴랜드 대학의 라인하트(Reinhart) 교수와 하버드 대학의 로고프(Rogoff) 교수는 "부채 시기의 성장률(Growth in a Time of Debt)"이라는 논문을 미국경제연구소(NBER,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 발표했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의 비율이 90%를 초과하면 경제 성장률은 뚝 떨어진다는 것, 고로 정부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그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크루그먼을 비롯한 일부 경제학자들이 논문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의 한 대학원생이 찾아냈다. 28세 대학원생인 헌던(Herndon)은 대학원 계량경제학 과제물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과제물은 유명한 기존 논문 하나를 선택하여 동일한 방법을 통해 같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논문을 선택하였고, 데이터를 얻기 위해 수차례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데이터를 받았고, 거기에 사소하지만 심각한 결점이 있다는 것을 즉시 발견하였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결점의 핵심은 엑셀(스프레드시트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한 계산상의 착오였다! 이를 두고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 '엑셀 불황'이라는 칼럼을 통해, "엑셀 코딩 실수가 선진국 경제를 망가뜨렸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논문이 경기 침체 시의 재정 긴축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면서 선진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가져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헌던은 대학원 지도 교수인 폴린(Pollin) 교수 등과 함께 라인하트와 로고프를 비판하는 논문을 작성하여 발표하였고, 세계적인 경제학자 두 명을 지적 공황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라인하트와 로고프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듣도 보도 못한 고졸 신인이 대타로 나와 선동열로부터 홈런을 때려 낸 셈이다. (참고로 선동열은 한국 프로야구 통산 1647이닝에 홈런은 고작 28개밖에 허용하지 않은 불멸의 기록을 지니고 있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논문이 가져온 세계 경제 정책의 변화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논문에서 정부 부채와 경제 성장률 간에는 어떤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부 부채가 정상 수준일 때에는 부채가 성장에 끼치는 영향이 약하지만, GDP 대비 정부 부채의 비율이 90%를 초과하면 평균 성장률은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의 최종 결론에 "전통적인 정부 부채 관리 이슈가 공공 정책의 핵심 관심 사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당시는 유럽 재정 위기가 확산되는 시점이었고, 정부 부채 비율 90%는 재정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사수되어야 하는 임계점 혹은 불문율처럼 이해되었다.
[그림 1] 정부 부채 비율과 성장률, 1946-2009
*출처 : Reinhart & Rogoff(2010), Growth in a time of debt |
논문은 1946년에서 2009년까지 20개 선진국의 성장률과 정부 부채 데이터를 활용했다. 20개 국가를 4개 그룹(GDP 대비 부채 비율이 30% 미만인 국가, 30% 이상 60% 미만인 국가, 60% 이상 90% 미만인 국가, 90% 이상인 국가)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정부 부채 비율이 90%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성장률이 3~4%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90%를 초과하면 놀랍게도 0%로 뚝 떨어졌다(그림 1 참조). 즉, 정부가 지고 있는 총부채가 GDP의 90%를 초과하면 경제 성장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실증적 결과를 보여준다.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파이낸셜타임스>에 "왜 우리는 부채의 시기에 저성장을 예상하는가"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또한 2011년 4월, 미국 상원 예산위원장인 공화당의 톰 코번(Tom Coburn) 의원의 주재 아래 모인 40명의 상원의원들 앞에서 "지금 당장 정부 부채 관리를 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권에서 재정 위기 논란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단골 메뉴처럼 인용됐다. 특히 미국 하원 예산위원이자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라이언(Ryan)은 사회 복지의 대폭 삭감을 주장하는 일명 '라이언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보고서를 크게 인용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이나 영국에서 발생한 재정 긴축 논쟁에서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긴축을 옹호하며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2010년 6월 열린 토론토 G20 정상회의는 경기 부양에서 재정 긴축으로 세계 경제 정책의 방향을 선회시키는 합의를 했다. 2010년 이후 세계적인 재정 긴축 바람에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지적 영향력이 끼친 정도는 상당하였다. 단순한 통계 결과가 이와 같은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연구가 실수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일부 데이터 누락, 엑셀 코딩 오류 등 기본적 정확성 떨어져
헌던이 찾아낸 대학자들의 실수는 무엇일까?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세 국가의 일부 데이터를 배제하는 오류를 범했다. 배제된 국가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이다. 이들은 각각 1946~1950년, 1946~1949년, 1946년~1950년 동안 부채 비율이 90%가 넘는 상태였는데, 이 시기의 데이터가 논문에서는 배제되었다.
특히 뉴질랜드를 배제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뉴질랜드의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성장률은 각각 7.7%, 11.9%, -9.9%, 10.8%였다. 90% 이상의 부채 비율에도 불구하고 꽤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성장률을 집어넣어서 뉴질랜드의 평균 성장률을 다시 구하면 2.6%가 나온다. 하지만 이 시기가 빠진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논문에서는 뉴질랜드의 평균 성장률을 -7.9%로 계산하고 있다.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도 위 시기의 평균 성장률이 3.8%, 3.0%를 기록했지만 전체 평균을 구할 때는 제외되어 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빠진 시기를 포함하여 부채 비율 90% 이상 국가들의 전체 평균 성장률을 다시 구하면 1.94%가 된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원래 결과인 -0.1%와 비교하면 약 2%p 차이가 발생한다(표 1의 수정(1)과 수정(2) 참조).
둘째, 단순 평균을 실시하는 엑셀 작업에서 오류를 범했다. 단순 평균을 제대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실제 셀 30에서 49까지 포함해야 하는데, RR은 셀 30에서 44까지만 계산하는 실수를 범했다(그림 2 참조). 이른바 엑셀 코딩 에러다. 따라서 부채 비율이 30% 미만인 국가의 평균 성장률은 0.1%p 과대 계산되고, 30~60%인 국가는 0.2%p 과소 계산되었다. 그리고 90%를 초과하는 국가는 0.3%p 과소 계산되는 오류가 발생하였다.
[그림 2] 라인하트와 로고프가 사용한 엑셀 중 오류 부분
셋째, 가중치 부여 방식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지극히 단순한 평균 방식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은 부채 비율이 90%를 초과한 1946년부터 1964년까지 19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 2.4%를 기록하였다. 반면 미국은 부채 비율이 90%를 초과한 전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4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 -2.0%를 기록하였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경우 이 둘의 평균 성장률을 구하기 위해 단순히 2.4%와 -2.0%를 합한 후 둘로 나누었다. 그래서 0.2%라고 평균 성장률을 구한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적자가 19년 동안이나 진행되었고, 미국은 4년에 불과하다. 이러한 경제 분석에서는 기간에 가중치를 두어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전체 분석 기간이 110년이므로, 19년 동안 적자였던 영국의 경우는 19/110의 가중치를 곱하고, 4년 동안 적자였던 미국의 경우 4/110의 가중치를 곱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간 가중치를 포함할 경우 부채 비율이 90%를 넘었던 해의 평균 성장률은 2.2%로 높아진다(표 1의 수정(3) 참조).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방식처럼 단순 평균을 구하면 특정 외부 충격 등으로 인해서 단기적으로 경제 침체가 발생했던 경우를 과대 평가하게 된다. 통계적으로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부채 비율과 성장률의 관계, 같은 숫자도 해석하기 나름
실제로 부채와 성장률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아이언스(Irons)와 비번스(Bivens)가 2010년 발표한 논문 "정부 부채와 경제 성장(Government dent and economic growth)"에 의하면 1791년에서 2009년까지 미국의 부채 비율과 성장률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선진국에서 부채 비율이 90%를 초과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유럽 재정 위기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가 바로 그 시기다. 미국의 경우 전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단 네 차례만 부채 비율이 90%를 초과했다. 당시 성장률은 각각 -10.9%, -0.9%, 4.4%, -0.5%를 기록하였다. 평균하면 -2.0%가 된다. 그러나 이는 전후 특수한 사례로 전시 경제 호황을 누리다 국방비 지출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큰 폭으로 감소해 성장률이 뚝 떨어진 시기다. 특히 1946년의 -10.9%는 대공황 시기인 1932년을 제외하고 최악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국방비 지출 감소로 인한 성장률 하락을 제거하면, 당시 성장률은 전후 평균 성장률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벨기에, 캐나다 등에서도 종전 직후 높은 부채 비율과 낮은 성장률이 동시에 나타난다. 세계대전 종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높은 부채와 낮은 성장률을 가져왔다고 보아야 한다.
반대로 30% 미만의 낮은 부채 비율을 보인 국가들을 살펴보아도 일반적인 경우라 할 수는 없다. 1948년 독일, 1922년 일본, 1951년 노르웨이가 해당 국가인데,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예외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사례이며, 노르웨이 또한 석유 발견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극히 예외적이다. 이들의 드문 사례들로 '낮은 부채 비율이 높은 성장률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유도하기는 무리이다.
*출처 : Herndon(2013), Does high public debt consistently stifle economic growth? |
한편 통계는 측정하는 기간만 달리해도 결과가 상이하게 달라진다. 이에 관해서도 헌던은 기간을 달리해 성장률을 구하여 보여주고 있다(표 2 참조). 부채 비율 30% 미만인 국가의 경우는 1950~2009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을 구하면 4.1%이지만, 1980~2009년으로 기간을 바꾸어 구하면 2.5%로 떨어진다. 1980~2009년의 부채 비율별 성장률을 살펴보면 4개 그룹 모두 2%대의 비슷한 성장률을 보인다. 부채 비율과 성장률 간의 어떠한 상관관계도 발견할 수 없다. 한편 2000~2009년을 살펴보면 부채 비율 90% 초과 국가의 성장률은 1.7%인 데 비해, 부채 비율 60% 이상 90% 미만 국가의 성장률은 1.3%로 오히려 더 낮았다. 최근에 올수록 성장률과 부채 비율의 상관관계는 더욱 약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논문에서 논쟁이 되는 지점은 바로 인과관계 여부다. 그들의 해석대로 높은 부채 비율이 낮은 경제 성장률을 초래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낮은 경제 성장률이 높은 부채 비율을 초래하는지 알 수 없다. 통계적 사실을 두고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면 GDP 대비 부채 비율에서 분모, 즉 GDP가 작아지므로 자연히 부채 비율이 커지게 된다. 게다가 경기 침체와 성장률 하락은 정부의 재정 수입 축소와 자동 안정화 장치에 따른 재정 지출 증가, 그리고 금융 기관 구제 금융 등으로 재정 적자를 증가시켜 정부 부채 규모를 증가시킨다.
보수 우파는 왜 긴축 이슈를 제기하는가?
미국의 보수 우파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재정 적자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을 초래하여 문제라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1953년에서 2008년까지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3.8%였지만, 2009년에서 2012년까지 인플레이션은 1.6%로 떨어졌다. 그리고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같은 기간 6.2%에서 1.6%로 떨어졌다. 즉, 긴축론자들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우려는 현실 경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비판이었다. 또한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여러 연구와 유럽 재정 위기 사례를 통해 경기 침체 기간의 긴축 정책은 오히려 경기 침체를 악화시키고 긴축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면 왜 보수 우파들은 집요하게 정부의 재정 긴축을 주장하는 것일까? 우선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재정 지출을 축소하여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집권 세력의 재선을 가로막기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공화당의 집요한 재정 지출 삭감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데올로기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것이다. 바로 노동자의 임금을 떨어뜨리고 복지국가를 밑으로부터 파괴하기 위해서다. 긴축을 통해 공공 부문부터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그들 표현에 의하면 '비효율적인' 사회 복지를 축소할 것을 주창한다. 더불어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를 주장한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면 된다. 그런데 지출을 줄이자는 얘기는 강력히 주장하지만, 세금을 늘리자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대신 감세를 주장한다. 임금과 세금은 줄이고 사회 복지를 축소할 때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때 늘어나는 것은 기업의 이윤이며, 그 몫은 상위 1%에 집중된다.
보수 우파들의 긴축 주장이 재정 적자, 경기 침체, 양극화의 3대 악순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세계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잘못된 사상과 경제 정책이 세계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
케인즈는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사악함이 아니라 어리석음과 무지라고 경고하기도 했지만, 한편 자신의 유명한 저서 <일반 이론>에서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결국 위험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사상"이라고 지적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간의 무지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오만이 가득한 잘못된 지식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현실인지 정확하게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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