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에이즈 환자 강제 출국…"명백한 인권 침해다"

22회 세계 에이즈의 날…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감염자들

12월 1일은 제22회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제4회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이다.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날이지만 정작 한국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건강세상네트워크,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은 세계 에이즈의 날인 1일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염인 인권 없이 에이즈 예방은 없다"며 "외국인 감염인에 대한 차별 시정과 생존을 위한 지원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시민·사회단체는 1일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장관님, HIV/AIDS감염인의 인권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며 감염인 지원 예산 축소 규탄 및 인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

에이즈 감염인은 늘어나는 데 지원 예산은 줄어들어

실제로 매년 에이즈 감염인을 위한 예산은 줄어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치료비를 제외한 에이즈 감염인 지원 예산은 2007년 8억2700만 원, 2008년 6억3100만 원, 2009년 5억8500만 원으로 매년 줄었다. 이로 인해 감염인을 위한 간병인 제도는 올해 10월 종료됐다.

한국에서 두 곳 밖에 없는 에이즈 감염자 쉼터 중 한 곳인 대구쉼터는 올해 정부가 2500만 원밖에 지원하지 않아 사실상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쉼터 관계자는 "아예 내년부터 폐쇄하려는 것 아니냐"며 절박한 상황을 호소했다.

예산은 줄어들지만 감염인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자료를 보면 한국 내 에이즈 감염인 누적 수는 2007년 5376명, 2008년 6120명, 2009년 상반기 649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한 숫자를 제외한다면 대략 5500명 정도의 에이즈 감염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에이즈 감염 외국인 600명 강제 출국 조치 당해

외국인 감염자의 경우는 한국에 발도 들이지 못하는 현실이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에게 에이즈 강제 검사를 실시, 감염 사실이 확인되면 비자 발급이나 외국인 등록이 되지 않도록 해 입국을 막고 있다.

또 입국 후 에이즈 감염 사실이 확인된 외국인은 비자의 종류와 상관없이 강제 출국된다. 1985년부터 2008년까지 외국인 에이즈 감염자 751명 중 600명이 출국조치 당했다.

법무부, 외교통상부, 보건복지가족부 등은 외국인 감염인에 대한 입국 금지 및 강제 출국 조치를 2009년 안에 폐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는 법무부 출입국 관련 내부 지침을 변경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정부가 진정성이 있다면 관계 법령을 폐지해야 한다"며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공개도 되지 않는 내부 지침만 변경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그나마 하고 있던 정책조차 후퇴시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도 입을 모아 정부의 예산 삭감과 빈인권 정책을 두고 쓴 소리를 던졌다. 조승수 의원(진보신당)은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예산 등으로 가장 먼저 삭감되는 게 복지 예산"이라며 "모든 게 열악한 에이즈 감염자에게 예산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도 "이명박 정부가 그나마 하고 있던 정책조차도 후퇴시키고 있다"며 "이로 인해 감염자의 건강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정경훈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한국에 들어올 때 바로 검진을 한 후 감염자는 바로 출국 조치한다"며 "오래된 편견으로 차별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게 한국 정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인에게 강제로 검진을 받게 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며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들은 기자회견에 앞서 외국인에 대한 강제 에이즈 검진, 입국 금지, 강제 출국 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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