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제한 없이 비정규직 보호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서울역 기자회견에서 주장

"사유제한 없는 기간제 법은 아무도 보호할 수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으로 임시국회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12일부터 비정규직 관련 입법 논의를 재개하기로 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내주 초에야 논의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관련 입법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줄곧 소외됐다고 주장해온 이들은 법안 내용 중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사용사유 제한' 규정이 누락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13일 정오 넘쳐나는 승객들로 번잡한 서울역 대합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 20여 명은 기간제 법안에 사용사유 제한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강조했다.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란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기간제 법안에 대해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며 사유제한 도입을 반대하는 정부와 여야 정당의 논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으로 일할 것인가, 아니면 실업자가 될 것인가'라고 협박극을 펼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여당에게 '비정규직 법안을 도대체 왜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2년 사용 후 고용의제(2년 초과 사용시 무기근로 간주)' 를 골자로 하는 기간제 법을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한 반대의 표시다.

2년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면 그 뒤에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해 이날 서울역에 모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실상 2년 동안 기간제 근로자를 무제한적으로 쓰라는 말과 같다"고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사진1〉

이들은 또한 이런 우려가 벌써부터 현실로 나타나는 조짐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지금 노동현장에서는 기간제 법 제정을 의식해 3년 이상 계약갱신을 했던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무차별한 해고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당초 정부가 입법예고한 기간제 법안이 '3년 사용 후 해고 금지'를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사용자들이 입법도 되기 전에 3년 이상 혹은 3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제 노동자들과의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해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처럼 2년 또는 3년 등 기간제한 방식으로는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제정되는 기간제 법에는 '사유제한 규정'을 반드시 삽입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오민규 집행위원장은 "상시적 업무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나머지 특별한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도록 하는 사유제한 규정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며 "사유제한 도입 없는 비정규직 관련 입법은 '비정규직 보호 법'이라는 입법취지에 크게 어긋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서울역 대합실 기자회견에는 KTX 여승무원들도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현재 철도공사가 아닌 철도유통(구 홍익회) 소속이며 3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민세원 KTX 노조 위원장의 말은 사유제한 없는 기간제 입법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진2〉

"항공기 승무원과 유사한 일을 하고 있지만, 저희들은 모두 3년 계약직입니다. 저희가 정규직이 싫어서 계약직에 지원한 것이 아닙니다. 입사지원할 때부터 정규직 자리는 없고 오직 계약직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KTX를 '꿈의 열차'라고 철도공사는 선전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계약직 밖에 없습니다. KTX 승무원이 하는 일은 KTX가 존재하는 한 필요합니다. 왜 상시적인 업무에 계약직을 사용하나요?"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을 사용해야 된다'는 민 위원장의 절규가 조만간 제정될 비정규직 관련 법에 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또다시 외면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사유제한 규정이 없는 비정규직 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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