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북유럽 교육 탐방 ③

이번에 만난 헬싱키시 인근 에스푸지역의 포요이스 따삐올라 중·고교 교장 선생님은 여성으로서 지난해 경기여고 100주년 초청 행사로 '핀란드의 여성'을 강연하고자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짧은 방한 기간이었으나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학부모와 교사들은 심리학을 다시 한 번 배웠으면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학습이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반드시 한국 학부모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려를 담아 말했다.

지금 한국은 핀란드와 상황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마구잡이로 일제고사와 대학 입시에 내몰려 있다. 학생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분기별로 나오는 성적표에 의해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성적을 기준으로 높이높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으며 대부분 아이가 피라미드에 쌓인 받침돌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분모가 되는 학생들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교육을 택해야 하는가?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서로 다른 아이는 서로 다르게 학습한다."

한편, 이번 여행의 코디네이터 중 하나인 핀란드에 사는 교민 곽수현 씨에게 들은 바로는 핀란드 사람들은 교육과 관련해 집중력에 매우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집중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아이가 열중해 노는 한두 시간 동안은 절대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지 않는다고 했다. 레고 블록을 만들 때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리고 집중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특수교육 차원에서 배려했다.

이에 반해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노는 꼴을 거의 못 보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시간을 엄마가 조작하고 조정함으로써 아이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후 네 시, 일찌감치 어두워지는 북부 유럽의 저녁 엄마들은 아이들을 5겹으로 싸서 유모차에 끌고 다녔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밖에서 재우는 것을 때로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만큼 일상화시킨다고 했다. 하긴 늦은 저녁 아이를 셋이나 동행한 유모차 엄마를 지하철에서 흔히 목격했다.

▲ 핀란드 옴니아 직업학교의 건축과 실습현장. ⓒ오영희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

이번 여행 중 핀란드에서건 스웨덴에서건 목이 마르면 아무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셨다. 처음엔 생수 생각이 간절했는데 날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그들은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물을 사먹는 돈을 세금으로 낸 후 수돗물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개인노력의 분명한 한계를 공동으로 풀어낸 것이다.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와 인구 5000만 명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겪었고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한 나라는 교육의 철학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평등의 가치 위에서 교육을 보았고 누구든 교육의 의지가 있는한, 한 학생이라도 배에서 내리게 하지 않고 낙오시키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학생을 대했다. 결국 핀란드는 자율성과 다양성, 국가발전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이루었다.

반면 한국은 학생을 상품화시키고 서열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교육을 생각할 여유도 정치적 리더쉽도 가치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아이들이 불행하고 교육이 실종된 것이다. 각자 열심히 마우저뚱 초상을 그렸는데 다 그려놓고 보니 메릴린 먼로의 초상이 되어버린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각자 열심히 교육에 매진했는데 결국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라는 괴물만 남았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교육 개혁이란 것이 학생들의 취미와 적성을 살리고 교육을 통해 행복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하는데 학생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교사에게는 무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도리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학벌이 문제이고 공교육 부실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학벌 대책은 늘 중장기 대책으로 밀어놓는다. 정권을 5년 잡는 정부가 학벌 대책을 중장기로 밀어놓는다는 것은 결국 안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 부실의 1순위로 모두들 거대학교, 과밀학급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33.6명, 중등이 35.5명이다. 올해 발표된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OECD 국가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21.4명, 중등은 24.1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개발 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학급당 학생수를 외면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자연적으로 인구수가 감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밀학급이 아닌 농어촌 교육은 무사한가? 아니다.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특목고가 점차 모든 중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가 되었는데 특목고는 행복한가? 아니다, 특목고생도 사교육을 받는다. 강남 지역 학생들도 천차만별 차별을 당하고 있다. 학벌 때문에 명문대, 지방대학생이 분노한다. 그러면 명문대생은 행복한가? 그들도 취직을 위해 영어 점수 높이기에 목을 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금은 청년백수 혹은 청년 인턴 대열에 분노하며 혹은 크리넥스 티슈처럼 풀죽어 합류해 있다.

결국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 핀란드에서 핀란드어 시간에 학년이 섞여서 조별 수업을 하고 있는 장면. ⓒ오영희

핀란드는 조세부담률이 40% 정도 되나 한국은 27%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 사교육비를 더하면 40%도 훌쩍 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 관계자들은 '두 나라는 근본적으로 세금부담률이 다르다'는 앵무새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돈의 문제, 인식의 문제가 철저하게 다른데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문제는 이 지점부터 풀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실종된 한국 교육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이번 여행에 동행한 38분의 교사, 교수, 운동가, 학생, 이번 여행이 있기까지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용관, 안승문 선생, 핀란드 현지의 안애경씨, 통역에 수고한 이병곤, 동원, 라슈, 교육외 부문에서 참여한 권태선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님과 박원순 변호사와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이부영 님과 헬싱키에서 시를 낭송해주신 도종환 시인께 감사말씀을 전한다. 우리들 일행은 거의 모두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한국 교육을 고민하면서 그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한 전문가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행 중 수없이 동어반복을 했지만 그 열정과 의지, 그 진정성 하나로 2월부터 다시 만나 한국교육의 새로운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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