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기고]기륭여성노동자 1000일 투쟁에 부쳐

기륭전자의 파업이 지난 19일로 1000일을 넘겼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에 맞서 시작한 외로운 몸짓이 해를 넘기고 또 넘겨 햇수로 4년이 됐다. 그 사이 회사는 대표이사만 4번이나 바뀌었지만, 누구도 이들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3일이면 될 줄 알고 시작했던 파업"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견뎌오는 동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1000일을 앞두고 지난 11일에는 4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서울 시청 앞에 설치된 임시 철탑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동부도, 검찰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것도 소용이 없었다. 회사는 고작 500만 원의 벌금을 내고 1000일 동안 이어진 여성 노동자의 '우리도 일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외면했다.

지난 20일에는 3800여 명의 지식인, 종교인, 법조인 등 각계 인사들이 그들을 일터로 돌려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대의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최소한의 요구가 돈과 권력이 만든 법에 유린당하고 사회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양심과 정의가 사라졌음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기륭전자 1000일의 파업이 드러내고 있는 한국사회의 실상에 대한 성찰이었다. 기륭전자 1000일 맞이 선언에 동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시 한편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우리는 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기륭전자 파업 1000일이 드러내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프레시안

입때껏 우리는 모든 걸 겪어왔다
모진 탄압도 겪고 참기 힘든 수모뿐이랴
멀쩡한 사람의 피눈물을
강요하는 세상, 그것은
우리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쳐오는 동안
아- 우리들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진저리를 쳤든가
우리네 가슴에 꽝꽝 대못을 때려 박던 그 진저리

하지만 그 대못을 빼 도리어
놈들의 가슴에 빵빵 때려 박아야
산다는 것을 깨우치던 날아-
우리들의 빈 주먹은 얼마나 떨렸던가
악독한 잔머리에 순진으로만 대들고
밀리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싸우다가

하지만 끝내는 우리들의 흔들림과 주저와 나약을
전진의 까래로 다지면서
우리는 이겨 왔노니

버티기 기록, 우리는 그것을 세계에 새겨왔다
쓰러졌다가도 골백번 다시 서는 기록도 역사에 새겼나니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만 믿자
승리가 아니면 죽음이다
그러니까 승리만이 살 길이라고 믿자

벗이여, 동지여, 형제여, 세계의 형제여
여기 이 동쪽나라
한강 너머 구로공단 구석진 곳에선
오로지 마음 하나와 주먹 하나로 일어선 노동자들이
저 끔찍하고 더럽고 치사한
자본에 맞서 진보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것을 믿자

벗이여, 동지여, 형제여, 세계의 형제여
우리는 마침내 패배의 역사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해방 창조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자부심을
믿자 믿자 믿자 그 믿음으로
우리는 이겨야 하나니 그렇다
맨 앞장 그 이물은 그 누구던가
바로 우리들이라고 떳떳이 새기자
자랑스럽게 나아가는
한 사람이 곧 이백 명이요
그 이백 명, 아니 온 노동자 온 양심이 하나 되어
우리 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자

* 2005년 6월 노동조합 결성 당시 함께 했던 200여명의 여성비정규직들을 생각하며
☞'기륭전자 파업 1000일' 관련 기사 보기

- "당신의 '고통의 1000일'은 우리에겐 '치욕의 시간'입니다"

- 기륭 千日 거인에게 禮를 갖춘다

- "불의에 침묵한 당신이 바로 마지막 희생자다"

- "공포의 광우병은 내 일터에도 있다"

- "바다를 건너 배우고 배운다"

- "몸에 불이라도 질러야 눈길을 줄까요?"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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