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담뱃값을 1만 원으로 올려라!"

[안종주의 '건강 사회'] 금연의 건강학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올바른 생활 습관, 즉 건강 수칙에 관심을 둔다. 흡연자들은 금연, 술꾼들은 술 줄이기, 뚱보들은 식사 조절과 운동 따위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이런 건강 수칙 실천 결심은 대개 작심삼일이거나 '작심한달'에 그치기 쉽다.

이제 3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마지막 꽃샘추위가 왔지만 남도에서의 화사하고 싱그러운 꽃소식이 봄바람과 함께 북쪽으로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우리 집 마당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개나리 가운데 일부 성질 급한 놈은 살포시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꽃은 이제 본격적인 야외 활동과 야외 운동을 하기에 좋다는 신호다. 혹 새해 건강 생활 실천을 결심하고 나서 아직 이를 게을리하거나 중단한 분이 있다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기 바란다. 그런 분들을 위해 금연과 건강 수칙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느 공중파 방송에서는 최근 하루 한 끼 먹기(1일1식), 단식, 주 2회 절식 등 비만 연구자나 영양학자, 보건학자에게는 그리 낯선 게 아니지만 대중들은 대개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건강 이론을 소개해 이를 시청한 이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도 음식이 풍요롭고 비만과 만성 질환 등이 더욱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어서 이런 적절한 시점과 맞물려 관심이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망 원인 1위인 암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건강 수칙도 매스컴들이 앞 다퉈 전하기도 했다.

올 들어 3월 소개된 새로운 건강 수칙은 1주일에 적어도 3~4일 규칙적으로 150분 이상 운동하고 현미 등 통곡물과 채소, 과일, 기름기 없는 단백질, 즉 살코기나 콩류를 많이 먹고 반면에 나트륨(소금), 설탕, 포화 지방, 트랜스 지방은 팍 줄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신문과 방송, 잡지, 인터넷,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어본 건강 수칙들이다. 이런 수칙들은 혈압과 혈당, 체중을 정상 범위 안에 들도록 만들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해주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연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이들 건강 수칙들이 심장병 등 심혈관 질환뿐만 아니라 암 발생도 최고 50퍼센트가량 크게 낮춘다는 것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담배를 끊어라!

<미국심장학회지> 최신호는 앞서 말한 7가지 수칙, 즉 운동, 식습관 개선, 혈압·혈당·체중 정상 범위 관리, 혈중 콜레스테롤 조절, 금연을 모두 지키면 암 발생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밝혔다. 7가지 가운데 4가지만 잘 지켜도 암 발생률은 33퍼센트, 한두 가지만 지켜도 21퍼센트가 낮아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7가지 가운데 금연이 가장 중요하며 금연하지 않으면 암 발생 감소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연이 심혈관 질환 예방과 암 예방의 으뜸 수칙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연구진들은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담배를 끊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모든 수단은커녕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 즉 담뱃값 인상조차 외면해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린 뒤 10년 가까이 되도록 단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물론 비가격 정책, 즉 금연 구역 확대, 일부 거리 금연 등은 꾸준히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중이지만 이 또한 매우 더디다. 그 결과가 우리나라 정부의 금연 정책 강도나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라는 분석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펴낸 <우리나라 및 외국의 담배 가격 정책 비교 분석> 보고서를 보면 OECD 회원국들의 금연 정책을 △담배 가격 △금연 장소 규제 △광고 규제 기준으로 종합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는 16.96점(80점 만점)으로 3개 기준 분석·비교가 모두 가능한 25개국 가운데 24위로 조사됐다. 금연 정책이 가장 모범적인 나라는 아일랜드(62.00)였다. 이어서 영국(61.54), 뉴질랜드(56.63), 노르웨이(48.58), 스페인(47.38) 등의 순이었다. 꼴찌는 뜻밖에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로 꼽히는 스위스(14.68)였다.

담뱃값이 가장 싼 나라, 담배 광고의 천국

이 가운데 담배 가격 지표의 경우 우리나라가 8.62점(30점 만점)으로 비교 가능한 34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대한민국이 담배가 가장 싼 나라인 것이다. 이웃 일본이 33위(8.64)로 우리나라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였다. 멕시코(9.63), 칠레(10.02), 에스토니아(10.26) 등도 대표적으로 담배 가격이 매우 싼 나라들이었다.

TV·라디오·신문·옥외 광고물·담배 브랜드 인쇄 상품·담배 회사 후원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담배 광고 규제 지표에서도 우리나라(13점 만점에 3.6)는 비교 가능한 29개 나라 가운데 28위였다. 캐나다 등 선진국을 다녀올 때마다 그 나라의 담배 광고, 판매 실태를 유심히 살펴본다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최예용 박사(보건학)는 "대한민국은 담배 광고의 천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금연 정책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중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후진국이다. 자살, 저출산, 고령화 속도 등(이들 대부분이 건강과 직결돼 있음) 나쁜 것은 어찌 이리도 1등을 잘하는지 정말 창피할 따름이다. OECD 흡연율 통계(15세 이상 성인 남성, 2009년)를 보면 부끄럽게도 우리나라(44.3퍼센트)는 OECD 34개 나라 가운데 그리스(46.3퍼센트)에 이어 두 번째로 흡연율이 높다.

따라서 관 속에 집어넣어 오랫동안 땅속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던 담뱃값 인상이 매우 적절한 때를 맞춰 뚜껑을 열고 밝은 세상으로 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우리 사회는 왁자지껄하다. 부차적인 문제가 주요 문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비과학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관 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담뱃값 인상 반대론자들은 2500원 하는 담배를 4500원으로 올리자는 법안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하자 세수를 확보하려는 꼼수라고 공격한다. "정부가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보장을 강화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려고 담뱃값을 무리하게 인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런 전략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흡연 왕국' 대한민국을 '금연 강국', 즉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보아줄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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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황당한 담뱃값 인상 반대 이유

언론인을 포함한 일부 지식인들의 담뱃값 인상 반대 논거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담배가 그토록 해롭다면 정부가 담배를 마약류로 지정해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낫겠다고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다. 물론 '원조 금연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박재갑 국립암센터 전 원장 같은 이는 이런 비아냥거림에 대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불교 국가 부탄에서처럼 담배 판매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스트레스가 담배보다 더 무서운 만병의 근원이고 담뱃값 인상이 될 경우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 더 큰 문제이며 오히려 흡연 욕구를 자극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신문 칼럼을 통해 주장하는 지식인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담뱃값 인상이 이루어지면 부자들은 가격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나 저소득층, 즉 서민들은 가계 부담이 크고 소득 역진적이어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담뱃값 가지고 소득 역진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소득 역진 문제가 중요한 화두라면 그들은 소득 역진과 관련해 담뱃값보다 규모나 심각성이 몇 십, 몇 백 배 더 큰 우리 사회의 다른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어왔는가.

만약 대폭 오른 담뱃값 때문에 금연을 하는 저소득층이 많다면 그들은 사실상 상당한 소득 증진과 함께 건강까지 덤으로 챙기게 된다. 또 금연으로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게 되므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물론 가격 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서민들에게는 소득 감소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들도 금연할 가능성이 크므로 단기적으로는 담뱃값 인상으로 더 거두게 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주로 서민들의 건강 증진과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에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면 될 터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 저소득층, 소외 계층 지원에 써야

보건복지부도 담뱃값 인상을 통해 마련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아동·청소년·여성·노인·장애인·저소득층 등에 대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수입액의 10퍼센트 이상을 금연 교육 및 광고 등 흡연자를 위한 건강 관리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담뱃값 인상 반대론자들은 국민건강증진기금은 흡연자한테서 거둔 돈인데 정작 흡연자의 건강증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아왔다고 지적해왔다. 2011년의 경우 부담금의 1.5퍼센트(246억 원)만이 금연 사업에 쓰였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현재 담배 판매 수입 중 일부를 국민건강증진부담금으로 적립한다. 담배 한 갑당 354원이다. 이렇게 해서 2011년 모인 부담금은 1조6355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65퍼센트인 1조631억 원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리는 데 사용됐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흡연으로 인한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에 쓰였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흡연·음주·비만 때문에 지출되는 순수 진료비가 6조7000억 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의 14퍼센트를 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4년간 이들 질병이나 행태 관련 진료비가 40퍼센트 넘게 급증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담배로 인한 산불이나 음주 운전 사고, 주취 폭력과 같은 다른 피해나 사회간접비용까지 보탠다면 그 피해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사실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따진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 사회가 아니다.

담뱃값 인상은 바람직한 금연 정책과 건강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측면에서 논의되어야만 한다. 소득 역진이니, 서민 부담이니 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논쟁이나 주장을 과도하게 자주 펼치는 것은 건강한 정신을 지닌, 건강한 사람들의 태도는 결코 아니다.

우리보다 3~5배 더 높은 담배 가격 정책을 이미 펴고 있는 영국, 아일랜드 등 여러 선진국들에도 분명 서민이나 저소득층이 많이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에서는 높은 담배 가격을 포함한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펴고 있지 않은가.

구더기(물가) 무서워 장(담뱃값 인상) 담그기 두려운 경제 관료

흡연 피해를 줄이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자세는 너무나 느슨하고 안이하다. 박근혜 정부 안에서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담뱃값 대폭 인상을 강조하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 부담과 물가에 끼치는 악영향을 내세우며 이를 반대하는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런 엇박자는 이미 이전 정부에서도 있어 왔던 일이어서 어떤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국민 건강, 즉 사회의 건강성보다는 눈앞에 벌어지는 당장의 갈등을 염려한 탓이 크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 순간에도 연간 수만 명이 흡연 때문에, 그리고 간접 흡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을 한다면 경제 부처 수장이나 경제 관료들이 그런 논리와 이유를 대지는 않을 것이다.

강력한 금연 정책을 외면하고선 건강 증진이란 헛구호요, 선진국이란 목표는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금연 정책을 펴야만 국민의 건강을 위한 다른 정책, 다시 말해 술에 대한 건강 부담금 제도 도입과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에 대한 비만세 도입 등과 같은 다른 건강 증진 정책을 펼 수 있게 될 것이다. 담뱃값 인상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담가야 할 장은 담뱃값 인상이다. 그런데도 소득 역진, 서민 부담, 물가 영향 등의 구더기를 부풀리는 '건강 사회의 적들'이 있다. 이들 적들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건강 사회를 앞당기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담뱃값 인상은 그 첫 가늠자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한 제1계명은 금연이다. 흡연자의 금연은 자신을 살리고 가족과 이웃을 살린다. 금연은 흡연자를 사회적 살인자란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강력한 금연 정책으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운동, 식습관 개선, 혈압·혈당·체중 정상 범위 관리, 혈중 콜레스테롤 조절과 같은 다른 6가지 건강 수칙도 어렵지 않게 실천될 것이다. 금연은 다른 건강 수칙을 이끄는 선도 수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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