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선생이 살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는 <경세유표>에서 나라가 운영하는 공공 병원의 살림이 형편없다고 통탄한다.
"전의감·혜민서는 <주례>의 질의(疾醫)·양의(瘍醫)이다. 그런데 이 관서의 재정이 빈약하여 그 형편이 말이 아니다. 때문에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어 결국 극히 중요한 관서로서 도리어 내용 없는 명칭만 가지고 있게 되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랴? (…) 의학이란 것은 국가의 큰 사업으로 된다. 이제 그에 대한 법제를 해명하여 명실이 서로 부합되도록 할 것이며 그 피폐현상을 일체 방임해서는 안 된다." (<경세유표 1>(여강출판사 펴냄))
그 때의 전의감이나 혜민서는 아니나 지금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며칠 전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을 곧 폐업한다고 발표했다. 몇 가지 맥락만 바꾸면 <경세유표>에 적힌 내용 그대로다.
진주의료원을 닫겠다는 공식적인 이유는 부채 때문이다. 2012년 말을 기준으로 부채가 279억 원이고, 매년 40~60억 원의 적자를 본다고 한다. 부채와 적자의 내용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결국 경제와 효율을 이유로 삼는 것은 틀림없다. 15년째 계속되는 그 익숙한(!) '구조 개혁'이란 이름으로.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 의료 기관을 어쩌겠다는 소리는 하도 자주 들은 이야기라 놀랍지도 않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새 임기가 시작되면 기다렸다는 듯 공공 병원 '개혁'을 꺼내든다. 아니나 다를까, 경상남도도 홍준표 새 도지사가 취임하기 무섭게 내놓은 (예상되었던) 카드다.
다른 곳의 사정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기회만 있으면 시·도립 의료원을 없애자는 지방자치단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적자를 줄이라고 대놓고 압박하는 곳이 그나마 좀 나은 데라니.
공공 병원을 동네 슈퍼나 통닭집으로 보면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감당할 도리가 없다. 다른 슈퍼나 통닭집, 음식점이 있을 테니 주민들도 그러려니 여기기 쉽다.
어디 진주의료원만 그럴까. 지금 공공 병원의 적자를 타박하고 있는 사람들의 논리는 동네 슈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저소득층 진료를 담당한다는 소리에 잠깐 멈칫거릴 뿐이다.
이런 눈으로는 공공 병원의 존폐는 재정과 경영이라는 기술적 근거에 좌우된다. 그러나 천만에, 공공 병원은 벌써부터 100퍼센트 정치의 영역이었다. 비효율과 재정 적자라는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불평등.
▲ 홍준표 경남도지사. ⓒ프레시안(최형락) |
부산시와 경상남도가 민간 업체에 보전해 준 돈이 작년에만 469억 원이란다. 이대로 가면, 물가 상승까지 쳐서 앞으로 20년간 6조 원을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놀랍게도 경상남도 안에 비슷한 다리가 또 있다. 마창대교 역시 매년 100억 원가량 적자를 도 정부가 메워준다.
이 정도면 진주의료원의 적자는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다. 도 살림이 어렵다면서도 다리에 쏟아붓는 혈세는 상상을 넘는다. 그런데도 짐짓 도 정부의 반격은 공공 병원을 향한다. 의료원을 없애서 적자를 줄이겠다는 눈물겨운 신파 정치. 공공이 공공을 공격하는 '자해' 행위, 좋게 봐야 희생양이다.
정부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는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선거에서의 표만을 뜻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의지, 도덕과 선의까지 모두 포함하는 넓은 뜻의 정치다.
물론 제도 정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도지사와 도 의회가 의료원의 목을 쥐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단지 한 개인으로 볼 수는 없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이들은 사회 관계와 그들의 이익을 차별적으로 대변하고 대표한다.
의료원을 없애서 줄일 수 있는 재정 적자는 미미하다. 그런데도 구조 개혁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불평등의 정치가 작동한다. 의료원은 기존 권력이 이해관계를 해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나아가 폐쇄를 통해 직접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의료원과 같은 공공 병원에 미치는 권력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일차적으로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기관의 존폐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은 뻔하다. 지키자는 사람들은 현실 정치에서 변변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과소' 대표된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지금은 의료원을 없애도 광역자치단체의 장(도지사나 시장), 국회의원, 시도의원이 다시 뽑히는 데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공 병원은 늘 정치적 소모품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공공 의료의 비중은 민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곳곳에 민간 병원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시설이나 장비, 꾸밈새는 점점 더 경쟁 대상이 되지 못한다. 주민들의 호감이나 평가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한마디로, 많은 주민들은 공공 병원이 없어져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론과 대중 정치의 측면에서도 공공 병원의 기반은 그만큼 취약하다. 극단적으로 고급과 대형, 기술을 숭상하는 의료 구조는 이미 사람들의 생각까지 차지했다.
공공 병원의 위축은 진주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비수도권의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그리고 경제가 힘들수록 공공 병원은 구조 조정의 첫 번째 목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거듭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와 구조가 그런 만큼 당장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공 병원이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한국 의료의 과제이다. 또 반복할 필요 없이, 공공 의료의 가치와 중요성은 분명하다.
길게 봐서 공공 의료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정치의 변화가 보태져야 한다. 공공 의료가 정치적으로 적절하게 대표될 때에만 이들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대표성의 핵심에 있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공공 병원의 기능은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더욱 민감하게 반영하도록 바뀌고 또 커져야 한다. 좀 더 많고 다양한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역할을 할 때 정치적 구속력은 커진다. 아울러, 어떤 이름으로든 여론과 대중 정치 역시 공공 의료를 응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불평등의 정치는 끊임없이 공공 병원을 '악용'하려고 할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태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왜, 어떻게, 악용하려 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전근대성과 신자유주의의 기묘한 조합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기존 권력의 횡포에 대항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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