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구제금융이 '시간벌기'에 불과한 이유

[분석] "금융동맹으로 못가면, 유로존 붕괴 대비해야"

유로존 중심국으로는 처음으로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게 됐지만, 이것으로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불안을 자극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00억 유로(약 146조 원)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면서도 스페인 정부는 "은행에 대한 지원이지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의 이런 입장은 이번 구제금융이 스페인 정부가 갚아야 할 부채는 접근하지도 못하고, 당장 스페인은 물론 유로존을 연쇄 붕괴로 몰고갈 뇌관부터 끄려는 '긴급 표적 지원'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이 신속하게, 선제적이고 압도적 규모로 결정됐다고 유로존 관료들이 자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타격을 받고 있는 스페인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1000억 유로가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로존 중심국 스페인의 위기는 구제금융으로 막기 어려워, '금융동맹'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AP=연합
스페인 부채, 민간부채 부담이 압도적

이번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주장도 반박될 수 있다. 구제금융설이 나돈 지 몇 개월 동안 스페인 정부는 한사코 구제금융을 거부했다. 스페인 정부는 갈수록 위기가 커지니까 지난 주말 "스페인이 아니라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스페인 정부가 구제금융 규모를 확정하기 위한 자체 조사도 마무리하기 전에, 유로존 장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추가 긴축조건도 없이 '은행에 대한 지원용'이라는 이례적인 구제금융을 결정한 것을 수용함으로써 "돈을 주겠다는 쪽이 사정해서 받아주는 것"이라는 모양새를 갖췄다.

문제는 이것으로 스페인과 유로존의 위기에 '방화벽'이 형성되느냐는 점이다. 벌써부터 회의론이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은 훨씬 더 큰 문제를 던지고 있다"면서 "스페인 전체가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결정된 2년 전부터 "스페인도 구제금융을 받게 될 것이고, 그리스는 스페인에 비하면 경량급"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스페인의 은행 부실채권만 1700억 유로가 넘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금융전문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초는 구제금융 규모의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뮌초는 "스페인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은 부채를 한 곳에서 다른 회계장부로 옮기는 것일 뿐"이라면서 "스페인 정부의 부채 부담이 늘어났다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정부 부채와 은행 등 민간부채는 모두 합치면 지난해 기준으로 약 1.6조 달러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363%에 달한다.

스페인, 유럽통합 촉진할 계기될까

스페인의 위기는 금융권 부실을 정부가 막으려고 하면서 재정위기가 심해지고, 이에 따라 스페인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 다시 금융권 부실이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성격이다. 특히 스페인 부채의 80% 이상이 민간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어, 스페인에 필요한 구제금융 규모는 민간부채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

JP모건이나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등에서 스페인에 대한 총 구제금융 비용이 4500억 유로 이상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이때문에 오히려 유로존과 유럽 통합을 위해 스페인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낙관론도 펴고 있다. 스페인을 구하려면 결국 은행 부실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금융동맹'이 맺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결국 단일 통화에, 재정은 별개라는 유로존 체제의 결함을 교정하는 '재정동맹'이라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뮌초는 이런 변화가 기대처럼 쉽지 않을 것을 지적하면서 "유럽 지도자들이 얼렁뚱당 넘어가려고 한다면, 유로존 붕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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