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끝내 구제금융, 진짜 목적은 유로존 구하기"

[분석]"유로존 중심국 최초 구제금융행, '유로존 붕괴'시작"

유로존 위기 이후 스페인이 끝내 4번째 구제금융국이 됐다. 루이스 데 귄도스 스페인 경제장관은 9일(현지시간) 유로존 재무장관(유로그룹) 긴급 전화회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스페인 정부가 유로존 국가들에 은행 분야에 필요한 구제금융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귄도스 장관은 구제금융 규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로그룹은 성명을 통해 최대 1000억 유로(약 146조 원)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번 구제금융의 성격 자체가 앞서 유로존 일부 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과 여러모로 달라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앞서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이른바 '유로존 주변국'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이들 나라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 전면적인 긴축안을 강요받으며 정부가 직접 받는 형식의 구제금융이었다.
▲ 스페인의 귄도스 경제장관이 9일(현지시간)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구제금융을 받게 된 나라의 장관치고 표정과 제스처가 당당하다. ⓒAP=연합
스페인 정부 '자금 지원은 유로화의 앞날을 위한 회원국들의 기여"

스페인은 유로존 중심국으로는 처음으로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정부가 최종 책임을 지지만 추가 긴축 요구도 받지 않고 스페인 정부 산하 은행 구조조정 기구에 구제금융이 제공된다.

구제금융의 용처가 스페인 부실은행들의 자본 확충으로 정해진 것도 크게 다른 점이다. 이는 스페인 부실은행들의 문제는 스페인 정부가 먼저 걱정할 일이 아니라 유로존를 구하기 위한 유로존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내세워, 기존의 구제금융 양식을 거부하며 버틴 스페인 정부의 '벼랑 끝 전술'이 그대로 통한 것이다.

귄도스 장관은 "지원자금에 따르는 조건은 스페인 사회가 아니라 은행에 국한돼 적용되는 것이며, 이번 지원 합의는 유로화의 앞날을 위한 회원국들의 기여"라고 강조했다.

구제금융 지원에 IMF가 빠진 이유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예 빠진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스페인의 부실은행에 투입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용도까지 정해진 구제금융은 IMF 규정상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IMF의 구제금융은 전면적인 긴축안과 함께 정부에 제공되는 형식의 구제금융이어야 한다.

하지만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에 대해 유로그룹의 합의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보고서는 IMF로부터 나왔다. IMF가 77쪽에 달하는 스페인 금융권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지 24시간도 못돼 유로그룹의 합의가 이뤄졌다. IMF는 이 보고서에서 "스페인 금융부실은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수준의 위기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10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규모도 IMF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당장 스페인 금융권은 최소 400억 유로의 자금 투입이 필요하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부실 채권이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해 두 배 이상의 규모로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금이 어떻게 조달되느냐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유로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존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EFSF를 항구적 체제로 바꿔 7월 출범하는 유럽안정기금(ESM)에서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자금이 제공될 것으로 알려졌다.

충격없는 방식의 자금 조달은 가능한가?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EFSF는 민간채권에 대한 선순위 지위가 없지만, ESF은 모든 민간 채권에 대해 선순위 권리를 지니고 있다"면서 "ESF에서 구제금융이 나오는 방식은 스페인 국채 금리를 급등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정부가 외부에 요청할 자금 지원 규모를 확정하기 위한 자체 조사가 이달말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는데도 유로그룹이 서둘러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한 것도 스페인의 구제금융이 사실 '유로존을 위한 구제금융'의 성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오는 17일 그리스 2차 총선 결과가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기에 미리 스페인에 대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IMF는 보고서를 통해, 스페인에 대한 단호한 선제 조치가 늦춰지면 스페인의 거시경제와 시장의 신뢰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이 '유로존을 위한 구제금융'이라는 지적에서 보여지듯, 사실 스페인은 기존의 구제금융국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스페인은 지난해 기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며 유로존에서도 4위의 경제국이다. 그리스 GDP의 5배 규모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스페인이 전면적인 파산위기에 몰리면 이를 막을 구제금융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 스페인의 위기를 막을 길이 없다는 우려는 비슷한 처지인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도 다시 본격화시킬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개시'는 '유로존 붕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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