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유로존 이탈, '돈'은 알고 있다

[분석]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막을 수 없는 이유

17일 정부가 긴급 경제금융상황점검 회의를 갖고 위기대응책을 재점검하고 필요하면 시장안전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그리스 쇼크'로 코스피 지수가 폭락하며 하룻만에 시가총액 34조 원이 증발하고 원.달러 환율은 11.6원이나 급등하며 연중 최고점을 경신하는 등 금융불안이 심상치 않은 데 따른 조치다.

'그리스 쇼크'는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져 유로존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는 우려가 시장에 퍼진 것이다. 유로존 회원국이 디폴트를 선언하면, 유로화를 발행할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디폴트는 곧 '유로존 탈퇴'를 의미한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져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정반대의 전망이 대립하고 있다.

"전망을 가장한 희망사항에 속지말라"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은 '전망을 가장한 희망사항'이며 최대한 그렇게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가깝다. 이런 희망사항과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냉정하다. 시장의 논리 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전망하는 진영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시장과의 싸움을 하겠다는 것이며, 역사는 시장의 논리와 싸워서 이긴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신전 앞에서 16일(현지시간) 2012년 런던올림픽으로 옮겨질 성화의 불길이 솟고 있다. 하지만 원래 상서로워야 할 불길의 느낌은 그리스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 하다. ⓒAP=연합
그리스, 무정부 상태에서 2차 총선 관리자 임명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의 이탈을 막으려고 억지로 노력하면 할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스의 '질서있는 유로존 탈퇴'와 그 파장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조치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상황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그리스는 마침내 총선을 다시 치르기로 확정했다.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은 6월 17일로 2차 총선 날짜를 정하고, 이를 관리할 과도정부 총리를 임명했다. 지난 6일 총선에서 원내 1당의 득표율이 20%도 안될 정도로 표가 분산됐고, 그렇다고 정당끼리 뜻을 모아 연립정부를 구성하지도 못해 결국 헌법 규정에 따라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 자체가 의원내각제에서 무정부 상태에 이미 빠진 것이고, 이번에 정부 구성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2위로 급부상한 급진좌파연합이라는 정당이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안을 재협상하자며 연정 구성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급진좌파연합은 다시 총선을 치르면 원내 1당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2차 총선의 지지율 분포 역시 현재 급진좌파연합이 20%에 불과하다. 다시 총선을 해도 정부 구성이 가능할지 의문이며, 당장 2차 총선까지 불안감이 고조되는 앞으로 한달 동안 그리스가 디폴트로 가지 않고 버틸 수나 있는지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계속된 뱅크런, 최근 7배 규모로 급증

'무정부 상태'에 대한 우려는 뱅크런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며칠 사이에 하루 평균 7억 유로(약 1조 350억 원)이 인출됐다고 그리스 대통령실이 공식 발표했다.

충격적인 규모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뱅크런은 진정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가 1차 구제금융을 받은 2년전 이후 뱅크런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동안 하루 평균 1억 유로(약 1500억 원 정도)가 계속 빠져나간 것이다.

이 규모가 최근 7배로 뛰었다는 것은 그리스발 뱅크런 사태가 재정위기가 심각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옮겨가는 '뱅크런 도미노'가 우려될 정도로 악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 국민의 여론도 자가당착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은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구제금융은 받겠다면서 그 조건으로 약속한 긴축안은 그대로 이행하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자가당착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약속을 안지키면 구제금융은 없다면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원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IMF 총재 "시간 더 주거나, 질서 있는 이탈"

결국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실제로 집행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발언으로 속내를 비쳤다.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그리스의 '질서 있는 탈퇴'에도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그리스가 긴축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시간을 더 주거나 아니면 질서 있는 이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긴축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당분간 디폴트까지 가지는 않도록 지원을 하면서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영국 <가디언>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사이먼 젱킨스는 현재의 그리스 사태에 대해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막으려는 헛된 노력이 재앙을 키울 뿐"이라고 진단했다.

젱킨스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시장의 현실'과 이를 감추고 있는 당국자들의 거짓말을 지적했다. 젱킨스는 이번 칼럼에서 "유럽의 지도자들은 시장의 현실에 굴복할 수 밖에 없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만이 이 악몽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유로존은 정부 없는 국가"

요즘 신문의 금융란은 그저 말장난 같은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이 그저 말의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파국이나 재앙이 될 것인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시장은 이런 판타지에 관심 없다. 돈의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이미 '그렉시트(Greece Exit에서 나온 신조어) 알고리즘으로 채워져 있고, 유로존 해체를 가정하고 있다.

채권 디폴트에 대한 보험이 각광을 받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는 치솟는 금리가 보여주듯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공포에 질린다지만, 돈은 그저 상황에 맞게 움직일 뿐이다.

유로존을 관리한다는 당국자들만 현실 부정 상태에 빠져있다. 유로화 안정을 위한 메커니즘을 만든다는 소리가 나온 게 3년이 지났고, EU 재무장관들이 그리스를 유로존에 머물게 하기 위해 '단호하고 잘 조율된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한 지 2년이 됐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다. 그리스를 질서정연하게 유로존에서 탈퇴시킬 것인지, 경제학적으로 보다 타당한 새로운 유로존을 추진할 것인지 등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런 결정을 내릴 합법적인 정치권력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정부가 없는 국가'다.

"금융당국, 신뢰 상실 상태"

금융당국의 약점은 그들이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은행과 재무장관은 화폐의 평가절하나 디폴트를 시사하는 말은, 그것이 현실화되기까지 절대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신뢰도에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조용히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런 신뢰가 없는 상태다. 그리스의 정치경제는 유로존에 머물기 위해 치러야할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몇 년 동안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빚을 내고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더 이상 비용을 치를 수 없다. 빌려서도 안되고, 은행이 빌려줘서도 안됐을 엄청난 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일이 무한 반복될 수도 없다.

그리스 국민들은 유로존에 머물러 있는 한 영원한 노예신세를 면치 못한다. 건전한 경제가 되려면 파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디폴트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장농에 숨겨둔 유로화만 40조 원 넘어"

요즘 그리스의 은행에 자발적으로 돈을 맡겨두고 있는 사람은 바보 뿐이다. 280억 유로(약 41조 원)로 추정되는 유로 지폐가 그리스인들의 집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때까지 경제회복은 있을 수 없다. 은행은 파산시켜 국유화해야 하고, 유로화로 된 부채는 그리스의 옛 화폐인 드라크마로 전환되어야 한다. 채권자나 예금자들은 상당한 손실을 보겠지만 나라가 경각에 달린 경우 이런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야 이런 악몽이 끝나기 시작한다. 부채 문제에서 벗어나야 그리스는 이전의 아이슬란드나 아르헨티나처럼 현실에 맞는 환율에 기초해 경제 회복에 나설 수 있다.

"독일만 좋은 유로존, 유지 비용 감당 한계 도달"

한가지만은 분영하다. 1년이 지나면 그리스는 회복 궤도에 올라서 모든 사람들은 유로존을 탈퇴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바보들의 말을 왜 사람들이 믿었을까 의문이 들 것이다.

이같은 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진짜 재앙이다. 지난 3년 사이 재정위기국들의 재무장관은 독일에게 읍소하며 여러 형태의 구제금융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리아 주 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한 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이런 구제금융이 지속되지 않을 것을 시사한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유로 주창자들은 유로화가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가속시킬 묘책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독일의 효율성을 유럽 전역에 스며들게 해 변영의 새 시대를 열어 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유로 회의론자들은 유로화가 그저 독일이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국들을 수렁에 빠뜨리고 그들의 수출을 뺏어가는 수단이 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한동안 독일은 이런 차이를 보조금과 자금 융통으로 메웠다. 하지만 조만간 이런 지원과 대출은 끝날 것이다. 그 날이 지금이다. 회의론자의 주장이 옳았다.

유럽의 재무장관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구상했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다소 나은 유로존을 형성할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부채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유로를 찍어내 은행들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들이 일종의 재정 통합을 추진한다면 얼마 못가 스페인, 나아가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프랑스 등의 유권자들로부터 거부당할 것이다.

몇 년마다 또다른 그리스가 나타나고, 다시 유럽의 지도자들과 시장 현실간의 소모적인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이런 전쟁은 시장이 항상 이기는 법이다.

유럽의 민족들은 통합하기 어려운 속성들을 지녔다. 또한 오만한 지배자들에게 항상 저항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유로존은 유럽이 감당하기 어려운 통합을 요구하는 체제다. 너무 나간 것이다. 통합을 꿈꿨던 신성로마제국에서부터 나폴레옹 시대에서 제3제국에 이르기까지 그 체제는 파국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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