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사거리 연장, 외교엔 공짜가 없다"

[정욱식의 '오, 평화'] 국제협약 의장국이 협약 무시하는 꼴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발표를 타고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1일 내외신 간담회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해야 하고, "미국과 곧 타협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등 관련 부처도 미국과 논의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자 대다수 언론은 연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문제와 남한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교차보도하면서 '11년 숙원이 풀릴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11년 숙원이란 2001년 개정된 한미 미사일 협정에 의해서도 한국이 탄두중량 500kg, 사거리 300km를 넘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10년 넘게 묶여 있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남한 남부에서 북한 북부를 타격할 수 있도록 800~1000km 정도로 사거리를 연장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도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3월 25일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시각차이도 드러났다.

MB '조만간 결론', 오바마 '글쎄'

MB는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확인하면서도 "이 문제는 대북전략 차원이기 때문에 합당한 합의가 이뤄져 조만간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반응은 한 마디로 '글쎄'였다. 그는 실무선에서 전제 조건 없이 논의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주면서도 "최종적인 결과는 특정 무기나 미사일 사거리 문제보다는 우리의 국민을 보호하고 동맹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오바마의 발언은 세 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동맹국인 미국이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제'를 제공하고 있는데 한국이 굳이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집착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동맹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에 있는 만큼, 한국의 사거리 연장이 야기할 부정적 여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한미동맹의 포괄적인 군사 능력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등 다른 사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MB는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반면, 오바마는 검토해야 할 사안이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안보 프레임'으로 총선과 대선을 치르려는 MB 정권이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다루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움직임에 편승해 '안보 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국익과는 거리가 멀게 나올 공산이 크다. MB 정부가 '김칫국만 마시는 것'으로 끝나거나, '외교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입증시키듯 MD 참여와 같은 상당한 반대 급부를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25일 청와대 한미 정상회담 ⓒ청와대

의장국인 한국이 국제협약 위반?

기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는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군사적 실효성,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미칠 파장,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군비경쟁,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등 사거리 연장의 반대급부로 미국에게 제공할 선물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반드시 따져봐야 할 문제는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국제협약에 저촉되는 지 여부이다. 현재 한국이 가입한 탄도미사일 관련 국제 규범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이고, 다른 하나는 탄도미사일확산방지 헤이그 행동협약(Hague Code of Conduct against Ballistic Missile Proliferation, HCOC)이다.

MTCR는 탑재중량 500kg, 사거리 300km가 넘는 미사일과 위성발사체, 무인항공기(UAV) 등의 수출 및 기술이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자발적 국제규범이다. 자국 기술로 개발하는 것을 제약하지 않지만, 타국에서 이전 받은 기술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미사일은 미국의 지대지 미사일인 나이키-허큘러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이 미사일을 개량해 사거리를 350km로 늘리는 '백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를 포착한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압력을 가해 사거리를 180km로 낮췄다. 그리고 2001년에는 한국의 MTCR 가입을 조건으로 사거리를 300km로 늘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바로 현무-1, 2이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이 또 다시 미사일협정을 개정해 사정거리를 MTCR 제한치인 300km 이상으로 합의할 경우, 이 협정과 저촉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사거리 연장은 헤이그 협약과도 저촉된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나로호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도 가입한 이 협약에서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면서도 "대량살상무기 운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확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우주발사체 프로그램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은폐하도록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나로호 2단 추진체 개발로 축적된 로켓 기술을 탄도미사일 개발로 활용하면 수 년 안에 1000km급 미사일 개발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는 우주발사체 기술을 탄도미사일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한 헤이그 협약과 저촉된다. 또한 국가간의 우주발사체 개발 협력이 탄도미사일 확산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나로호 1단 로켓을 제공하고 있는 러시아의 반발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한국은 2012-2013년 헤이그 협약의 의장국을 맡고 있다. 올 여름에는 이 협약의 국제회의 개최도 예정해놓고 있다. '국격'을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보좌진으로부터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보고받고도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자신하고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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