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가 열어 준 MB와 간 나오토의 '다른 길'

[정욱식의 '핵과 인간'] 후쿠시마의 경고와 '원전 르네상스'

"3.11 후쿠시마 재앙을 겪은 뒤 생각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도쿄를 포함해 수도권에서 살지 못하고 피난을 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마주했었습니다. 상황이 그 정도까지 가면 국민들이 고난을 겪을 뿐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후쿠시마 참사 당시 일본 총리였고, 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퇴했던 간 나오토가 2012년 2월 17일자 <로이터>을 통해 한 말이다. 그는 사고 발생 1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더 큰 재앙이 발생하면 수천만명의 도쿄 주민들이 피난을 떠나고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환영에 시달린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장 안전한 길은 원전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도달했다"고 역설했다. 인류에게 핵을 선사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핵'의 사도로 변신했듯이, 간 나오토 전 총리도 후쿠시마 참사를 겪고는 '탈원전'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참사를 기회로 여기면서 '원전 전도사'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고 공식 발표한 날, 이명박은 아랍 에미리트(UAE)의 한국형 원전 기공식에 참석했다. 정부 관리들은 후쿠시마 참사로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높아진 시기에 한국의 원전은 안전하다며 원전 정책을 고수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급기야 이명박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금년 12월 말에 우리가 100% 국산기술이 되면 5대 (원전) 강국이 들어가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참사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원전 질주가 주춤하는 사이에 한국이 치고 나가자는 심보도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뉴시스

후쿠시마 참사는 끝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과 이로 인한 쓰나미가 해안 지방을 덮쳤다. 지진과 쓰나미로 1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재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1, 2, 3, 4호기의 원자로가 지진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 것이다. 원자로에선 냉각수가 흘러나왔고 냉각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되고 말았다. 노심의 온도는 수천도까지 올라갔고, 냉각수와 핵연료봉 피폭제인 지르코늄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수소를 만들어냈고, 이는 곧 수소폭발로 이어졌다. 또한 3,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에서도 냉각수 유출로 인해 사용후 연료봉의 멜트다운(노심용융)과 수속폭발이 일어났다. 참고로 후쿠시마에는 모두 10기의 원전이 있으며, 폭발한 원전 1, 2, 3, 4호기는 모두 30년 이상된 노후 원전들이다.

이 사고로 인해 막대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와 바다로 계속 퍼져가고 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 원전 사고로 인해 약 4경 베크렐(Bq))에 달하는 세슘이 방출되었는데 이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방출된 양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로 인해 일본 영토의 절반 가량이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알려졌고, 한국은 물론이고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 후쿠시마에서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도쿄의 수돗물에서 세슘이 검출되었고, 도쿄보다 더 멀리 떨어진 시즈오카 일부 지역도 세슘 오염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찻잎 수확을 포기했다. 후쿠시마 반경 30킬로미터 내외 지역에 있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설사와 코피를 쏟는 환자들이 급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후쿠시마 참사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사고 발생 9개월이 지나자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원자로가 냉온정지 상태에 이르렀고, 사고 자체도 수습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두 달 후 2호기 원자로 압력용기에 설치된 온도계의 수치가 400도까지 치솟으면서 또 다시 일본 전역과 주변국들을 긴장케 했다. 도쿄 전력은 온도계의 고장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원자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자로 1,2,3호기의 핵연료가 압력용기를 뚫고 격납용기 바닥에 쌓여 있고, 사용후 연료봉 저장수소도 취약해져 붕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시 지진, 쓰나미, 태풍 등 자연 재해가 들이닥칠 경우 대형 참사의 재발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인들은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원전 사고 악몽을 떠올릴 만큼 '후쿠시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사고 발생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매일 6000-7000만 베크렐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고 있다.

1973년 후쿠시마 원전 유치 위원회의 한 아주머니는 일본 최초의 원전 청문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방사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올해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히로시마의 한 고등학교가 우승했잖아요. 그런데 원폭 피해를 당했을 때 히로시마에서는 앞으로 75년 동안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한다고 말이 있었습니다."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한다는 히로시마에서 고교 야구 대회 우승팀이 나왔다는 것은 방사능의 위험이 과장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40년이 흐른 2012년 3월 1일 '비키니의 날'에 참석한 필자는 후쿠시마에서 온 여러 주민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은 "저는 농사밖에 할 줄 아는게 없는데, 제가 수확한 쌀을 먹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아플까봐 걱정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말해 듣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어쩔 수 없이 후쿠시마를 떠난 주민들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후쿠시마 참사는 '핵과 인간'이 양립할 수 있을지, 또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특히 원전 1류 선진국으로 불려온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이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런데 이런 충격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계 최강의 원자력 선진국으로 자부했던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섬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를 겪고 나서야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등 '원전 의존형' 에너지 정책을 수정했다. 미국과 함께 양대 핵 강국이었던 소련에서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사고는 소련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후쿠시마 참사를 목도하고는 일부 나라들은 '탈원전'을 선언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19개의 원전 가운데 노후한 8개는 즉각 폐쇄하고 나머지 11개의 원전도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의 뒤를 이어 스위스와 이탈리아도 탈원전 정책을 선언했고, 스페인, 룩셈부르크, 쿠웨이트, 태국 등도 원전 정책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수립될 보다 튼튼한 핵안보 체제는 더욱 안전하고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에 기여할 것이며, 이로 인해 원자력은 인류의 복지와 녹색 성장을 위한 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핵 안보 정상회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인사말 가운데 일부이다. 취임 직후부터 원전을 '수출 동력' 확보와 '녹색 성장'의 견인차로 삼겠다고 밝힌 이명박 정부는 현재 21기의 원전을 2024년에는 34기로, 2030년까지는 40기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후쿠시마 참사를 계기로 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신규 원전 후보지로 삼척과 영덕을 선정한 것에서도 정부의 '묻지마 원전' 정책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명박의 '원전 사랑'은 2012년 2월 22일 그의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가 주장한 근거들은 이런 것들이다. "독일이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한다고 하지만 그건 경우가 다릅니다. 독일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그냥 갖다 쓰면 됩니다." "원자력 폐기한다고 하면 전기료가 40% 올라가야 합니다. 가구당 1년에 86만 원 정도 더 부담해야 합니다. 국가적으로는 15조의 에너지 비용을 써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기름, 가스 안 나는 나라는 이길(원전)밖에 없습니다." "일본도 후쿠시마 사태가 났지만 원자력은 일부 반대가 있지만 원전산업을 계속하고, 국제시장에서 우리와 계속 경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앞으로 신재생에너지가 나와서 경제성이 있으려면 적어도 빠르면 30~40년, 요즘은 4~50년이면 어떤 길이 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이 길 외에는 없습니다."

마치 원전 마피아들의 발언을 녹음해 틀어놓은 것과 같은 발언들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이 제시한 근거들은 하나같이 '새빨간 거짓말'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원전이 생산한 전기를 수입한다는 독일은 전력 수출국이다. 거꾸로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이 75퍼센트나 되는 프랑스는 전력 수입국이다. 2000년대 들어 탈원전 시동을 걸었던 독일은 원자력 산업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기세 인상이 거의 없었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54개 원전 가운데 단 1-2기만 가동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2012년 3월 도쿄를 방문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일본 역시 전체 전력 생산량의 27퍼센트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었고,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 전력 대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도 많았다. 그런데 전력 대란설은 원자력계의 엄살에 불과했고, 일본의 많은 지역들은 풍력과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력 자급을 실현하고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을 확보하는데 40년 안팎이 걸린다는 주장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 그리고 여러 언론들의 막강한 홍보 탓인지, 많은 사람들도 원자력은 값싼 에너지인 반면에, 재생 에너지은 값비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점차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원자력 생산 단가는 사고 위험 및 핵폐기물 처리 등으로 인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재생 에너지 단가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급격히 떨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 MIT 공대와 2004년 시카고대학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1킬로와트시(kWh)의 전기 생산 단가는 원자력이 6-7 센트인 반면에, 화력 발전은 4 센트였다. 그러나 화력 발전은 화석 연료 채굴 과정에서 여러 가지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또한 발전 과정에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2000년 대 초에 풍력 발전 단가가 4-6 센트 수준으로 떨어져, 원자력보다 비용 절감형 에너지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또한 송배선망을 개선할 경우 생산 단가는 더욱 떨어지고, 인프라를 재구축할 경우 미국 전체 전력 생산량의 15-20%까지 달성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태양이나 풍력은 기후나 시간 대에 따라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보완책이 필요할 수는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장 시설을 설치하거나 수력 발전과 같은 다른 에너지 생산 시설과 결합해서 운영하는 방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에서 '진보의 양심'으로 불리는 폴 크루그먼은 "태양력의 급격한 비용 하락에 따라 우리는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접어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태양에너지 생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물가상승을 고려하더라도 "매년 7% 수준으로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태양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면 화력이나 원자력보다 저렴한 방식으로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고 크루그먼은 지적한다. 2011년 현재, 전체 발전량의 34%를 원전이 차지할 정도로 '죽음의 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높고, 신재생에너지는 1.4%에 불과할 정도로 '가능한 대안' 마련에는 둔감한 한국으로서는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한국도 '탈원전' 시동 걸어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던져주고 있는 교훈과 과제는 다양하면서도 중대하다. 우선 원자력은 저렴하고 안전하며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신화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원자력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대형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것이 자연재해에 의해서든, 인간의 실수에 의해서든,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고농도의 방사능 오염 물질이 토양과 대기, 그리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전 사고에 따른 피해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 그리고 시간의 한계마저도 넘나든다. 일본의 원전 사고로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피해는 국경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현재 21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한국은 영토 크기에 비해 원전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반면 한국 사람들도 방사능에 민감해지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참사 때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 물질이 한국에도 도달할 지 노심초사한 것에서도, 서울시 일부 아스팔트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돼 많은 주민들이 불안에 떤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 어딘가에서, 어떤 이유로든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참사에 준하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의 존망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의 위험은 국경조차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의 탈원전 정책은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의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21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한국은 계획대로 한다면 2024년에는 34기로 늘어난다. 54기의 원전 대부분의 가동을 중단한 일본이 언제 재가동에 들어갈지 알 수 없다. 32기의 원전을 보유한 러시아도, 13기에 더해 27기를 추가적으로 건설할 예정인 중국도 안전조치를 강화한다지만, '탈원전'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더구나 핵 발전을 '강성대국'의 표상으로 삼고자 하는 북한의 경수로 집착도 대단하다.

이는 곧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분야에 있어서 국경을 넘어선 다자간 연대와 협력이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동북아는 이른바 '원전 르네상스'의 중심 지역이라는 점에서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하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바로 동북아에너지협력기구(Northeast Asia Energy Cooperation Organization: NAECO)의 창설이다. 기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동북아에서 다자간 에너지 협력기구 창설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존재했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에너지 제공이 필수적인데,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문을 닫았고, 6자회담의 실무그룹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경제 실무그룹은 제도화가 미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6자로 구성되는 동북아에너지협력기구의 창설은 KEDO를 대체하면서 에너지·경제 실무그룹을 제도화하고, 협력의 범위를 양적·질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동북아가 안고 있는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문제를 다자간 협력으로 풀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 기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원전 문제에 대한 다자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 조속히 원전 의존형 에너지 정책의 탈피를 추구하면서도, 과도기적으로는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한 안전 확보와 사고 예방, 사고 발생시 대처 등에 있어서 상호간의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사용후 연료봉의 심지층 처분 문제도 중요한 협력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남북한-러시아-중국-일본 사이의 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활용 방안 강구와 재생 가능 에너지의 공동 연구개발 및 이용 등을 통해 과감하면서도 근본적인 '탈핵(脫核) 에너지' 정책을 다자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방안 마련도 중요하다. 경수로 운전 경험도 없고 안전 조치도 미흡한 북한이 수년 내에 독자적으로 경수로 가동에 들어가면, 원전 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 원전 문제는 시급한 대처를 요한다. 대안으로 국제적 지원과 참여 속에 영변에 '국제재생에너지센터'를 만들어 원자력 분야 종사자의 재교육 및 직업 전환, 핵 시설의 비핵 시설로의 전환, 재생 에너지 기술 이전과 연구개발, 그리고 관련 설비 생산 등을 추진해보는 것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6자회담 참가국들인 미국과 일본은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해놓았고, 미국이 구소련 국가들의 탈핵 전환을 지원해온 상호위협감소(CTR) 프로그램을 북한에도 적용하는 데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법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대전제가 있다. 북한에게만 탈핵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 특히 한국도 탈핵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이 원전 의존형 에너지 정책과 원전 수출 확대를 고수하면서 북한에게만 원전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못하고 현실성도 없다.

이제 인간의 자신감은 '핵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에서 '핵을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참사가 인류사회에게 또 다시 울리는 경종(警鐘)이자 지혜와 힘을 모아 핵의 시대를 이겨낼 것을 호소하는 봉화(烽火)인 것이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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