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개의 전쟁' 전략 포기…미군 아시아 역할 강화 천명

오바마 신국방전략 발표 "미군 '다이어트' 할 것…전환의 순간 맞아"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국방전략을 발표했다. 키워드는 '감축'과 '아시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직접 국방부 브리핑실을 찾아 "우리의 군대는 더 날씬해질 것"이라면서 미국이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전 같은 대규모 지상전을 수행할 만한 전력을 유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전환의 순간"을 맞고 있다며 향후 미국은 육군 전력을 줄이고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그러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군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해 향후 미국 군사 전략의 초점이 아시아로 이동할 것임을 천명했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도 "모든 흐름이 태평양으로 향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전략적 도전도 주로 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새 국방전략은 경제위기와 재정적자 증대로 인한 국방예산 감축 압력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 의회와의 합의에 따라 향후 10년 간 4500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감축하기로 한 바 있다. 또 의회는 추가로 5000억 달러를 삭감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미군은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동안 현재 57만 명인 육군 병력을 49만 명 선까지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이 목표보다 더 큰 규모의 감축이 이뤄질 가능성도 시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 국방부는 또 '역사상 가장 비싼 무기'로 불리는 신형 F-35 전투기 구매를 연기하고 해병대 병력도 일부 감축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방부는 퇴직연금 및 건강보험 혜택을 축소하는 등 인건비 분야에서도 허리를 졸라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왼쪽), 마팀 뎀프시 합참의장(오른쪽) 등을 포함한 미국 수뇌부와 함께 새 국방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감축'과 '아시아', 방점은 어디에 찍히나?

그러나 11월 대선을 앞둔 오바마는 국방력을 약화시킨다는 공화당의 비난을 의식한 듯 이같은 움직임은 '후퇴'가 아닌 '변화'임을 강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국방부에서 이를 발표한 것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극적 제스처'라고 묘사했다. 미국 대통령이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국방전략 변화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오바마는 군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미군은 "모든 종류의 긴급사태와 위협에 준비태세를 갖춘 날렵하고 유연한 군대로 군사적 우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번 국방전략은 지난 10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우리가 어떤 종류의 군을 필요로 하느냐는 과제에 답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정보, 정찰, 대테러, 대량살상무기 대처 등을 포함한 미래 역량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요한 지역을 희생하면서 국방비 삭감을 추진할 수는 없다"거나 "나토 등 중요한 파트너와 동맹에 대한 투자는 지속할 것이며 특히 중동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전략적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국방예산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현재의) 국방 예산은 부시 행정부 말기에 비해 더 많다"고 덧붙였다. 패네타 장관도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든 하나 이상의 적을 패배시킬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이번 전략 수정은 압도적 규모의 지상군을 통해 '2개의 전쟁'을 유지하는 것에서 신속기동군 위주 재편이라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두 개의 전쟁' 포기…"역사적 전환"

'2개의 전쟁'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유지해온 노선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한다. 미국의 서해안인 태평양과 동해안인 대서양에서 각각 1개의 전면전 규모 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오래된 전략이었다.

미국은 2차대전에서는 독일과 일본에 맞섰고, 냉전 시기에도 나토(NATO)와 태평양 주둔 미군 등을 통해 2개의 세계대전 또는 전면전 규모의 전선을 유지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전략 개념은 세계대전 규모의 전면전이 아니라 국지전으로 대체됐다.

먼저 미국은 1970년대 중국과 수교하면서 1개 전면전과 1개 국지전을 감당하는 것으로 목표를 하향조정했다. 유럽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 대 나토의 전면전을 상정한 병력은 뺄 수 없었지만 태평양 지역에서는 전력을 감축할 수 여유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냉전이 붕괴하면서는 전면전을 상정할 필요조차 없게 됐다. 미국은 조지 W. H.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와 빌 클린턴 행정부를 거치면서 핵심 지역에서 2개의 주요 국지전을 유지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동시 수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기부터 미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마저 부담이 돼 왔다.

'2개의 전쟁'이 경제에 부담을 끼치는 이유는 유지해야 하는 병력 규모 때문이다. 전쟁은 공습이나 미사일 공격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특히 지형에 의지해 게릴라 식으로 항전하는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지상군이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육군을 줄이고 해·공군을 강화한다'는 오바마의 새 국방전략은 언뜻 보기에는 공세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방향으로 읽힌다.

미군, 향후 어디로?

이날 발표된 국방전략을 포함해 최근 미군이 보여주는 모습은 미국의 군사전략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규모 지상군이 주둔한 미군기지를 건설해 전선을 유지한다는 개념에서 위협 요소가 발생하면 전력을 집중해 제한된 목표물을 타격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다.

아프간에서 지상군 부대에 대해서는 철군 계획을 발표하면서 무인정찰기 공습과 특수부대 작전을 동원해 오사마 빈 라덴 등 적 수뇌부를 타격하는 작전은 상징적이다.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강조한 '신속기동군' 개념도 본질적으로는 이와 유사하다.

실제로 이날 발표된 내용을 보면 신속기동군 위주로의 변화를 암시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오바마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테러, 정보수집, 사이버전, 핵 비확산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또 국방부는 이같은 영역에 더해 특수전 부대 관련 예산도 삭감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11대의 항공모함 전력을 감축할 계획이 없다는 것도 주목된다. 미군의 해양 전략은 기항지만을 확보한 채 바다 전체를 해군기지화하는 기동전단 위주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항공모함은 바로 기동전단의 핵심 전력이다.

패네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전체적으로는 예산을 감축하지만, 특수작전군, 무인 시스템, 우주 및 사이버공간 능력, 신속기동능력 같은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삭감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 오히려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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