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당했다는 女교수 "그런 행동 없었다"

서울신문 기사와 참석자들 증언 비교해 보니

박병환 이르쿠츠크 총영사는 서울신문이 지난 10월 21일 '만취 러시아 주재 총영사 추태'라는 기사를 게재한 후 닷새 만에 소환 명령을 받았다.

당시는 독일 주재 한국문화원장의 음주 교통사고 등으로 한국 외교관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도마에 오르던 때였다. 그 전에는 상하이 총영사 스캔들, 아프리카 공관장의 상아 밀반입 사건 등이 있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같은 파문이 계속되자 외교관들에 대한 이른바 '불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바로 그 시점에 서울신문 기사가 나오면서 박 총영사는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인사 조치를 당했다. 그렇다면 그 기사는 10월 10일 만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전달한 것인가?

█ 서울신문이 전한 상황

서울신문은 기사에서 박 총영사가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 등과의 만찬 자리에서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반말을 해 대는 등 물의를 빚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만찬은 한국의 7~8개 병원 대표단이 러시아인들의 한국 의료관광 유치를 위해 러시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설명회 과정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서울신문은 이르쿠츠크 만찬장에서 박 총영사가 인사말을 준비하던 한 남성 병원장을 가로막으며 "남자 얘긴 많이 들었다. 이제 예쁜 여성이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이어 신문은 박 총영사가 일부 참석자의 발표에 끼어들어 "짧게 해" "단어가 틀렸어" 등의 말을 하며 발언을 끊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신문은 한 병원장이 "(박 총영사가) 러시아 보건복지부 차관, 관광청장 등 외국 VIP도 있는 자리에서 보드카를 계속 마시며 횡설수설하고, 여 교수의 손등에 입술을 부비는 듯한 추태를 보였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박 총영사는 다음날 일부 참석자들에게 사과했으나, 만찬장 참석자 중 몇 명이 귀국 후 B국회의원에게 만찬장의 일을 "국가적 망신"이라고 알리자 B의원이 외교부 측에 진상 규명을 요청하며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관련 기사 전체 보기)

█ 참석자들이 확인서에서 밝힌 사실

그러나 박 총영사가 법정 투쟁을 준비하면서 만찬 참석자 20명에게 받은 확인서의 내용은 서울신문의 기사와 크게 달랐다.

우선 '성희롱'의 대상으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의 단모 교수. 그는 확인서에서 "제가 유일한 한국 여 교수였고, (박 총영사는) 저의 손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며 "한국어로 한 말 중에 성희롱으로 오해할 만한 행동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단 교수는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반말을 했다'는 기사 내용에 대해서는 "총영사는 만찬 자리에서 유창한 러시아말로 간단한 연설을 하고 외교관계를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2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박 총영사가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병원장들이 박 총영사에게 불만을 표시했다'는 대목에 대해선 "한 병원장만 불만을 표시했다"고 선을 그었다. 박 총영사의 행동이 국가적 망신이었다는 'B의원'의 평에 대해서는 "이 의견은 (박 총영사에게 불만을 가졌던) 동일한 한 병원에서 참석한 분들의 의견으로 알고 있다"며 "대표단의 대다수 의견은 절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의료관광 유치 대표단장으로 서울신문의 취재에 응했던 미즈메디병원의 노모 이사장은 확인서에서 "기사 내용 중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더욱 파장이 커진 것으로 사료된다"며 "만찬 전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으며 오히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서울신문의) 취재 대상이었지만 '성희롱으로 오해 살 만한 말이나 행동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취재 기자에게 말한 바 있으며 나중에 (내 말과 다른) 기사 내용을 보고 의아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사 내용 중 '여 교수 손등에 입술을 부비는 듯한 행동'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신문의 또 다른 취재 대상이었던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의 안모 교수도 확인서에서 "만찬은 마지막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며, '여 교수 손등'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으며 당사자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총영사가 여성에게 발언권을 주자고 했던 것에 대해 "러시아 측에서는 전부 여성이 했고, 이런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측에서 여성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단순한 의사표시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안 교수는 박 총영사가 횡설수설했다는 부분에 대해 "누군가 횡설수설했는지를 알려면 말뜻을 이해해야 하는데, 당시 박 총영사의 맞은편에는 러시아 측 지방공무원들만 있었고, 박 총영사는 그들과 러시아어로만 대화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확인서를 써 준 사람은 만찬에 참석한 한국 측 23명 중 18명이다. 박 총영사 본인, 그에게 불만을 느꼈던 자생한방병원의 신준식 이사장, 같은 병원의 하급자인 L모 씨, 행사를 주관한 한국관광공사 관계자 2명 등 5명만 빠졌다. 러시아 공무원 6명 중 이르쿠츠크 주 관광청장과 브라찌야 공화국 관광청장도 확인서를 썼다.

확인서를 쓴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 이사장이 말을 하려고 할 때 박 총영사가 끼어들어 여성 참가자의 발언을 듣자고 했고 △그 일로 신 이사장이 기분 나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만취' '고성' '추태' '성희롱'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밖에, 만찬에 참석한 러시아 측 인사들이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 혹은 "러시아 보건복지부 차관, 관광청장 등 외국 VIP"라는 서울신문의 기사도 사실 무근이란 것이 복수의 확인서에서 언급된다. 그들은 러시아 연방 88개 주(州) 중 하나인 브라찌야 공화국의 보건부 차관 및 관광청 관계자들로 전부 지방정부 공무원들이었다. 최고위 인사를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도청 보건국의 부국장이었다.

█ <프레시안> 별도 확인 내용

확인서와 별도로 <프레시안>은 일부 참석자들에게 당시의 정확한 상황이 어땠냐고 물었다. 먼저 미즈메디병원이 노 이사장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자신이 쓴 확인서가 맞다고 재확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신문 기자가 나에게 전화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얘기해 보라'는 식으로 유도성 질문을 했다. 나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하면서 '어디서 들었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기자가 '외교부에서 제보를 받았다'고 말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외교부에서 제보할 일이 아니라서 이상했다. 기자가 성희롱에 대해서도 물어보기에 '박 총영사와 여 교수는 성희롱 같은 걸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았다'고 답했다. 기사에는 '또 다른 참석자가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고 돼있던데 나는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신문의 또 다른 취재 대상이었던 강남세브란스병원 안 교수도 "서울신문 기자에게 '내 입장과 관점에서는 (추태, 성희롱 같은 걸) 못 봤다'고 답했다"며 "그건 나만의 의견이 아니라, 당시 대표단 전체의 의견이었다"고 강조했다.

성희롱 대상으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의 단 교수는 "박 총영사와 나는 3~4m 떨어져 있었고 그 중간에 빈 의자도 있었다"라며 자신의 확인서 내용 그대로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의 기모 팀장은 "별 내용이 아닌데 기사화됐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며 "다른 외교관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나오던 타이밍이라서 박 총영사가 묘하게 꼬여서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 팀장은 "일반적인 대화에 악의가 있는 그런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며 "보드카 마시고 횡설수설했다고 썼던데 그 정도로 명예 훼손을 당하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연말에 술 마시는 것도 다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박 총영사가 신 이사장의 얘기를 잘라서 기분이 나쁘긴 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11월 7일자 <의료관광신문>에 쓴 '참가기'에서도 "신임 (박병환) 총영사가 만찬장의 일로 명예가 손상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데 현장에 있었던 참석자로서 심히 안타깝고 총영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총영사 개인의 명예를 훼손당할 만큼 부적절한 행동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던 상황이라는 것이 시종일관 만찬 장소에서 함께 자리한 필자의 결론"이라고 썼다.

<프레시안>은 박 총영사에게 화가 났었다는 자생한방병원의 신 이사장과도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휴대전화 통화를 세 차례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고, 이후 이사장 비서실로부터 "해외 출장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대신 이 병원 홍보팀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 사안을 가지고 언론에 시달리는 게 힘들어서 공식 입장을 내놓을 수 없다. 서울신문에 모든 걸 다 말했으니 그쪽에 문의해 보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장이 먼저 말한 게 아니라 서울신문에서 먼저 취재가 들어와서 답해준 것일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신문 측은 기사를 작성할 때 당시 참가자들의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반박했다. 서울신문 사회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외교부가 이미 경고조치를 내린 상황"이라며 "경고조치는 이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가만히 있는 이를 경고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우리가 없는 사실을 취재해 보도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총영사가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자신의) 인사 조치에 이의가 있다면 외교부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해야지 (신문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건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정황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있다고 했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사람도 (우리가) 다 만났으니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는 절차에 흔쾌히 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외교부 관계자 "성희롱ㆍ추태 없었다고 잠정 결론 내렸지만…"

한편, 외교부가 박 총영사에게 소환 명령을 내리기 전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없었다는 박 총영사의 주장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만찬 당일 신 이사장이 한국에 있는 김형오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제기했고, 얼마 후 외교부는 박 총영사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다. 그 후 서울신문 기사가 나왔고, 그 하루 뒤인 10월 22일 박 총영사는 외교부에 소명서를 제출했으며, 26일 소환 명령을 받았다.

이 과정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경고 조치를 내리기 전 민간 대표단에게 확인을 해보니 성희롱이나 추태 같은 건 없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면서 "그래도 경고를 한 것은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 취지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서울신문 보도가 나온 후 소환 명령이 날 때까지 외교부가 다시 이 문제를 조사하지는 않았다고 확인했다. 이어 그는 "소환되고 나서 박 총영사가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건 개인 차원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소환 당시 서울신문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었나'라고 재차 묻자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이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추태나 성희롱 의혹은 민간 대표자 중 한 명이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신 이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형오 의원은 "박 총영사의 소장에 신 이사장이 나한테 전화했다는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전화에서 뭐라고 했는지를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억울한 게 있다면 법정에서 가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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