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5년 내에 '증오의 시대' 맞을 것"

유럽 극우파 심층 보고서 "청년, 남성, 실직자, 反이슬람 성향"

유럽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 세대에서도 강경 민족주의와 이민 반대 등을 내세운 극우파 그룹을 지지하는 수가 늘어나는 등 극우 성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가디언>은 6일(현지시간) 영국 싱크탱크 '데모스'가 유럽 11개국 14개 극우정당 및 사회단체의 지지자들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이같은 경향이 관측됐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온라인 극우파 지지자들에 대한 최초의 조사다.

이번 보고서는 76명이 숨진 지난 7월 노르웨이 우퇴위아 섬 테러 3개월 후에 나왔다. 극우정당들은 테러범 아네스르 베링 브레이비크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경찰 조사 결과 브레이비크는 유럽 전반에 퍼진 반이민, 민족주의 사상과 연관을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데모스는 보고서를 통해 반(反)이민 정서가 확산되고 특히 무슬림들에 대한 의심 섞인 시선이 늘어난 것을 강조했다. 오는 7일 보고서가 공식 발표되는 브뤼셀의 컨퍼런스에서 연설할 예정인 유럽외교관계이사회(ECFR)의 토마스 클라우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1910~30년 극우정당의 통합 요소였다면, 이슬람 공포증은 21세기의 통합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층과 남성들에게서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 별도의 조사 결과 14개 정당‧단체의 온라인 지지자 45만 명 중 2/3이 30대 미만이었고 3/4가 남성이었다. 실업률도 평균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페이스북 사용자 전체 중 30대 미만의 비율과 남성의 비율은 각각 절반 정도다.

이들 젊은이들은 자국 정부와 유럽연합(EU)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문화적 정체성, 특히 이민자와 이슬람교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공통적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익명 조사에서는 무슬림 인구의 증가를 '위협'으로 보는 인식이 더 늘어났는데, 이런 답변 또한 청년층에서 매우 높게 나왔다.

특히 페이스북은 이들이 생각을 교환하는 장이 됐다. <가디언>은 대부분의 정당들의 경우 실제 당원 수보다 페이스북 팬 수가 훨씬 더 많다고 전했다. 이는 노인층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반대가 많았던 과거 조사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또 데모스의 조사 결과 67%의 페이스북 팬들은 실제 최근 선거에서 극우정당에 투표했다고 답했다.

▲지난 7월 76명이 사망한 노르웨이 테러의 주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AP=연합뉴스

유럽 전역에 만연한 극우 사상, 현실정치 역량은?

반이민 정서와 이슬람 공포증을 부추기는 정당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원래 극우파가 꾸준히 세를 유지해왔던 곳 뿐 아니라 네덜란드와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강했던 나라에서도 많은 지지자들을 모으고 있다. 또 영국수호동맹(EDL) 같은 거리 운동들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의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25년간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 니콜라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을 제치고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반면 영국의 EDL은 거리 집회에 수백 명을 모으기도 힘든 상황이다. 프랑스 극우단체 '정체성 동맹'의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슬람교에서 금지하는 음식인 돼지고기를 넣은 '정체성 수프'를 노숙자들에게 제공하는 것 정도다.

일부 극우정당 지지자들은 복지 분야에서는 좌파적인 정책을 지지하면서 다문화주의에는 극렬히 반발하는 등 사상적으로 뒤죽박죽인 경우도 관측됐다.

극우정당 지지자들마다 발언 태도도 달랐다. 일부는 덴마크 인민당의 한 지지자처럼 "외국인들이 사랑하는 우리 나라를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며 노골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는 헤이르트 빌더스 네덜란드 자유당(PVV) 당수와 같이 '이슬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고만 답했다.

빌더스 네델란드 자유당 당수 등은 자신들의 '반이슬람주의'는 평화적인 사상이며 자신들이 걱정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외국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전통적인 문화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자유당은 지난해 네덜란드 총선에서 24석을 확보하며 제3당으로 도약했다.

극우 사상과 극단주의 연구의 전문가인 매튜 굿윈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이들 극우정당들이 단순한 모습을 보였던 과거와는 달리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면서 주류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도 외면당하지 않으며 지지세를 불릴 수 있었다며 이것이 최근 극우파가 발호하는 추세의 핵심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극우파 발호와 '테러와의 전쟁', 유로존 위기의 관계는?

한편에서는 유로존 위기의 심화가 이런 경향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연구의 데이터는 '유로존 위기'가 심화되기 전인 7~8월에 주로 수집됐다.

2008년 사망한 외르크 하이더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 '자유당'의 당수가 된 하인츠-크리스티안 스트라헤는 "왜 우리 오스트리아나 독일, 네덜란드가 '밑 빠진 독'인 남유럽에 돈을 쏟아부어야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굿윈 교수는 "우리가 지난 5년 간 본 것은 이런 (민족주의) 경향에 면역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나라들에서도 비상 상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라며 스웨덴 민주당과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인'의 부상, 네덜란드 극우파의 부활, EDL의 존재 등을 예로 들었다.

유럽 인종주의 전문가이며 최근 <다문화주의의 위기>라는 책을 쓴 가반 티틀리는 이슬람 공포증에 너무 쉽게 투항해버린 주류 정치세력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유럽의 주류 정치세력들이 테러 대책이라면서 만들어낸 정책들이나 이들이 사용한 언어와 태도가 극우 정치세력에 토양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앞서 '테러와의 전쟁'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이슬람 공포증'이 기승을 부린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인종주의 반대 운동을 벌여 온 네덜란드 출신의 에미네 보즈쿠르트 유럽의회 의원은 "우리는 유럽 역사의 교차점에 있다"면서 "5년 내 우리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외국인혐오증, 이슬람공포증 등 증오와 분열의 힘이 커지는 것을 목격하거나 또는 이런 공포스러운 경향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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