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마치 도박꾼에 공적자금 주는 것"

[분석] 덱시아 구제금융 사태가 드러낸 진짜 리스크

지난 주말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은 최종 합의를 26일에 다시 열리는 회의에 미뤘지만 유로존 위기 해법 마련의 전기는 마련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유럽은행들의 부실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1000억 유로 정도의 자본을 확충하고, 유럽재정기금(EFSF)를 1조~2조 유로 정도로 확대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감대 형성' 정도로는 회의적인 시각들을 잠재우기 힘들다. 왜냐하면 정작 그 돈을 누가 낼지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로존이 아닌 중국 등 다른 곳에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또한 그리스 국채를 50~60% 정도는 받지 못할 것으로 하자는 안건도 EU 국가 간 의견이 절충됐다고 하지만, 디디에르 레인데르스 벨기에 재무장관은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금융업계와의 협상이 아직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손실률이 50% 이상으로 결정되면 감당하지 못할 은행들도 적지 않아 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덱시아의 구제금융 사태는 3년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나쁜 선례의 반복이며, 글로벌 차원의 금융권 연쇄 부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AP=연합
"도박 같은 투자 손실, 정부가 갚아줄 곳 한 두 곳 아냐"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MYT)>는 유럽은행들의 부실 문제가 유럽 정상들이 모여 몇 번 회의한다고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경고하고 나섰다. 오히려 유럽은행 어느 한 곳의 부실만으로도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위기를 초래하는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이 신문은 '유럽판 글로벌 금융위기'를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로 불리는 덱시아 은행의 부실 사태가 왜 의미심장한 것인지 분석했다. 벨기에와 프랑스 정부의 합작사인 덱시아는 양국 정부가 10년간 900억 유로(약 140조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제공키로 한 상태다.

하지만 <NYT>는 "덱시아에 대한 구제금융 투입은 잘 알려지지 않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간접적이며, 잠재적으로 우려스러운 위험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유럽의 부채 문제를 계기로 간접적인 리스크가 초래될 수 있다. 하지만 상세하게 보고할 의무가 없는 복잡한 거래로 이런 위험은 감추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덱시아의 문제는 바로 미국의 대형은행들과도 연결돼 있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최근 대규모 파생상품의 부실이 우려되면서 주가가 급락하고 있으며, 특히 모건스탠리는 '제2의 리먼'이 될 후보로 꼽히고 있다.

대형은행도 아닌 덱시아의 구제금융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다른 유럽 은행들의 구제금융이 필요하게 될 경우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덱시아의 구제금융은 지난 2008년 AIG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구제금융을 투입해 AIG를 통해 거래관계인 국내외 대형은행들에 구제금융을 투입한 사례처럼, 의회의 조사를 받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조치라는 반박도 나온다.

"외국은행까지 구제금융 꼼수 지원 반복되나"

당시 AIG와의 거래로 손실을 본 국내외 대형은행들에 대해 미국 정부가 직접적인 구제금융을 해줄 명분이 없자 AIG에게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형식으로 은밀히 AIG와 거래한 대형은행들에게 이 구제금융이 분배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처럼 AIG를 통한 대형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부실업체들과 거래해 손실이 발생한 은행을 징계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상을 주고, 위험한 투자를 장려하는 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덱시아의 문제는 유럽의 부채위기라는 국가적인 외재변수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민간업체로서 방만한 경영실패에 의한 손실도 많다. 이때문에 도대체 어디까지 정부가 손실을 떠안야줘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논란을 초래한다.

덱시아, 지자체 대출과 파생상품으로 대거 손실

덱시아는 그리스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으며 그리스 국채의 부실로도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더 큰 손실은 지자체 대출사업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덱시아는 10년 이상의 장기채를 낮은 고정금리로 대출해준 경우가 많은데, 자금 조달 비용이 대출로 받는 고정금리보다 높아지면서 그대로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또한 덱시아는 신용보험 상품으로 무려 153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보고 있다. AIG가 부실화된 최대 원인도 이것이다.

덱시아의 부실 우려가 커지자 덱시아는 거래은행들로부터 담보를 늘려달라는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덱시아는 430억 유로에 달하는 손실을 거래은행들에게 초래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벨기에와 프랑스, 룩셈부르크 3개국 정부들은 최대 900억 유로를 지급보증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이것이 매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벨기에의 폴 드 그로베 교수는 "정부가 보장하기로 한 규모가 결국 얼마로 늘어날지 알 수 없다"면서 "유럽에서는 덱시아와 같은 이유로 부실화된 은행들이 또있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으며, 덱시아의 부실을 초래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에서 덱시아 사태는 독립적이고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유럽정부, 미국 은행들도 지원해야 할 판

유럽정부들이 부실은행의 거래관계에 있는 금융기관들을 모른 채 하기도 힘들다. 특히 미국의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외면하기 더욱 힘든 처지다. 왜냐하면 AIG 부실 사태 때 미국 정부는 AIG와 거래 관계인 외국은행들에 대해 액면가에 해당하는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은행들에 대해서도 Fed의 긴급자금 대출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덱시아는 2008년 말 Fed로부터 585억 달러의 자금을 받았다.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워커 토드는 "AIG에서 이미 시행됐고, 덱시아에게도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방식처럼 정부가 한 민간업체에게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거래은행들에게 액면가로 손실을 보전한 선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면서 "이것은 마치, 도박꾼들에게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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