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깨지는 구럼비 바위여!"

[정욱식의 '오, 평화'] 한중관계도 '금 가는 소리'

9월 7일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들려온 두 가지 소식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소중하게 가꿔야 할 두 가지 가치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하나는 해군이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절대보존구역'이었던 구럼비 바위를 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인간의 가당치 않은 탐욕으로 훼손될 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더더욱 멀어지고 만다.

하여 묻는다. 수많은 맨발의 올레꾼들에게 생명의 숨소리를 느끼게 해주었던 구럼비의 운명을 진정 해군의 군홧발 아래에 놓이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구럼비를 깨부수고 있는 굴착기는 이 바위를 벗 삼아 살아온 강정마을 주민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인데, 이러고도 주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구럼비 깨지는 소리가 가슴을 치게 만든다면, 서해 건너 중국에서 날라 온 뉴스는 머리를 때린다. 중국의 한 전문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중국인들은 제주 관광을 거부하라"고 선동하고 나선 것이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변강연구소 뤼차오(呂超) 소장은 이렇게 썼다. "오늘날 한국은 중국인 관광을 통해 돈을 버는 동시에 그 관광객들의 고국을 무력을 통해 위협하려고 한다. 우리는 한국으로 하여금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거듭 묻는다. 과연 한국이 중국과 등 돌리고도 풍요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느냐고? 우리의 이웃 국가이자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미국과 함께 G2 반열에 올라선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호소를 '대중 사대주의'로 일축하면 그만인지를. 만용과 오판으로 빚어지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가 행여나 '21세기판 삼전도의 굴욕'을 자초하지는 않을런지를.

▲ 구럼비 바위를 깨뜨리는 굴삭기 ⓒ연합뉴스

4대강 사업 방식 '따라가기'

기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평화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었다. 제주도정과 도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도 예산 편성시 국회가 내걸었던 부대조건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주민투표를 통해 찬성 주민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나오면 반대 운동을 접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합리적인 해결 대신 공권력 투입을 선택했다.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마을회장과 핵심적인 활동가들을 잡아들였고, 공사 부지를 펜스로 둘러싸 주민들의 출입을 차단했다. 최근 사업 부지에서 유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속이려고 '이중협약서'를 체결한 것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사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해군기지 건설 강행의 가장 큰 명분은 '이미 14%가 진행되었고 1400억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공사 중단시 매달 59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실찾기는 '4대강 사업'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이 사업이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강 죽이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되돌리기에는 늦었다며 오히려 삽질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해군기지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안에 공정률을 30% 안팎으로 높이면, 내년부터는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다는 판단이 무리하고도 위법적인 사업 강행의 배경이 되고 있다. 공사가 재개되자마자 굴착기가 바로 구럼비를 겨냥한 것도 해군기지 반대의 상징을 파괴함으로써 반대 운동의 버팀목을 제거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어찌 살려고?

나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제주 해군기지가 한중관계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해 대한민국의 국익을 겨누는 비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앞서 인용한 뤼차오 소장의 글은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일각에서는 반문한다. 한 개인의 칼럼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중국이 타국과의 민간한 문제와 관련해 대외적으로 입장을 밝힐 때, 선민후관(先民後官)의 방식을 취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뤼 소장의 선동과 경고가 듣기 거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개인의 주장으로 폄하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우리 국가안보 사업을 하는데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도 나온다. 그러나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하물며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핵심적인 목적은 중국과의 해양 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해군 스스로 말하고 있고, 한미동맹의 종속적 성격과 미국의 군사 전략을 고려할 때 미군도 제주해군기지를 '공용(共用)'할 가능성이 높은데, 중국과 무관하다거나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자세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중국의 눈치나 보면서 이어도를 포기하자'는 푸념도 나온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한중간의 '갈등의 씨앗'인 이어도 문제는 해군기지 건설과 초계 활동으로 풀 수 있기는커녕,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고 만다. 거꾸로 공동 번영과 평화의 관점에서 중국과의 협상에 나서면 상호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외교는 이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 늦기 전에…

아직 늦지 않았다.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인해 입게 되는 유무형의 손해를 생각해본다면, 이미 투입된 1400억원은 결코 큰 비용이 아니다. 또한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사업 부지 재매각과 사발이, 케이슨 등 건설 구조물의 재활용을 통해 회수할 수 있다.

오늘날 인류사회의 최대 위협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자연재해이다. 그러나 이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해온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어쩌면 굴착기의 날카로운 발톱 아래에서 울부짖고 있는 구럼비는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중국을 비롯한 국가간의 관계에 정해진 미래란 없다.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라. 제주 해군기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인지를. 한국 해군이 먼저 이어도에 함정을 보내 양국 함정이 대치하는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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