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슨 방북, 절망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

[한반도 브리핑] 희망의 길은 미국의 선택에 달려

불안의 끝은 어디인가? 긴장의 시간이 지났지만 불안은 안개처럼 자욱하다. 국면이 바뀌어야 한다. 평화의 햇살로 말이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바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이다.

다양한 평가가 있다. 분명한 것은 연평도 사격훈련에 북한이 대응하지 않은 이유에 리처드슨의 방북이 작용했다는 점이다. 리처드슨의 방북은 개인 자격이지만, 미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그의 방북을 활용했다. 그는 평양에서 미국 정부 당국자와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 우리는 협상의 시작과 위기의 종말 사이에 서 있다. 중대한 기로다. 그의 방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무시하면, 절망의 길이다

리처드슨은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와 사용 후 연료봉의 해외 판매, 그리고 서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군사공동위의 개최를 북한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사용 후 연료봉의 해외 판매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2008년 초 한국에 판매하려다 이명박 정부가 거부했던 사안이다. 또한 IAEA 사찰단을 받아들이겠다는 북한의 제안에는 여러 복선이 깔려있다. 북한은 농축우라늄 시설이 소형 경수로에 필요한 저농축 시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서해 평화 정착은 당사자인 한국이 선택할 문제다.
리처드슨과 북한의 합의 사항을 평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별 것 아니라고 무시하는 길과 진전의 계기로 삼아 협상을 시작하는 길이다. 무시해서 기회를 놓치면,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만성적인 전쟁의 공포속에서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길이다.

다른 길이 있다.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어떤 길로 갈 것 같은가? 알 수 없다. 절망의 길은 한국이 주도하고, 희망의 길은 미국이 선택할 것이다. 한국의 정부 당국자들은 이미 절망의 길에 들어섰다. 리처드슨의 방북이 '북한의 선전에 놀아난 것이며', 합의 사항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이 없고',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협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근본주의가 개입하고, 붕괴론의 철학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리처드슨의 방북은 절망의 길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다. 북한은 언제나 위기의 끝에서 한번쯤 공을 넘기곤 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공을 받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 벼랑 끝 전술로 돌아간다. 3차 핵실험을 비롯한 핵보유의 길로 달려 갈 것이다.

희망의 길은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시작은 리처드슨이 합의한 사항들을 미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바로 북미 접촉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할지 당국자가 나서 확인하는 것이다. 여전히 부시 행정부 초기 네오콘처럼 대화 자체를 보상으로 생각하면 희망은 없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 참모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백악관

이제 미국이 선택해야 한다

지금은 협상의 계기가 필요하다.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나 2010년 8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계기를 오바마 행정부는 살리지 못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했다. 물론 두 전직 대통령의 방북 목적은 억류협상이었다. 미국은 인질 석방에 대가가 없다는 외교 원칙을 최소한 공개적으로 강조한다. 억류 협상은 명분이 있지만, 외교 협상으로 전환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의 방북 계기는 조용하게 묻혔다.

그때와 지금, 다른 것이 있다. 미국 내부적으로 '전략적 인내'의 실패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상황도 악화되었다. 이제 북한의 핵개발 수준을 무시하기 어렵다. 동시에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은 동맹 중시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한편으로 이명박 정부에 편승하고 있지만, 동시에 긴장의 한반도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미국이 선택해야 한다. 아는가? 미국의 적극적 개입이 없으면, 북핵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무리 중국이 활발한 중재외교를 하더라도,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워키리크스 전문에서도 드러났지만, 중국은 미국의 역할을 적벽대전에서 '동풍'으로 비유한다. 아무리 완벽한 조건이라도, 미국의 적극적 의지가 없으면, 6자회담은 시작될 수 없다.

1월 미·중 정상회담이 결정적 전환이 될 것이다. 미국은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의 초조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상적으로 중국이 북한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로 가장 불편해 할 나라 역시 중국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 양국이 협력해야 할 근거가 충분히 있다.

물론 천안함 사건에 이어 이번 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고, 이 과정에서 미중 양국의 입장 차이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재확인되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미중 양국이 협력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멀어지게 했다.

물론 남북관계는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할 문제다. 그렇지만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그게 가능한가? 미국이 주장하는 당사자 해결은 원칙으로 의미가 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나, 미중 양국이 협력해야 할 시점이 왔다.

협상은 낙관적일까?

협상이 시작되면, 북핵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까? 예측하기 어렵다. 협상의 앞날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방관하다 잃어버린 시간만큼 협상은 어려워졌다. 북한의 핵능력이 교착의 시기 동안 강화되었다.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은 이제 플루토늄의 문제에서 농축우라늄으로 성격이 전환되었다. 농축우라늄 방식이 플루토늄보다 어려운 것은 바로 신뢰의 문제 때문이다. 북한은 경수로를 위한 저농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 어디엔가 무기급 고농축 시설을 숨겨 놓았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신고와 검증을 둘러싼 협상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협상이 어렵다 하더라도 해봐야 한다.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되는 것을 방관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최소한 협상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북핵 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동시에 대화가 시작되면 한반도에서 총성은 멈춘다.

협상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플루토늄에 기반한 영변의 원자로가 노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기회에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북한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즉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저농축 시설을 운영하는 권리를 주장할 때,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대응할지가 추가된 협상의 어려움이다. 당연히 권리를 주장하는 만큼, 북한이 지켜야 할 의무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에 대한 입장 차이가 매우 큰 것이 사실이지만, 해보지도 않고 겁먹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질적으로 혹은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서해 평화정착 방안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미룰 이유가 없다. 동시에 북미 양국의 관계 개선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의심과 불신은 기술적 접근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접촉을 확대해서 불신을 줄여나가는 정치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북핵 협상의 과정은 최선, 차선, 차악, 그리고 최악이라는 4가지가 있다. 최선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을 때, 합의 사항을 양자가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이었다. 그럴 기회를 놓쳤다.

오랜 교착 기간을 지나 이제라도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차선이다. 그 길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최선의 기회를 놓친 현재의 상황에서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이제 또다시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최악과 차악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차악이란 핵보유를 인정하고 핵확산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에서 긴장의 구조화를 의미하며, 미국의 입장에서도 '항구적인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 아직은 차악을 받아들일 때가 아니다. 또한 협상이 실패해서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되는 최악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봄을 맞이할 것인가?

봄에 대한 기다림으로 겨울을 견딜 수 있다. 내년 한반도의 봄은 어떨까? 작년 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봄 같지 않은 봄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이제 결정의 시간이 왔다. 돌아오는 봄, 우리가 협상의 계기를 살리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오랜 겨울의 시대로 멈출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불안의 시간들이 아주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이다.

2012년은 한미 양국을 비롯해서 한반도 주변국 모두가 선거 혹은 후계체제 구축이라는 정치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다. 내년 상반기가 외교에 전념할 시기다. 어렵다고 포기해서도 안 되며, 해보지도 않고 최악으로 갈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리처드슨이 들고 온 보따리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이제 멈추어야 한다. 더 나아갈 곳도 없다. 이 절망의 길에서 더 나아가면 낭떠러지다. 누구라도 희망을 만들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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