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외교가, 진짜 봄인가 '춘래불사춘'인가

6자회담 재개 수순 윤곽…미국 입장 여전히 '겨울'

겨우내 움츠려 있었던 북핵 외교가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중국 중심의 물밑 조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6자회담 재개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작년 12월 초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한 후 '연말 휴지기'를 가진 북한 핵문제는 1월 11일 북한 외무성이 성명을 발표하며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북한은 이 성명에서 평화협정 협상을 "정중히" 제의했고, 6자회담을 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2월 초가 되자 중국이 움직였다. 중국은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파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했다. 왕 부장이 귀국하는 비행기에 동승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4박 5일간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 측과 협의했다.

이때 중국은 과거 오랫동안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우다웨이(武大偉) 전 외교부 부부장을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로 임명했다. 향후 북핵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계관 부상과 협의를 끝낸 우다웨이 대표는 열흘 뒤 한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보즈워스 특별대표를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우 대표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요구 사항을 전하는 한편 자신들이 내놓은 절충안을 제시했다.

▲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 ⓒ연합뉴스

中, 평화협정 '예비회담'으로 돌파구 마련

중국의 중재안과 관련된 정부 당국자들의 말과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우선 6자회담은 북미 양자회담이 한 차례 더 열린 뒤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자대화에 대해 보즈워스 대표는 지난달 26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탄력적인 입장을 보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3일 "6자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6자회담과 연계돼 개최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중재력이 발휘된 대목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북한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평화협정 회담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것. 북한은 1월 11일 외무성 성명에서 "9.19 공동성명에 지적된 대로 별도로 진행될 수도 있고(…) 6자회담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한때 북한의 이같은 요구를 '선(先) 평화협정 후(後) 비핵화'로 규정, 비핵화를 뒤로 미루기 위한 술수라는 시각을 보였다. 그러면서 6자회담 복귀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견지했다.

미국과 한국의 그런 우려를 누그러뜨리며 제3의 안을 낸 것도 역시 중국이었다. 중국은 6자회담이 열리는 때나 6자회담을 전후로 해 남·북·미·중 4개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예비회담'을 열자는 제안을 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보도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조건으로 제시한 재재 해제 요구는 중국의 대북 설득으로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제재이니만큼 중국, 미국이 해제하자고 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논리로 북한을 설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 중국은 북미 추가 대화, 평화협정 예비회담 등을 관철해내는 것으로 제재 해제에 상응하는 정치적 명분을 주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작년 말 화폐개혁 후 외부적 공급이 긴요한 북한에 각종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도 대북 설득의 유효한 수단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같은 중국의 절충 노력을 6자회담 참가국들이 최종 수용한다면 북핵 외교가는 '북미 추가회담→평화협정 예비회담→6자회담' 수순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민간단체들의 초청으로 추진하고 있는 김계관 부상의 미국행이 실현된다면, 그 일을 계기로 북미 양자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관측대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3월 중후반께 중국을 방문할 경우, '예비회담'과 6자회담은 김 위원장의 방중 직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도그마' 빠진 오바마,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예상대로 이뤄진다고 북핵 문제가 순조롭게 풀릴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다소 우세하다.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융통성 있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북한의 경직된 태도도 문제거니와, 무엇보다 오바마 미 행정부가 북한과 '통 큰' 거래를 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거주하는 한 전문가는 △북한에 먼저 '선물'을 줄 수 없고 △시간이 더 지나면 북한이 스스로 손을 들고 나올 것이며 △북핵 문제를 잘 못 건드렸다간 국내정치적으로나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고 △한국과 일본이 먼저 나서는 게 좋다는 게 오바마 행정부 내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의료보험 개혁,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후변화 입법안, 경제 문제, 민주당 의석 감소 등 산적한 국내외 현안을 다루는데도 힘이 부쳐 북핵 문제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보즈워스 같은 협상파들의 목소리는 억제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꼽히는 존 루이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와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장이 지난달 10일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도그마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쓴 것은 미국 내 협상파들이 처한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북핵 문제를 핵 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확산 방지라는 기술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하려는 시각이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강한 것도 북핵 진도가 느린 이유라고 워싱턴의 다른 전문가는 설명했다. 미국은 4월 핵안보정상회의도 그러한 관점에서 치르려 하고 있는데, 평화협정 같은 '근본 문제'를 제기하는 북한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드는 한국 정부의 입장 역시 '북핵의 봄'을 예단키 힘들게 하는 요소다. 한국은 평화협정에 대한 북한의 요구에 여전히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내며 "비핵화의 진전이 있을 경우에만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이 짜여진대로 진행되지 않고, '키 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3월 8~18일)이 북한의 발목을 잡는다면 어렵사리 만든 중국의 '시간표'도 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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