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장 출신인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에 이어 또다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정홍원 변호사를 8일 지명함으로써 법과 질서, 원칙이라는 박 당선인의 국정 운영 기조를 반영했다는 평가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30년간 검찰에 재직하면서 법조계의 존경과 신망을 받아왔다"고 소개한 대목은 도덕성과 함께 법치에 대한 신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후보자가 도덕성과 자질 면에서 국회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현미경 검증'을 무사히 넘을지는 불투명하다. 정 후보자는 "혼자 생각해보니 젖 먹을 때부터 지은 죄가 다 생각난다"고 일단 '로우키'를 유지했다.
이날 총리 후보자 발표장에 박 당선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점도 혹시 있을 낙마 가능성에 대한 부담감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4일 김용준 후보자를 지명할 때는 박 당선인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으나 이번엔 진영 부위원장이 총리 후보자를 발표했다.
폭넓은 인재풀을 가동하기보다 과거 인연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도 재확인됐다. 정 후보자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발탁돼 박 당선인과 호흡을 맞췄다. 당시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박 당선인의 신임을 얻은 점도 총리 지명 배경으로 보인다. 새 정부 첫 총리로서 '감동'이나 '상징성'보다 검증 통과와 개인적 신뢰가 우선시되면서 박 당선인의 인재풀의 한계도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 명망이 높지 않았던 정 후보자가 박 당선인에 의해 두 번이나 중용됨에 따라 그가 책임총리제 위상에 걸맞은 '실세형'보다는 관리형 총리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자기 소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족하는 데에 머물지 않겠냐는 것. 정 후보자 스스로 책임총리의 역할에 대해 "대통령을 제대로,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라고 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당선인의 정치 코드와 정 후보자의 스타일로 미루어 책임총리제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박 당선인이 공약한 '책임총리제'는 ▲국무위원 3배수 제청권 ▲국무회의 사실상 주재 ▲정책 조정 및 정책 주도 기능 강화 등이 골자다. 특히 복지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게 될 사회보장위원회를 총리실 산하에 배치해 총리실의 위상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30년간 법조계에서만 활동한 정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과제인 복지 정책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김용준 후보자의 낙마 등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 첫 총리를 지명함으로써 박근혜 정부 출범의 꼬인 실타래가 풀릴지 주목된다. 자진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기를 이어가는 이동흡 후보자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고, 두 번째 총리 후보자마저 심각한 흠결이 드러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출범 전부터 심각한 내상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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