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주역 최규선, MB '자원외교' 타고 컴백?

"쿠르드 유전 계약, 이라크 석유법 통과 전 자축은 일러"

한국 기업들이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권을 따낸 것을 계기로 이명박 당선인이 쿠르드 총리를 만나 자원외교의 첫 성과인양 내세우는 것에 대해 '섣부른 자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쿠르드 자치정부와 유전 개발 계약을 맺은 SK에너지에 대해 이라크 중앙정부가 자신들의 승인 없이 이뤄진 계약이라며 원유 공급을 중단한 사태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계약은 이라크 의회에 계류중인 석유법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느냐에 따라 무효로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우리 정부와 이라크 정부의 외교마찰이 빚어질 공산도 크다.

한편 김대중 정부 시절 권력형 비리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최규선 씨가 이번 계약의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인수위 작품'…외교·산자부는 SK 문제 해결에 분주

한국석유공사, 삼성물산, 쌍용건설 등 한국컨소시엄은 14일 서울에서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지방정부 총리와 쿠르드 4개 광구를 탐사하는 MOU를 맺었다. 이곳의 원유 매장량은 10~20억 배럴 가량으로 한국이 1~2년 동안 소비할 수 있을 정도라고 알려졌다.
▲ 이명박 당선인이 14일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오늘쪽) 일행을 만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MOU 체결에 앞서 바르자니 총리를 집무실에 초청해 "양국을 위해 매우 좋은 일을 한 것 같아서 축하와 함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이 내세우는 '자원외교'의 첫 케이스로 이번 계약을 적극 홍보하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이 계약 체결에는 현 정부가 아니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의 '투자유치TF'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에너지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있는 현 정부의 산업자원부와 외교통상부는 이라크 중앙정부를 자극할 수 있는 이번 일에 나서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SK에너지가 작년 11월 쿠르드 자치정부와 맺은 바지안 광구 개발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며 지난 1월부터 원유 공급을 중단한 상태다.

석유법은 이라크 갈등의 '핵'

이번 MOU 체결에 대해 참여연대는 15일 "이라크 종파간 석유갈등을 무시한 채 쿠르드 자치정부와 일방적으로 맺은 계약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자축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라크 석유법 개정안은 외국기업 진출 허용 범위,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사이의 석유 분배권 문제 등을 놓고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며 "만일 현 석유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한국 정부가 쿠르드 자치정부와 맺은 계약은 무효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자원외교에 대한 인수위의 조급함이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관계는 물론 원유를 둘러싼 이라크 제세력들간의 갈등을 악화시켜 자칫 원유확보를 현실화하기 어렵게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논평은 "이번 계약을 자원 확보의 성과로 자화자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며 "무엇보다 이명박 당선인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원외교가 실효성이 불투명한데도 대책없이 원유개발 계약을 강행하고 평화재건을 강조하면서 이라크 내 갈증을 더욱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규선이 돌아왔다
▲ 최규선 유아이 에너지 대표이사 ⓒ연합뉴스

눈길을 끄는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권력 비리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규선 씨가 이번 MOU 체결의 숨은 주역으로 활약했다는 점이다.

'최규선 게이트'로 복역중이던 그는 2003년 이라크 재건사업에 관심을 갖고 옥중에서 유아이앤씨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그해 10월 쿠르드에 진출했다.

유아이앤씨는 쿠르드 고위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회사 관계자나 고문을 통해 영접하고, 현지에 무료로 병원을 지어주는 등의 활동을 통해 쿠르드 정부와 신뢰를 쌓았다.

여기서 낮 익은 인사가 또 한 명 등장하게 되는데 최 씨 못지않은 '마당발'을 자랑하는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이다.

최규선 씨와 끈끈한 친분을 갖고 있는 존스 전 회장은 최 씨가 감옥에 있을 때 그를 대신해 쿠르드 인사들을 만나고 쿠르드에 수차례 다녀오며 사업을 챙겼다.

이후 2006년 출소한 최규선 씨는 자원개발업체인 유아이에너지를 인수하고 쿠르드 유전 개발권을 따내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이 과정에서는 유아이에너지의 고문으로 영입된 거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스 전 회장을 비롯해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앤서니 레이크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솔라즈 전 미 하원의원, 로버트 스칼라피노 UC버클리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솔라즈 전 의원과 스칼라피노 교수는 지난달 4일 이명박 당선인이 미국 유력인사들과 접견할 때에도 참석했던 인물들이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유아이에너지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됐고, 쿠르드 정부는 급기야 이번 계약에 이 회사가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에 유전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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