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현 세대 vs 미래 세대 누구 부담 올려야 하나?

[대담] 김연명 중앙대 교수 - 오건호 '내만복' 공동운영위원장

지난달 '박근혜 표 연금 개편안'이 발표되자, 전업주부 등 임의가입자가 국민연금을 탈퇴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월 사이에 1만3850명이 새로 가입하고 2만209명이 탈퇴해 가입자 6359명이 감소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임의가입자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연금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국민연금보다 훌륭한 사보험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100을 내면 노후에 130-430(2011년 가입, 평균 소득자 기준 180)을 돌려준다. 그것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연금액을 수령하는 '미래 시가'로 지급한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후할 수 있는 것은 절반은 현 세대가, 절반은 미래 세대가 부담하는 '세대별 연대' 원리에 기초한 덕분이다.

100을 내고 180을 돌려받으면 노후에 내가 낸 돈을 제대로 못 돌려받는 것은 아닐까? 국민연금 기금이 언젠가 고갈되면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프레시안>은 연금 전문가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사회복지학과 교수)과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났다.


두 전문가는 큰 틀에서 '박근혜 표 연금 개편안'을 비판하고 증세를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각론은 달리했다. 김 원장은 후 세대 부담보다 현 세대 부담이 과중하므로 2040년부터 증세를 해도 무방하다고 봤지만, 오 위원장은 후 세대 부담이 갑자기 과중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증세 이행 로드맵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전문가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다만 김 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이 현재 과잉 안정화됐으므로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쓰면서 '공룡'이 된 국민연금 기금 규모를 당분간 줄여야 한다고 본 반면, 오 위원장은 국민연금 제도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 재원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두 전문가는 대기업에 대한 주식·채권 투자 위주의 국민연금 운용 방식도 비판했다.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공공병원, 공공임대주택, 공공어린이집을 짓는 등 '사회적 투자'를 하는 데 쓰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사회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대담은 18일 오후 중앙대학교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편집자>

▲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왼쪽)과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동해선 안 돼"

프레시안 : 새 정부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씩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가입 기간, 소득에 따라 기초연금을 4만-2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김연명 : 2007년에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2028년까지 기초연금을 소득대체율 10%(20만 원)로 올리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는 2028년까지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던 기초연금 지급 시점을 14년 당겼다.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부부가 같이 살면 16만 원이 추가되므로 현 세대 노인에게는 큰 선물이다. 개인당 은행에 5000만 원을 저금한 것과 같은 효과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안에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다. 국민연금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치명타다. 노동시장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가입 기간이 짧아서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비례해 지급하면, 국민연금에 장기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기여 회피'를 한다. 즉, 사용주와 노동자가 짜고 국민연금에서 빠져나올 유인이 강화된다. 지금도 국민연금 가입자 2000만 명 가운데 1200만 명은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600만 명은 장기 체납 중이다. 비정규직이 국민연금에서 빠져나가려는 동기가 강화된다면, 국민연금이 서민들의 노후 소득 보장 수단으로서 자리 잡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현 세대 노인에게는 혜택이 늘어나지만, 50대 이하에게는 실질적으로 연금이 삭감됐다. 세대별로 희비가 교체하는 것이다. 지금 방안대로라면 국민연금에 40년간 가입한 사람들에게 소득대체율 40%를 국민연금으로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런데 평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25년으로 잡으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이 35% 수준으로 떨어진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동해서 기초연금을 주면 젊은 세대들은 기초연금을 소득대체율의 10%가 아니라 7-8%밖에 못 받는다. 노후 소득 보장 제도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현 세대 노인에 대한 혜택은 늘려줬을지 몰라도, 젊은 세대에게는 불공정하기에 새 정부 방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 당시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소득대체율 60%에서 40%로 내리는 대신 기초연금을 소득대체율 10%로 올리는 합의를 새 정부가 깬 것이다. 그래서 새 정부 방안을 수용하기 힘들다.

오건호 : 새 정부가 국민연금과 연동해 기초연금 급여를 지급하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기초연금은 세금으로 지급하고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를 토대로 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신뢰 문제를 안고 있다. 제도가 후하더라도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크다. 따라서 지금은 가입자들의 제도 신뢰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가입자 소득과 연동하든 가입 기간과 연동하든 일단 국민연금 액수와 연동되면, 현행 국민연금 가입자의 상당수가 기초연금을 덜 받게 되므로 국민연금에 대한 제도 신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 급여에 대한 체험이 확산하면서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있었다. 실제로 국민연금 임의가입자가 늘었다. 그러나 박근혜 '국민행복연금' 사태 이후 제도 신뢰가 깨지고 있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 두 제도를 섞으면 안 된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면 국민연금 가입자와 지급 대상이 동일하므로 관리 체계의 통합은 필요하지만, 급여 수준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통합하지 말았어야 한다. 국회에 가면 다양한 방식의 통합 방안이 나오겠지만, 어떤 안이든 제도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다. 통합하지 말고 애초 공약대로 두 제도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국회가 바로잡아야 한다.

제도 신뢰 문제 이외에도 이번 통합으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국민연금 미가입자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기초연금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이전보다는 금액 측면에서 이익을 보지만 정서상으로 제도를 불신하게 된다. 애초 공약에 비하면 박탈감이 커진다. 그리고 기초연금 지급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연동하다보니 가입 기간이 짧은 저소득 계층 노동자들일수록 기초연금 차감액이 커진다. 새 정부 개편안은 가입자와 미가입자 사이의 형평성, 그리고 가입자 내부의 역진성 문제를 안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정액 지급해야

프레시안 : 두 분 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동해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는 반대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급여 지급 방식은 무엇인가?

김연명 : 먼저 현행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제도를 설명하자면, 국민연금에 40년간 가입했을 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최대 40%다. 이 40% 가운데 자기 소득에 비례한 부분, 즉 국민연금의 B값이 20%이고,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 평균 소득에 해당하는 A값이 20%다.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은 10%이므로 두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합치면 최대 50%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매달 국민연금으로 80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자기 소득에 비례한 부분, 즉 B값 부분이 80만 원의 절반인 40만 원에 해당한다고 하자. 나머지 40만 원은 가입자 평균 소득(A값)에 비례한 부분이다. 가입자 평균 소득과 자기 평균 소득이 1 대 1 비율을 차지한다. 여기에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소득대체율 10%)을 더 얻는다고 가정하자.

ⓒ김연명

여기서 국민연금 A값과 기초연금은 균등 부분이다. 즉 자기 노력과는 상관없이 전체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 받는 금액이다. 국민연금 A값인 20%와 기초연금 10%를 합치면 균등 부분 소득 대체율이 30%다. 반면 자기 소득에 비례해 받는 금액은 20%다. 다시 말해 균등 부분(국민연금 A값 + 기초연금)과 자기 소득에 비례해 받는 부분의 비율이 3 대 2가 된다.

나는 균등 부분인 국민연금 A 값과 기초연금을 합친 비율을 25%로 조정하고, 자기 소득에 비례해 받는 부분인 B값을 25%로, 즉 균등 부분과 자기 소득에 비례한 부분의 비율을 1 대 1로 조정해야 합리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가입자 평균 소득에 비례해 받는 부분은 자기가 노력한 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노력한 값과 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값을 절반 정도 섞는 게 공평하다.

그러나 너무 법을 자주 고쳐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심한데, 가능하면 제도를 안 바꾸는 게 좋다고 본다. 국민연금처럼 복잡한 제도는 무조건 간단하게 설계해야 한다. 정보 비대칭을 최소화해 가입자가 나중에 연금을 어떻게 받는지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균등 부분과 자기 소득 비례 부분의 비중이 25% 대 25%가 돼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나중 얘기다.

일단은 2007년도에 합의했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40%, 기초연금 소득대체율 10%에서 고치지 않아야 한다.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 당시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10%로 올리기로 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 지급 시기를 14년 당겼다. 따라서 애초 공약대로 지급 이행 시기를 당겨서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20만 원씩을 다 줘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오 위원장과 나의 입장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 기금 일부를 기초연금에 써야 vs 현 세대 세금으로 충당해야

오건호 : 앞서 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이원 체계이고 서로 통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제도 신뢰가 쌓일 때까지는 당분간 기초연금을 두 배로 올리고 국민연금은 지금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장기적으로는 기초연금 몫을 늘리고 그만큼 국민연금 몫을 줄이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을 전체 평균 소득의 15%로 올릴 수 있으면, 2028년 기준 소득대체율이 40%인 국민연금 급여율을 소득대체율 30%로 낮춰도 된다고 본다.

내가 제안한 방식대로라면 기초연금(15%)과 국민연금(30%)을 합쳐서 소득대체율이 최대 45%다. 김연명 원장이 제안한 50%(기초연금과 국민연금 A값을 합친 균등 부분 25% + 국민연금 자기 소득 비례 부분인 B값 25%)보다 지급율이 5%포인트 낮아 보인다.

여기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급여율의 실제에 주목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법정급여율 10%가 바로 실질 급여율이다. 가입 기간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연금의 급여율 40%는 가입기간 40년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실제 평균 가입 기간인 약 23년을 적용하면 실질 급여율은 23%이다. 마찬가지로 김연명 교수의 방안은 명목적으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급여율을 합쳐 최대 50%이지만, 평균 가입 기간 23년을 적용하면 실질 급여율은 33%가 된다.

내 방안(기초연금 15% + 국민연금 30%)의 경우 가입 기간 23년을 적용하면, 기초연금이 15%, 국민연금 실질 급여율이 17.25%가 된다. 두 급여를 합치면 총 실질 급여율이 32.25%이다. 김 교수 방안의 실질 급여율과 거의 같다. 하지만 내 방안에는 가입 기간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기초연금 비중이 더 크다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거나 가입 기간이 짧은 불안정 노동자를 감안한 설계도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긴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국민연금 급여율이 중요하겠지만, 비정규직은 기초연금 비중을 높여야 소득 재분배 효과를 더 크게 볼 수 있다. 애초 완전 고용을 염두에 두고 공적 연금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처럼 노동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자기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07년까지는 국민연금 단일 체계를 유지했다가, 지금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이원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앞으로는 가능한 한 기초연금 중심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초연금 비중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에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부담비율이 1 : 1.8이다. 현 세대가 100을 내면 나중에 노인이 된 후에 180을 국민연금 급여로 받아간다. 후 세대에게 나머지 80을 의지한다. 현 세대보다 후 세대의 미래 부담이 크다.

지금부터 미래 세대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거나 국민연금 급여를 깎아야 한다. 그런데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하나는 보험료의 상향이 쉬울 것인가, 다시 말해 수용성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다. 또 하나는 국민연금 기금이 쌓이는 부작용이 있다.

반대로 국민연금 급여를 법정 급여율인 40%에서 30%로 낮춘다고 하자. 그러면 30% 급여에 대한 미래 세대나 지금 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비슷해진다. 급여를 낮추면 후 세대 부담이 해소된다. 단, 국민연금 액수가 낮아진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전체 평균 소득의 15%로 올려야 한다.

결국 기초연금 확대와 재정 마련이 관건이다. 기초연금 재원을 마련할 때, 당 세대가 순수 세금을 통해 당 세대 노인 부양을 책임진다는 원칙을 정해야 한다. 그런 원칙을 정한 뒤 기초연금 몫을 키우면 당 세대가 책임지는 몫이 커지고, 후 세대에게 의지하는 국민연금 몫은 줄일 수 있다.

프레시안 : 유럽은 국민연금 평균 급여율만 50-60%인데, 국민연금 급여를 30%로 깎고 기초연금을 15%로 올려도 지급하는 절대 금액이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오건호 : 유럽보단 낮다. 그렇게 따지면 노사 국민연금 보험요율이 한국은 9%이고 유럽은 20%다(물론 서구에서는 노사 보험료 부담 비율이 4 대 6으로 사측 부담이 더 크긴 하다). 기초연금 지급액을 소득대체율 15%로 올려도, 국민연금 급여 40%를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보험료 상향에 현 세대가 동의한다면 국민연금을 깎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기초연금을 키우려면 그만큼 세금이 더 드는데,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까지 요청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급여율을 40%로 하고 기초연금 수령액도 더 올리자고 하면 당 세대에게 기초연금 세금도 더 내고 후세대 몫을 완화하기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도 더 내라는 이중 제안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연금 재정 측면에서 소득 재분배 효과가 크고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많은 것이 기초연금이니, 국민연금보다는 기초연금 세금 재원으로 집중하자는 것이다. 대신 국민연금은 기초연금이 올라가는 만큼 낮추는 방안을 생각한 것이다.

김연명 : 먼 미래의 얘기니까 사실상 쟁점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오 위원장 제안대로 하면 두 연금의 균등 부분이 30%(국민연금 A값이 15%, 기초연금이 15%)가 되고 소득 비례 부분인 국민연금의 B값은 15%가 되므로 사실상 정액 연금이 된다. 전 국민이 받는 연금 액수가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 말 그대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서 사실상 외국의 기초연금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라서 이 방식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현 세대 이중 부담 vs 미래 세대 부담 증가

나는 오 위원장과는 반대로 현 세대가 후 세대보다 불공평한 부담을 지고 있다고 본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 완전 부과 방식으로 시작했으면 세대 간 부담분이 공정하다. 그해 노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을 당시 경제활동 인구에게 거뒀다면 세대 간 불공평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단지 가족이 사적으로 부담하던 노인 부양 비용을 사회 단위로 넘기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국민연금 제도는 그렇게 출발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국민연금 가입자가 납부한 돈을 쌓아뒀다가 노후에 지급하는 '수정 적립 방식'으로 출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연금 제도 도입 초기에 경제 활동을 하는 세대에게는 부모 세대에게 생활비나 용돈을 드려 사적으로 부양하는 동시에 자신의 노후 또한 국민연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중 부담(Double payment)'이 생겼다. 국민연금을 못 받거나 적게 받아 생활이 안 되는 부모를 월급의 일정액을 사적으로 부담하고, 내 연금을 위해서 또다시 9%를 내야 한다. 반면 현 세대(30대-50대)의 자식들은 현 세대가 노후에 연금을 받기 때문에 지금 우리 세대만큼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하다.

▲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따라서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후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 현 세대만큼 크지 않다. 지금 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인 공적 부담과 부모에게 드리는 생활비 부담, 즉 사적 부담을 동시에 하고 있지만 후 세대는 고령화가 진행되더라도 노인 부양 몫인 국민연금 보험료가 본인 기준으로 10%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다. 2050년에 국민연금 지급액 총액은 GDP의 5.5%이고, 기초연금 지급액 총액은 4.3%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두 연금을 합쳐도 GDP의 9.8%다. 2050년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40%인데, GDP의 10%를 미래 노인들에게 나눠준다고 해서 후세대 부담이 크지 않다. 후 세대가 아무리 많이 내도 현 세대, 즉 지금의 30-50대가 내는 이중 부담보다 덜하다.

게다가 실질 GDP가 늘어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2050년에 실질 GDP가 현재보다 두 배로 커지면 현재 가치로 2600조 원이 된다. 그 가운데 10%인 260조 원을 노인들에게 보험료과 조세를 걷어 나눠주고 나머지 2300조 원가량을 미래의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것이다. 즉 노인이 10%를 가지고, 젊은 세대가 나머지 90%를 가져도 젊은 세대가 가져가는 몫은 현재보다 절대적으로 두 배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 세대들이 더 부담하는 것이 공정하다.

정리하자면 현 30-50대들은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젊은 세대보다 연금을 많이 받아도 상관없다. 대신 후 세대는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현재의 30-50대보다 적게 받는 것이 논리적으로 세대 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문제는 현 세대 노인들이 최소한의 존엄한 생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연금 수혜율은 50%에 불과하고, 받는 금액도 1인당 평균 28만 원에 불과하다. 공적연금 제도의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수준의 금액이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마지노선이 기초연금 소득대체율 10%,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다. 현재 30-50대의 이중 부담 문제를 해결하고, 현 세대 노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

오건호 : 현 세대의 이중 부담이 과한지 아닌지에 대해선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중 부담론 논리는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지금 국민연금이 현 세대에게 우호적으로 설계돼 있는 것이다. 이는 있는 현실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이자.

지금 논란이 생긴 이유는 기초연금 재원으로 국민연금 기금을 사용하자는 새로운 제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국민연금이 지닌 후세대 부담 몫을 더 키우는 방안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 지급에 사용하는 데 반대한다. 지금도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국민연금 재정 부담 비율이 1 대 1.8이다. 현 세대는 100만 내고 180을 받아간다. 후세대에 80을 의지한다. 기초 연금을 지원하기 위해서 국민연금 기금을 써버리면, 후 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 인상 폭이 커진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갈수록 후 세대 부담이 커진다.

게다가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에 쓰는 것은 현재 다수의 가입자들에게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에 대한 불안을 더 가중시킨다. 후 세대에게 GDP 10%의 공적연금 지출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세대부터 공적연금 책임 몫을 늘리는 이행 프로그램을 밟아가야 한다. 현재 우리가 내는 지출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 고작 GDP 2.5% 수준이다. 기초연금을 인상하려면 우리부터 증세를 위한 정치적 경로를 밟아야 한다. 기금을 가져다 쓰면 안 된다.

김연명 : 현 세대가 적립금을 400조 원이나 가까이 쌓아놓은 것 자체가 현 세대의 몫을 충분히 하고도 남은 것이라고 본다. 즉 미래 세대에게 GDP 10%를 노인 부양비로 요청할 충분한 근거가 되고도 남는다. 현 세대의 추가적인 부담은 이중 부담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세대 간의 불공평성을 가져온다.

국민연금 재원의 일부를 기초연금에 쓰는 대신,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면 된다. 국민연금 적립 기금은 점점 늘어 2030년 중반에 GDP 대비 50% 정도가 될 것으로 추계된다. 국민연금 기금이 가장 많이 쌓이는 시점인 2040년까지 국민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으로 사용하되, 적립 기금이 떨어지는 시점인 2040년부터 국민연금 기금이 급격히 빠져나가지 않도록 후 세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국민연금 적립금을 적당히 쌓고, 기금 고갈 시점을 2060년에서 2080년 이후로 늦추자는 것이다.

▲ 김연명 교수는 2040년까지 거대해진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으로 일부 돌려쓰고, 이후에는 후세대 보험료를 올림으로써 적립금 고갈 시점을 늦추자고 주장한다. ⓒ김연명

오건호 : 기금 고갈 시점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문제는 지금 기금을 써버리면 후 세대의 보험료 부담액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2040년까지 조금씩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에 써서 기금 규모를 줄인 다음에 2040년 이후부터는 기금 고갈 속도를 늦추려면 2040년부터 필요 보험료율이 크게 나온다. 특정 미래 세대의 부담이 확 커질 것이다.

김연명 : 우려하는 것처럼 후 세대의 보험료가 급격히 뛰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기초노령연금 지급에 필요한 10조 원 가운데 3조 원을 국민연금 기금에서 충당한다고 했을 때, 기금 고갈 시점이 4년 정도 앞당겨진다는 자료를 낸 바 있다. 전체 기금 규모를 고려하면 미미한 수치다.

국민연금 재원 일부를 기초연금에 끌어 쓰면 기금 고갈 시점은 앞당겨지지만, 후세대 보험료를 늘리면 결과적으로 기금이 소진되는 시점에서 기금의 총량은 더 늘어난다. 그 돈으로 기금 고갈 시점을 연장시킬 수 있다. 따라서 기금 고갈 시점은 의미 없는 개념이다.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지는 여부는 총 재정 부담과는 상관없다.

오건호 :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자는 주장에는 언젠가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몇 십 년 뒤에 가서야 후 세대 부담을 늘려서는 안 된다. 지금 세대부터 늘려야 한다. 왜냐하면 갑자기 보험료율을 높이면 후 세대들은 지급 능력이 있어도 정치적 이유로 증세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제 규모, 연금 재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가마다 공적연금 급여율은 왜 다를까. 특정 국가의 복지 보장 수준은 그 국가의 경제적 능력에서만 비롯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적 부담에 대한 정치적 수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현 세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린 이중 부담을 지고 있으므로 후 세대가 더 내야 한다"고 하면 후세대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지금 어르신들에게 기초연금을 20만 원 지급하는 데 7조 원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 현 세대가 2-3조 원만 부담해서는 안 된다. 7조 원 모두 우리 세대가 다 부담하자고 해야 한다. 어차피 부모한테 드리는 용돈을 세금으로 내자고 현 세대를 설득하면 된다. 국민연금은 우리가 절반을 내고 후세대가 나머지 절반을 내는 방식으로 가고, 기초연금은 세금을 더 거둬 당 세대 젊은이가 당 세대 노인을 부담하는 원칙으로 가야 한다. 증세 정치를 지금 피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정면 돌파하지 않고서 필요한 재원을 미래 세대가 부담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올리는 세금은 현재 우리가 결정할 수 있지만, 미래의 세금이나 보험료 인상은 미래 세대, 즉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그들의 몫이다. 불확실성이 크다. 우리는 우리 몫을 다해야 한다.

김연명 : 지금 세대가 노인 부양에 필요한 세금을 더 내면 이중 부담 문제가 더 가중된다.

오건호 : 지금 당장은 국민연금 기금 가운데 3조 원만 끌어다 기초연금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점점 그 규모가 커질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 인구 총량이 늘어나 자연증가분이 급속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연명 : 어차피 노인 인구 증가율은 정해져 있으므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들어가는 총 몫은 뻔하다. 그 금액을 다 추계해봤자 2050년 GDP의 4.3%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시점이 되면 노동자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노동 소득에 부과하는데, 갈수록 노동 소득 분배율이 줄어들고 있다. 40-50년 뒤에는 노동 소득 분배율이 현재 수치인 55%보다 더 적어질 것이다. 몇 십 년 뒤에도 지금처럼 노동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해 재정을 충당한다는 전제가 틀릴 가능성이 높다. 기업 부담분이 늘거나, 다른 세금에서 기금을 충당할 가능성이 높다. 50-60년 뒤의 사회상을 지금으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지금이 2013년인데 50년 전이면 1963년이다. 그때 이런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겠나? 미래 경제 규모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하기란 불가능하다. 지금은 미래 노인이 받을 연금 몫의 총량만 알면 된다. 그때 가서 이 금액을 보험료율을 올려서 걷을지, 세금을 올려서 걷을지는 기술적인 문제다.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들의 보험료율을 계산하는 건 난센스다.

오건호 : 노동 소득이든 자산이든 법인세에서 충당하는 여부와 무관하게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기금을 쓰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재정 총량을 키운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연금 정치' 효과이다. 국민연금 재원의 일부를 기초연금에 쓰는 것은 '연금 정치'에서 국민연금 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현 세대의 불신을 키운다. '연금 정책'에서 다양한 설계도를 논리적으로 만들 수 있어도, 이를 국민이 수용하지 않으면 제도를 개혁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지금도 보험료를 올리기 어려운데, 기금을 쓰면 나중에 보험료 상향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더 어려워진다. 일찍 소진시키고 더 거두면 된다는 주장을 '연금 정치적' 맥락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은 가입자의 신뢰를 쌓아가는 안정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를 거꾸로 가는 건 곤란하다.

▲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공룡' 국민연금 기금 규모 줄여야 vs 기금 규모 증대는 필요악

김연명 : 나는 국민연금 기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본다. 첫째, 해마다 30조 원을 걷어서 금융 자산에 넣으니까 소비 위축 효과가 크다. 내수가 악화된다. 둘째, 기금이 쌓여서 만에 하나 잘못될 가능성을 생각하자. 2040년에 현재 시가로 국민연금 기금이 2600조 원이 쌓인다. GDP의 50%에 달하는 금액인데, 2060년에는 이 적립금이 0원이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20년 만에 GDP의 50%를 현금으로 바꿔서 노인들에게 연금으로 줘야 한다. 1년에 GDP의 2.5%를 차지하는 주식, 채권을 팔아서 노인에게 지급해야 한다. 현재 경제 규모를 가정하면 GDP의 2.5%면 30조 원이다. 그중 10조 원 정도가 주식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 막대한 금액을 주식 시장에서 갑자기 팔면 그날로 주식 시장은 쑥대밭이 된다. 주식을 살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돈을 급격하게 빼내면 금융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늦춰야 한다. 너무 급격하게 오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유동화 전략을 써서 점진적으로 기금을 쓸 수밖에 없다.

만약 이렇게 많이 기금을 쌓아놨다가 1997년이나 2008년처럼 금융 위기가 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기금이 쌓이는 시점이니 회복할 가능성이 있지만, 10년 뒤에 기금을 빼는 시점에 금융 위기나 외환 위기가 오면 실물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금을 많이 쌓아두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금 크기를 줄여야 하는데, 연금 목적에 합목적적인 방향으로 돈을 써야 한다. 어디다 쓸 것인가? 현 세대 노인을 위해서 쓰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이중 부담을 줄이는 방안에도 좋다. 단순히 돈이 쌓여 있으므로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에 쓰자는 것이 아니다. 세대 간 공평한 부담(현 세대의 이중 부담 완화)과 장기적으로 기금이 축적될 때의 부작용을 생각할 때, 이 방법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2040년 전까지 거대해진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으로 일부 돌려쓰고 이후에는 후세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기금을 다 쓰자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기금을 쌓아둘 필요는 있다. 이 돈을 우리 사회를 좋게 만드는 공적 자금으로 쓸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연금 기금을 주식이나 채권에 전부 투자하는 방식으로 가지 말고, 채권에 쓰더라도 1년에 5조 원을 빼서 공공임대주택이나 국공립 어린이집, 국공립 병원을 지으면 후 세대에게도 편익이 가고 장점이 있다. 지금은 금융 상품에 너무 많은 기금을 써서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대기업만 도와주고 국가 채무만 늘리는 역할을 한다. 연기금을 쓰는 전략도 재검토해야 한다.

오건호 :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임대주택, 국공립 어린이집, 국공립 병원에 쓰는 데는 동의한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1-2% 양보하더라도 그러한 투자는 사회적 효과를 낸다. 다만 어떤 정권이 잡느냐에 따라 이러한 쓰임새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진보적인 정권이 잡으면 사회적 투자를 할 수 있다. 반면 기초연금에 사용하는 것은 순 지출이기 때문에 사회적 투자와는 달리 원금을 보전할 수 없다. 사회적 투자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원금을 까먹는 기초연금 지출에 국민연금 기금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김 교수가 현 기금의 규모에 대해 너무 공포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금이 커지는 게 나 역시 불편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에서 기금은 필요악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피할 수가 없다. 반면 지금 기금을 일부 써버리면 기금 규모가 줄어드는 이익보다 미래의 재정 불안을 키우는 리스크가 더 커진다. 이는 현 가입자들의 연금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28조 원을 기금으로 모았지만, 생명보험 시장 규모가 90조 원이었다. 공보험이 불안하면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은 빈곤에 방치되지만, 중간계층 이상은 자기 노후를 따로 대비한다. 노후를 두고 사연금과 공연금이 심각한 경쟁 체제에 놓여 있다. 기금을 기초연금 지급에 쓰면 이미 비대하게 성장한 사적 노후 시장을 더 키우고, 연금 제도에 대한 현 세대들의 불안을 키운다.

김연명 : 이미 민간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다. 노동 시장에 양극화가 발생해서 이미 포화 상태인 사보험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적다. 더 가입해봤자 사보험에는 중산층 이상만 가입할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과잉 안정화됐다 vs 신뢰 구축이 더 중요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김연명 교수는 거대한 국민연금 기금 규모를 안고 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보고, 오건호 위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국민연금 규모가 너무 크더라도 언젠가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난다면, 국민연금 재정이 불안한 것 아닌가?

▲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김연명 :
그렇지 않다. 나는 현재 국민연금 기금이 과잉 안정화됐다고 본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국민연금 기금을 쌓아 놨다. GDP 대비 적립금 규모가 세계 1위다. 부분 적립 방식을 채택한 한국은 20년치 이상의 적립금을 쌓아놨지만, 일본은 5년치 적립금만 보유하고 있다. 반면 완전 부과 방식(그해 연금을 그해 가입자의 보험료나 세금으로 충당하는 방식 <편집자>)을 채택한 독일의 경우 7-10일치 적립금밖에 없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민연금 재정을 불안하다고 봐서는 안 된다. 과잉 안정화된 국민연금 기금을 더 안정적으로 운용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제도에 대한 신뢰를 쌓아주고 급여율을 지켜야 한다. 이미 과도하게 쌓인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에 가져다 쓴다고 해서 (오 공동운영위원장이 걱정하는 것처럼) 증세 운동의 동력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는 후 세대가 연금을 계속해서 부담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재정 안정화를 기금 고갈 시점만 가지고 따지면, 연금 깎고 보험료 올리자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공적연금 제도의 존재 이유 자체가 최소한의 빈곤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금 재정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연금 제도의 본래 목적을 잊고 재정 안정성만 강조한다. 주객전도다. 최소한의 빈곤선을 막아주는 마지노선이 바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 기초연금 소득대체율 10%다. 절대 깎아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재정이 불안하다는 것은 오해다. 인구 구조가 안정화되면 국민연금 재정 또한 언젠가는 안정화될 것이다. 인구 구조는 변할 것이다. 예전에는 인구가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노인이 적고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노인 인구가 젊은 세대 인구를 넘어섰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인구 구조는 원통형이 된다. 다시 말해 경제활동 인구 한 명당 부양해야 하는 노인 수가 일정해진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마 60-70년 뒤에는 젊은 세대의 수와 노인 인구의 비율이 크게 변동하지 않을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대 간 부담 구조가 공정해진다. 문제는 과도기 단계에서 어떻게 공정하게 부담할 것인가다. 나는 지금 국민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는 것이 공정하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구 구조가 영원히 역피라미드 형태로 갈 것이라고 오해한다.

오건호 : 결국 급여를 깎아서는 안 되므로 우리 둘 다 보험료(혹은 세금)를 올리자고 주장한다. 물론 미래 세대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동의하면, 보험료를 올리면 된다. 문제는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저절로 연금 복지 재정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연금 정책이 '연금 정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구 구조가 안정화되기 전까지 미래 세대가 부담을 늘릴 것이라는 정치적 가능성을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 김 교수는 미래 세대를 신뢰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냥 불확실성으로 봐야 한다. 보험료 인상 이행 경로에 대한 각각의 세대적 책임을 지금 분명히 하지 않으면, 2060년이 되기 전에 신규 가입자들이 국민연금에서 이탈하려 할지도 모른다. 보험료 인상 대신 급여를 깎자는 요구를 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우려하는 공적 연금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김연명 :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공보험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깨야 한다. 국민연금 제도가 본질적으로 세대 간 부양이라는 점을 국민이 납득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연금을 운영해도 연금에 대한 신뢰를 쌓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받는 형태의 개인 연금'이 아니다. 세대 간 연대, 즉 후 세대의 부담을 전제로 설계된 공적 연금이다.

"주식·채권 위주 국민연금 운용 방식 재고해야"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린다.

김연명 : 공적 연금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진보 진영이 내부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지금처럼 여러 갈래의 목소리가 나오면 힘을 받기 어렵다.

그리고 연금 문제는 의료비가 올라가면 소용이 없다. 연금 지급액을 아무리 높여봤자 의료비를 GDP의 25% 이상 쓴다면 소용없다. 기초연금을 올려줘 봤자 노인들이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다 소진할 확률이 크다.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 큰 밑그림을 연금 문제와 관련해 그려야 한다.

오건호 : 당분간 국민연금은 논란이 될 것이다. '국민행복연금'에 대한 국회 대응이 남아 있고, 5년마다 벌이는 3차 재정 추계 결과도 곧 발표될 예정이다. 김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국민연금을 진보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진보 진영이 활발히 토론하고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한다.

연금 제도론적 시각에서 정합적인 모형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러한 제도를 구현하는 연금 정치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연금 제도 수용도의 현 주소를 직시하는 모형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만나지 않은 후 세대라는 주체가 제도의 이해 관계자로 있기 때문에 연금 제도 설계와 연금 정치라는 두 축이 감안된 논의를 해야 한다.

김연명 : 진보 진영은 국민연금 기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진보의 지분이 1%도 안 된다. '재정 안정화론자'들에게 기금 운용을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노동계도 이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 반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정당한 주주권을 행사해 압력을 집어넣어야 한다.

오건호 : 사회 책임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히 사회 책임 투자에 따른 지분 투자를 넘어 경영에도 참여해야 한다. 이사회에서 경영 방침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이마트에서 반노동적 행위가 있었다. 이마트 대주주에 국민연금도 있다. 반노동적·반환경적 행위를 하는 기업에 대해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위협만 해도 효과가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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