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김석동, 역시 '관치의 화신'

[김상조 칼럼] 웅진그룹 논란에 워크아웃 상설화 꼼수

추석 직전인 9월 26일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자회사인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른바 부실기업주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다.

진짜 황당한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뒤통수를 맞은 채권단들이 난리법석을 떤 것까지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10월 5일(목) 금융위가 기업구조조정 제도 전반을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큰 법정관리 제도에서 채권단의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동시에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법정관리, 무엇이 문제인가

법정관리는 뭐고 워크아웃은 또 뭔가? 부실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합도산법에 따라 파산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법원 밖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처리하는 워크아웃이다.

두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워크아웃이 채권금융기관의 채권만을 동결시키는 것인데 반해, 기업회생절차는 금융채권뿐만 아니라 일반 상거래 채권까지 동결시킨다. 이번 웅진그룹의 경우 기업회생절차 쪽으로 갔기 때문에 극동건설 협력업체의 상거래 채권 약 3,000억원이 묶여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워크아웃에서는 재무개선약정의 체결과 이행점검 등을 통해 채권단이 계속 개입하는 반면, 기업회생절차는 파산법원이 관장하기 때문에 채권단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 특히 DIP(Debtor in Possession) 제도를 통해 기존 경영진이 사실상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신용공여액 200억 원 이상의 142개사 중 120개사(84.5%)의 사례에서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선임되었다. 웅진그룹이 기업회생절차를 선택한 것도 결국 이 DIP 제도를 악용하여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럼 워크아웃이 대안인가

현행 기업회생절차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워크아웃이 더 효율적이고도 공정한 기업구조조정 제도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워크아웃 방식에서도 부실기업주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언제나 논란이 되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대우건설 인수로 부실화되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 등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경영에 복귀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또한, 워크아웃 기업들의 회생 비율이 높은 것은, 워크아웃 방식 자체의 효율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하고(이른바 selection bias) 여기에 공적자금을 기초로 한 채권금융기관의 지원이 뒤따랐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도 많다.

워크아웃 방식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관치금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의 개별 대기업에 적용되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하 기촉법)을 제외하면, 워크아웃 방식의 대부분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의존하여 진행된다. 기촉법이든 자율협약이든, 워크아웃은 감독당국이 커튼 뒤에서 개입하는 관치금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채권자⋅소액주주⋅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들 이해관계자들이 가끔 나를 찾아와 하소연을 늘어놓는데, 요지는 왜 워크아웃에 들어갔는지, 진행 상황은 어떠한지, 누구에게 이의제기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은 워크아웃 방식의 강점을 강변하고 있으나, 그 강점은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관치금융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감독당국은 기업집단⋅개별대기업⋅중소기업 등 '기업규모별'로, 그리고 건설⋅조선⋅해운 등 '업종별'로 채권단이 주도하는 워크아웃 방식을 통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긍정적 성과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주단 협정'이라는 채권단 자율협정을 통해 진행된 건설업 구조조정의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부실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사례가 보여주듯이, 최근 중견 건설회사 상당수가 심각한 부실에 직면했는데, 그 대부분이 '대주단 협정'에 따른 지원을 받은 회사들임을 감안하면, 워크아웃 방식에 내재된 관치금융의 폐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부실은 숨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에 대한 비판은 부실기업주가 계속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 즉 DIP 제도의 악용 가능성에 모아진다. DIP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채무자 친화적(debtor-friendly)이라고 평가되는 미국 도산법(U.S.C. Chapter 11)에서 연유한다. 기존 경영진이 기업의 회생에 필요한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도산법이 DIP 제도를 비롯한 채무자 친화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부실기업주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보완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상 기업회생절차의 본질적 문제점은 DIP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 보완적 제도와 관행의 결여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웅진그룹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계열사 차입금을 먼저 상환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에도 이미 들어와 있는 부인권을 엄격 적용해서 원상회복하면 된다. 또한 법정관리 직전에 특수관계인이 미리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혐의에 대해서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 여부에 대해 엄격 조사해서 처벌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문제가 많은 기존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회생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면,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보완하여 기존 지배주주를 관리인에서 배제하거나 채권단이 추천하는 공동관리인을 선임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에 치유 불가능한 근본적 하자가 있는 것처럼 매도하면서,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워크아웃 방식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금융위의 태도에는 뭔가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위의 꼼수

▲ 김석동 금융위원장. ⓒ뉴시스
내가 금융위를 불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기촉법은 2011년에 세 번째로 재입법된 것이다. 기촉법에 의한 워크아웃 제도는 태생적으로 위헌 소지 및 관치금융 논란을 안고 있기 때문에 한시법으로 만들어진 예외적인 것이다. 현행 3차 기촉법도 2013년 말에 일몰 폐지될 예정이다.

3차 기촉법은 과거의 1, 2차 기촉법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채무기업만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채권단이 워크아웃 신청부터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문제를 해소했고, 또 반대채권자의 채권을 찬성채권자들이 6개월 이내에 매입하도록 하는 등 이해관계자 권익 보호 측면에서도 일부 개선을 이루었다.

그런데 10월 5일자 보도자료를 보면, 금융위는 현행 3차 기촉법상의 워크아웃 제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기촉법의 워크아웃 신청주체 확대(현행의 기업만→채권단 추가), 상시법제화, 법 적용대상 신용공여 범위 확대 등에 대해 검토"(보도자료 4쪽)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워크아웃 신청주체 확대'와 '상시법제화'는 2011년 3차 재입법 당시 금융위가 국회에서 약속한 바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며, '법 적용대상 신용공여 범위 확대'는 현재 채권단 자율협정으로 진행되는 여타 워크아웃 방식도 법적 근거를 갖추어 상설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회를 기만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과도기적으로 워크아웃 방식을 당분간 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 방향은 지금 금융위가 획책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즉 워크아웃의 진행 과정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가 법원 등 제3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절차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웅진그룹 케이스를 계기로 제기된 기업회생절차의 문제점이 곧바로 워크아웃 방식의 '과거 회귀'⋅'상설화'⋅'적용 확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모피아의 관치금융을 더욱 만연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럼 모피아는 왜 이런 꼼수를 부리는가? 짐작컨대, 2008년 이후 덮어놓았던 부실기업의 문제가 내년에 폭발적으로 표면화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감독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관치로 묻어두었던 문제를 또다시 관치로 덮으려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모피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정말로 '관치의 화신'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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