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소송 2라운드, 새로운 발암물질 증거 제시

"부산물로도 발암물질 생성"…원고 일부 승소 1심 바뀌나?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인정 항소심에서 원고 측이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부산물로 생성된다는 자료를 추가로 내놨다. '부산물'이 증거로 떠오르면서 앞으로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은 30일 오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등에 대한 4차 변론을 열었다.

항소심에서 원고 측은 올해 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내놓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삼성전자 기흥공장(가공공정)과 온양공장(조립공정) 모두에서 대기 중에 벤젠, 포름알데히드와 전리방사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원고 "정상적인 공정에서도 부산물로 발암물질 생겨"

원고 측 변호사는 "지난 1심에서는 이전 공정에 부산물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는 등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벤젠 등이 남아 있을 확률이 제기됐다면, 이번에는 반도체공장의 '정상적'인 공정에서도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사업장이 직접 사용한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공방이 오고 갔다면, 이제는 화학물질이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해 내는 부산물에 의한 영향까지 고려대상으로 추가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토공정(반도체 회로패턴을 형성시키기 위해 빛을 가하는 공정)이나 몰드공정(반도체칩을 고온의 조건에서 단단하게 가공하는 공정)에서 사용하는 노보락수지는 빛이나 고온을 가하면 분해돼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백혈병 유발인자를 새롭게 생성한다.

원고는 "발암물질의 수치가 낮더라도 어떤 사람은 적은 노출만으로도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며 "벤젠, 포름알데히드, 방사선 등 여러 발암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그 상호작용으로 효과가 배가돼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림프조혈계 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예전의 반도체공장은 내부 공기와 전 공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발암물질이 모든 공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지난해 6월 23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직후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및 유가족들이 서울행정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이종란 노무사, 김은경 씨, 고(故)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송창호 씨. ⓒ프레시안(자료사진)

앞서 1심에서 재판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와 유족으로 구성된 원고 5명 가운데 백혈병에 걸린 고(故) 이숙영 씨와 고(故) 황유미 씨의 산재만을 인정했다.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 관련 기사 : 법원 "'삼성 백혈병' 산재 맞다…유해물질 지속 노출 탓")

나머지 김은경(백혈병), 송창호(악성림프종), 고(故) 황민웅(백혈병) 씨는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은 인정됐지만,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았거나 노출됐더라도 지속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2심에서는 이들이 일하던 공정에서도 대기 중에 새로 발견된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이 추가된 셈이다.

원고 측 변호사는 "과거의 공정은 사라지고 없지만, 삼성전자 노동자와 고인들은 자동화되기 전에 수동화된 구식 공정에서 일했다"며 "과거에는 현재 측정된 노출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발암물질 사용 안 해…노출량도 자연수준"

반면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의 보조참가인으로 나온 삼성전자 측 변호사는 "벤젠 등 발암물질을 사용하지 않았고, 설사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검출량이 일반 외부환경의 측정치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측은 지난 2009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3사가 직접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맡긴 연구에서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감광제 6건 모두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내용에 대해 "분석방법과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 연구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의뢰한 서울대 보고서 대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의뢰해 감광제에 벤젠이 들어있다고 가정하고 실험해본 결과, 근로자에게 벤젠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내놨다.

삼성전자는 "원고들은 불순물을 제거한 공정이나 밀폐된 공정에서 일했기 때문에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았다"며 "설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결과를 보더라도 공기 중에 노출된 벤젠의 농도도 옥외 농도와 비슷한 수준이고, 전리방사선 노출량 또한 자연방사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패소한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어떤 유해물질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백혈병이 생기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반도체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특히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반도체 사업장의 제조공정 건강실태 역학조사'를 반박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이 역학조사는 반도체 공장 업무와 백혈병은 상관이 없지만, 조립공정 여성의 경우 림프종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5.16배, 재생불량성 빈혈은 표준화사망비가 1.46으로 높게 나왔다고 결론 내렸다.

삼성전자는 "2008년 역학조사는 전체를 조사하지 않고 표본을 뽑아 조사했다"며 "오차범위를 고려하면 통계적 의미가 적다"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 연구에 대해 원고 측은 "백혈병과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은 모두 림프조혈계 질환에 속한다"며 백혈병의 한 종류인 림프종의 발병율을 백혈병과 따로 조사함으로써 결과가 희석됐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삼성은 소송에서 빠져라"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에서 분석방법과 과정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면서 재판을 마쳤다. 오는 11월 1일 마지막 공판이 열리면 곧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공판에는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이 방청석에 참가했다. 심 의원은 재판이 열리기 직전 보도자료를 내고 "이 소송은 원고인 유족 등과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의 싸움"이라며 "보조참가인인 삼성은 소송에서 빠지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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