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내주나…한미FTA '굴욕 협상' 수순밟기

"점 하나 안바꾼다"더니…'협상전략' 때문에 말 바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침표, 쉼표 하나 고치지 않겠다던 정부가 결국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에 등떠밀려 '굴욕 협상'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17일 청와대 관계자는 "전체적 국익을 위해서라면 (협정문)자구 한 두 개를 고칠 수도 있다"며 "(꼭 고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전략적 카드를 가지고 협상에 임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양측의 협상 원칙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협상 당사자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그간 "점이든 콤마든, 협정문에 다시 찍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해 왔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작한 추가협상에 대해서도 그간 정부는 협정문 본문을 수정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오히려 "절대로 (협정문 본문을) 못 고친다고 말한 적이 없지 않느냐"며 "(김종훈 본부장의 말은) 우리가 미리부터 협정문을 고친다는 자세로 나가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어찌됐든, 그렇게 되면(본문을 수정하게 되면) 국회에서 정해진 (재비준) 절차를 밟을테니 절대로 밀실협상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는 백악관과 청와대 사이에 일정 정도 재협상의 큰 틀에 대한 교감이 오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는 대목이다.

실제 게리 로크 미국 상무장관은 16일 CNBC에 출연해 "양국 대표단은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논의를) 시도할 것이며, 매듭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진짜 중요한 건 '합의를 위한 합의'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기업을 위해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상의 최종 목적이 미국의 이익을 더욱 늘리는 쪽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그간 한미 FTA 협정문 본문 수정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했으나, 추가 협상은 결국 큰 폭의 수정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과 협상 당사자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사진 오른쪽)은 줄곧 이와 같은 의혹을 부인했으나, 지난 16일 국회 발언에서 일정 부분 이를 시인했다. ⓒ뉴시스

한국 정부가 재협상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의혹은 최근 실시된 추가협상 때부터 줄곧 제기돼 왔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노골적으로 자동차에 대해 '미국 시장은 더 닫고, 한국 시장은 더 연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는데도 한국은 미국에 대한 압박 없이 협상에 임했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자동차에 대해 관세 철폐 시한 연장을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양측이 합의한 협정문에 따르면 FTA 협정 발효 후 미국은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2.5% 관세를 즉시 또는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한국은 미국산 자동차 관세 8%를 곧바로 철폐키로 했다. 미국은 이 유예기간 3년을 추가로 연장하라고 요구 중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 자동차에 대해 가장 대표적인 보호무역조치인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도입 또한 요구하고 있다. 이미 통상교섭본부는 이에 대해 "양자 모두에 적용 가능한 장치라면 (도입)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차의 한국 수입물량이 극소수인 점을 감안하면, 설사 양측이 모두 세이프가드를 도입한다쳐도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이처럼 기존 협정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재협상이 미국의 '힘'에 의해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로 추진됨에 따라,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교섭본부는 18일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민감한 문제에 대해 발언을 삼갔다(하단 상자기사 참고).

통상교섭본부 모호한 태도로 일관… "자동차에서 이익 찾겠다"

한편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 기류가 흘러나오자, 최석영 통상교섭본부 FTA대표는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브리핑 내내 지속된 기자들의 공세에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사실상 재협상에 돌입한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협정문 본문을 수정하는 전면 재협상에 돌입하는 건가?

"저희는 그동안 협상이 아니라 '협의'라고 표현했다. 다만 이번 한미 통상장관 회의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안을 다루게 된다면 협의로서 부족하고, 주고받기식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김종훈 본부장의) 입장이었다. (미국측 요구대로 '재협의'를 한다면) 극히 제한된 부분에 대한 협상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걸 두고 전면 재협상이라고 한다면 부인하겠다."

-김 본부장이 '콤마 하나 바꾸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말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이 수정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협상전략 상 우리가 '합의된 협정문을 열겠다'고 말하는 건(재협상이 맞다고 하면) 아주 부적절한 태도 아닌가. 협상전략상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국민들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결국 재협상에 돌입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사안이 (재협상 대상에) 해당되는지 분명히 말해달라.

"현 단계에서 본질적인 내용은 추가로 드릴 말씀이 없다. 빠른 시간 안에 양국 통상장관 회의가 개최될 것이다."

-세이프가드의 경우 우리 대미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양국 동등조치에 한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정부 입장이 이해가 안 간다.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 자신들로서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제할 것이다. 양자간 FTA 이후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사례도 없다.

또 (국내 기업이) 앨라베마와 조지아에 공장을 세워 2007년부터 자동차 수출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세이프가드 조항으로 인한) 상업적 피해는 생각보다 적지 않겠나."

-안전기준, 환경기준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가 오갔나?

"이산화탄소 배출가스에 대한 기준이나 연비기준은 현행 한미 FTA 협정에 전혀 규정된 바가 없다. 현재 도입하고자 하는 배출규제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3가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가스에 관한 규제다. 현행 한미 FTA에 규정된 가스들은 이런 가스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비, 이산화탄소에 대한 기준을 (재협상에서) 합의한다고 해도 협정문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

-재협상한다면 우리가 얻는 이익은 뭔가?

"우리 협상의 기본방침은 '이익의 균형확보'다. 그 정도로 말씀드리겠다."

-지금 흘러가는 정황을 보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요구하지 않나. 우리가 얻을 이익이 있기나 한가?

"자동차 분야 안에서도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분야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부분에서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국익을 위해 자동차 말고 다른 부분의 협상도 가능한가? 그렇다면 결국 전면 재협상 아닌가?

"굳이 정의하라고 한다면 '제한된 추가협상'이다. 이슈 자체가 모든 분야에 확산되는 건 절대 아니다. 어떤 범위인지는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와 같은 소위 '독소조항' 중 어떤 걸 손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독소조항에 관한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맺고 있는 거의 모든 양자간 협정에 ISD가 포함돼 있다. 우리의 해외 투자자를 위해서도 ISD는 필요한 장치다.

이 부분이 (한미 FTA 재협상에서) 다뤄지는가는 답변드리지 못한다."

-이 답변을 듣고 국민들이 납득 가능하리라고 보나?

"답변하기 곤란하다. 우리가 얻을 이익을 전부 수치로 계량화하기는 어렵다. 이익의 균형에 대한 판단기준이라든가 관점 같은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쇠고기는 FTA 협상 논외라는 게 정부 원칙인데, 쇠고기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다는 것도 우리가 얻은 이익이라는 입장인가?

"쇠고기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쇠고기 문제를 FTA와 별도 채널로 논의할 가능성은 없나?

"한미 간에는 통상관계를 다루는 여러 가지 채널이 있다. 미국쪽에서 앞으로도 계속 그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이번 재협상 결과를 보고 유럽연합(EU)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지 않나?

"연비, 안전기준의 경우 미국과 EU의 기준이 다르다. 아직 EU쪽은 한미간 합의가 결론나지 않아 공식적인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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