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간섭 對 내정간섭…남북간 '말의 전쟁' 달아 올라

"폭압체제 불살라 버려라" vs "北 정신 차려라"

남과 북이 '말의 전쟁'에 돌입했다. 내정간섭적인 발언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체제를 직접 비난하고 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상호 체제를 인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통일부 천해성 대변인은 21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북한은 여러 관영매체를 통해 우리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제기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고 있다"며 "대남 비난과 선동은 상호존중과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등에 대한 남북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이어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언동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런 비이성적인 선동과 비방·중상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열린 4.19혁명 50주년 평양시 기념보고회 ⓒ연합뉴스
특히 천 대변인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안경호 서기국장이 19일 평양에서 열린 4.19혁명 50돌 기념보고회에서 한 말에 대해 "내정간섭적인 발언을 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했다"고 강조했다.

안 서기국장은 보고회에서 "남조선 괴뢰 보수패당이 사대매국적인 외세의존 정책을 공공연히 내들고 남조선을 외세의 지배와 예속의 구렁텅이에 더 깊숙이 밀어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해내외(국내외) 온 겨레는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짓밟고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남조선 보수패당의 친미사대와 매국배족행위를 단호히 반대 배격하여야 한다"며 "남조선의 각 계층 인민과 인사들은 보수정권 심판 구호를 전면에 들고 4.19봉기와 같은 투쟁으로 폭압체제를 불살라 버릴 것"을 촉구했다.

통일부는 또 지난 17일 북한 군사논평원이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난한 것도 문제 삼고 있다.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표현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약 7개월 만이었다. 북한은 이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역도 등의 표현을 써 왔으나 고(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따른 북측 조문단 방문 이후 험구를 자제해왔다.

대통령도 "北 정신 차려야" 맞불

북한에 대한 남측의 발언도 '내정간섭'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에 성대한 불꽃놀이를 한 것을 거론하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백성들은 어려운데 60억 원을 들여 밤새도록 폭죽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면 얼마나 사겠느냐"고 지적한 뒤 "나는 북한이 바르게 가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현 장관은 같은 날 민주평통 강연회에서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북한의 일방적 조치에 대해서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 자관은 "북한은 아무런 실효적 조치 없이 무조건적인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요하고 있다"며 최근 집행한 금강산 부동산 동결 조치에 대해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부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런 유치한 선동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주평통 자문회의 북미주 자문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

"'말 전쟁'이 가장 자극적"

남북 사이의 자극적인 언사는 가뜩이나 악화된 남북관계를 회복 불능 상태로 밀어 넣고 있다.

비록 '말'에 불과하지만 남북관계에서 말만큼 상대방을 자극하는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폭압체제', '정신 차려야 한다' 등 상호 체제 존중의 원칙과 어긋나는 표현이 들어 있어 향후 상호 비난 분위기는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비난은 또한 행동을 낳고 있다. 작년 하반기 유화적으로 돌아섰던 북한의 대남 태도는 차가워진지 오래고, 금강산 관광 지구 내 남측 자산의 동결 등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남쪽에서 되는 각종 대북 조치들도 머잖아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안경호 서기국장의 발언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오지는 않았음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나 연구기관을 통해 북한 급변사태론, 김정일 유고 대비 계획 등이 나왔던 것이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정 전 장관은 "누가 먼저 원인을 제공했느냐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탓을 돌리겠지만, 결국 한 쪽이 그만두지 않으면 자극적 표현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의 고유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대해 비난한 것은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남북관계는 물론 미국과의 관계나 6자회담 재개 움직임도 정체되면서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린' 북한이 말과 액션으로 갈등을 고조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을 (말로) 약 올린다고 버릇이 고쳐지겠느냐"며 "(북한의 의례적인 비난에) 일일이 반응해 '어디까지 나오나 보자'는 식으로 가면 오히려 국민이 불안하거나 초조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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