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 김정은 친서의 숨은 뜻은?

[황재옥의 한반도 '톡'] 북한, 남북 간 협력 구상하고 있나

북한이 2일 원산에서 방사포 두 발을 발사하자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해 즉각적인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자 3일 김여정 제1부부장이 거친 표현이 담긴 비난성 대남담화를 발표했다. 연이어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4일, 김정은 위원장이 코로나19와 관련해 문 대통령에게 위로 친서를 보냈다. 이틀 사이 김여정과 김정은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북한의 이같은 대남 조치를 어떻게 판독해야 할까? 공산당의 상투적 행동이라는 분석부터 '어르고 뺨치는' 식이라는 비아냥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김여정 담화와 김정은 친서 사이에는 최소한 두 개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인다.

김여정은 북한에 대해 미국 코드로 움직이는 청와대 참모들과 국방부를 비판했다. 남한도 해마다 미국과 연합군사 훈련을 하면서 북한의 군사훈련만을 트집 잡을 자격이 있느냐는 '피장파장' 논리로 남한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는 단서를 붙여,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자제했다. 이는 북한 지도부 내에 문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아직은 남아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김여정의 험악한 담화가 나온 다음 날 두 번째 메시지가 북에서 날아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와 관련한 위로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담긴 친서를 보냈다"고 청와대는 발표했다. 문 대통령도 5일에 답례 친서를 보냈다. 두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내용을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자 일부 언론들은 북한이 코로나19와 관련해 대북 방역 지원을 부탁했을 거라고 보도했다.

앞으로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야 할 우리의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위로와 함께 한반도정세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진솔한 소회와 입장이 무엇이었나 하는 점이다. 친서에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솔한 소회와 입장이 담겨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판을 깨는 쪽보다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잘 해보자는 쪽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남북 정상들이 기본적으로 정세 인식을 같이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상호 입장을 조율해나가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의도나 목적 없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으로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자력갱생으로 정면 돌파하겠다고 호언은 했지만, 북한 내부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연일 북한 당국이 관료들에게 일선으로 나가라고 독려하고, 청년들에게는 의존적으로 살려고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걸 보면, 자력갱생만으로는 2020년에 끝나게 되어있는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을 계획대로 마무리하기 어려운 걸로 보인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문에 북한 문제에 관심도 없고, 미국이 유엔제재를 풀어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에 담긴 대북제의들은 불감청(不敢請)이지만 고소원(固所願)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신년 초부터 공개적으로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가면서'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체면 구기지 않고 그런 정책 의지와 제안에 호응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19 상황을 활용했다고 보인다.

친서는 일단 한미관계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을 것이다. 전날 김여정의 대남 비난 담화가 청와대 참모들과 국방부를 겨냥한 점, 특히 올해 춘계 한미연합훈련이 한국 주도로 연기된 것이 아니라 훈련 참가 미군 병사들의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미국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 등은 한미관계의 구조적 특성상 문 대통령도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평가하면서, 신년사부터 3.1절 경축사에 포함된 대북 제의에 관심을 보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고생하는 대통령과 남한 국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달하고,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나면 톱다운 방식으로 남북 화해 협력의 문호를 열어나가자는 제의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할 거였다면 전날 김여정은 왜 청와대 참모들을 몰아붙이는 비난을 쏟아냈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김여정은 청와대와 국방부가 소위 '내로남불' 차원에서 앞으로도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해서 시비 걸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남북 양자간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한테 끌려다니거나 허락받고 움직이지 말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아무튼 김여정의 담화와 김정은의 친서는 다른 것 같지만 일맥상통하고, 표리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핵심은 올해는 남북협력 잘해보자는 것이고, 그 점에서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과 조치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기대가 친서에 녹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외교안보 참모들의 태도다. 2019년처럼 한미협조니 워킹그룹이니 하면서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행보 속도를 늦추거나 발목 잡으면 올해도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이 미국만 쳐다봐서는 한반도에 '작은 봄'도 오지 않는다.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난 우리 국민들이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동안에 어느새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었네" 라고 실감할 수 있게, 외교안보통일 분야 참모들은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가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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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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