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정당' 미래한국당에 멍석을 깔아 준 선관위

[기고] 유권자 의사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 제도 합의해야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이 출현한 뒤로 민주당과 일부 시민운동가들의 위성정당 논의 움직임도 가시화 되자, 이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총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급박한 시점이라서 이 논란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속단키 어려우나 급할수록 신중하게, 그리고 혼란할수록 원칙에 입각해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위성정당 논의를 여러 방향에서 시작할 수 있겠으나, 우선 이번 선거에 처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선거에서 발생하는 사표(死票)를 방지하고 소수정당에 의회 진출의 기회를 줌으로 거대 양당 제도가 갖는 폐해를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그래서 전문가들도 헷갈릴 정도의 기이한 제도가 출현했다. 그러면서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민주당이 가만히 앉아서 당해서는 안 된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쉬운 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국회 입법 과정에서 정말 신중했어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선관위가 민의가 정상적으로 반영된다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짝퉁정당에 합법이라는 멍석을 깔아준 사실이다. 선관위는 국민의 소중한 권리인 선거 제도 전반이 국민을 위해 가동되도록 하는 전향적인 유권해석을 내렸어야 했다. 법과 상식이 다르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정신과 정면 배치되는 식의 선관위 결정이 나왔다.

4.19 혁명이후 거듭된 민주화 투쟁과 그 이후 제도 정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혁명적 투쟁이 민주화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했었는데 촛불 혁명이후에도 유사한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4월 총선을 위해 반칙의 비판을 무릅쓰고 강행하는 방안과 그것에 반대하는 방안, 제3의 절충안을 만들어 대처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이들 방안은 결국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대안이니, 모두가 흔쾌히 합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제도로 바꾸는 데 모두가 다시 합의해야 한다. 민의가 투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개편되더라도 유권자 의사를 적극 반영하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대리인을 뽑는 정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뒷전에 밀리거나 들러리를 설 뿐이었다. 해방이후 최근까지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유권자 권익에 대한 중대결정을 할 때 유권자가 직접 나서거나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시스템이 등장한 적이 없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만들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정치권 내부에서만 갈등과 협상이 진행돼, 현재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제도가 출현했다. 앞으로는 유권자 의사를 반영해 직접 민주주의 열망을 충족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정치머슴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회의원들은 일단 선거만 끝나면 유권자들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왜 이럴까. 그 원인의 하나가 정당제도다. 당대표에게 국회의원들이 공천 문제로 코가 꿰인 상태여서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보다 당대표를 더 의식하게 된다. 많은 경우 군 사단장과 사병과의 관계처럼 일사불란하게 보일 때도 있다. 이 적폐는 뿌리가 깊고 그 독기가 극심하다. 이를 원천적으로 쇄신하면서 유권자의 뜻을 백퍼센트 반영하는 국회의원 선출 방식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대안이 나올 수 있겠으나 이스라엘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크네세트(Knesset, 이스라엘 의회)는 4년마다 실시되는 총선에서 뽑힌 의원 120명으로 구성된다. 총선은 유권자들이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정당 명부에 투표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선거 뒤 득표율이 3.25%를 넘는 정당들이 전체 의석을 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정당 득표율은 1988년 1%로 했다가 점차 상향 조정했는데 현행 3.25%면 4개의 의석에 해당한다. 정당은 100명 이상의 성인이 등록하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총선 후 과반이 넘는 정당 또는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이 가장 큰 정당의 대표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고 총리 후보가 다른 정당들과 과반 의석(61석)으로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하면 총리에 오른다.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 총리 후보는 42일 이내에 연립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이 같은 제도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일 년 사이에 총선을 3번이나 하는 사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선거 망국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뽑은 정치 대리인인 의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다시 총선을 해서 대표를 뽑으면 되는 만큼, 직접 민주주의 실천이라는 면이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될지 전망하기 어렵다. 총선 이후 판도 변화는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선택한 결과라는 점이다.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논의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유권자를 정치공학에 좌우되는 수동적 존재로만 보는 시각은 부적절하다. 유권자들이 마냥 기성 정치권에서 만들어놓은 틀에서 헤매는 식물 유권자의 모습으로 전락할 것 같지만은 않다.

거대 양당제의 폐해가 확인된 이상, 이번 총선은 다당제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런 취지를 집중 강조해야 할 것이다. 혼란할수록 원칙이 중요하다. 특히 현행 여의도 정당들이 4월 총선이후 그 근본적 체질을 바꾸지 않을 경우 변화에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 오늘날 그들의 모습에서 확인되는 듯해서 더욱 그러하다.

총선이후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민의를 제대로 반영되는 국회의원 선거 제도 개혁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수당 난립이나 선거 망국론 따위가 아닌, 유권자 민의의 제대로 된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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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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