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남북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

[정욱식 칼럼] 선택의 기로에 선 문재인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오늘날의 남북관계를 '근친 증오'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2019년부터 본격화된 남북관계 악화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에서만 찾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며, 남북관계 악화에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 관련 기사 : 역대급 군비증강 해놓고 北에 평화 말할 수 있나?)

그 핵심에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기로 합의해놓고 역대급 군비증강에 나선 것이 똬리를 틀고 있다. 또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합동군사훈련 중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주효했다. 이는 북한에게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안겨준 주된 원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올해 남북관계를 되살리려면 고삐 풀린 군비증강을 제어하고 한미 군사 훈련 중단도 결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상 최초로 국방비가 50조 원을 돌파한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앞으로도 군비증강을 계속할 뜻을 밝혔고, 합동군사훈련도 추진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마지못해 연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물론 이에 대한 북한의 언행은 분명 유감스러운 것이다. 북한은 3월 2일 95일 만에 단거리 발사체 발사를 재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중단"을 촉구하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며 막말을 쏟아부었다.

특히 그는 "자기들은 군사적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우리는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는 소리인데 이런 강도적인 억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누가 정상 상대라고 대해주겠는가"며, "청와대의 이러한 비논리적인 주장과 언동은 남측 전체에 대한 우리의 불신과 증오, 경멸만을 더 증폭시킬 뿐"이라고 비난했다.

"백두혈통"이자 사실상의 2인자로 간주되어온 김여정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정은의 특사로 방한해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던 인물이었다. 이랬던 김여정이 이번에는 대남 비방의 전면에 나선 것이야말로 북한의 대남 인식 및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정확히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는 남한의 대규모 전력증강과 한미 군사 훈련을 북한이 양해해주고 남북대화에는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겠지만, 이는 정부가 원하는 북한이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 아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도 선택을 해야 한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어렵게 하면서까지 군사력을 더욱 증강해 군사 강국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군비증강 조절 및 한미 군사 훈련 중단을 통해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개를 도모할 것인가?

이미 한국은 엄청난 국방비를 투입해 세계 7위의 군사 강국으로 올라선 상황이다. 반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시민'의 염원이자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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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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