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름 걸고 '소수자 혐오'를 하다니"

[여대의 트랜스젠더, 그가 남긴 질문 ②]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숙대 트랜스젠더 A씨 케이스'는 A씨가 입학을 포기하면서 일단락됐다. 합격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30일부터 약 10일간 숙대는 화제의 중심에서 내홍을 겪었다. 입학을 환영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입학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거셌다. 학내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는 '입학하면 괴롭혀서라도 쫓아내겠다'는 말까지 올라왔다. 합격자였던 A 씨도 해당 반응들을 봤을 터. 결국 지난 7일 그는 입학을 포기했다. '포기 당했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던진 숙제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사실상 법적으로 인정한 때는 2006년. 그후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에게 가해진 위협과 폭력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숙대 학생들은 왜 그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나. '여성'이란 무엇인가. 이건 A 씨만의 일도, 숙대 만의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페미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따라서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몰입해 '전선'을 긋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숙대라는 집단의 여성 구성원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논리는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쟁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불길이 붙은 지 6년,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프레시안>이 각기 다른 입장의 숙대 학생들을 만나 'A 씨 사태'가 남긴 과제들을 이야기해봤다. 지난 회차에서는 먼저 스스로 ‘래디컬 페미니스트(급진 페미니스트)’라 소개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회차에서는 ‘A 씨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A 씨가 입학을 포기한 뒤인 지난 10일, 숙명여대 학내 게시판에는 여전히 A 씨의 입학을 둘러싼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 '입학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동의한다'며 지지를 표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깨끗한 대자보가 눈에 띄었다. 'A 씨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자보를 건 주인공은 나수빈(법학 17), 소수자위원회의 장태린(법학 17). 두 학생은 학내 인권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다. '탈브라 운동'과 같은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는가 한편, 학내 인권침해 사건에 대응하고 또 '무지개 주간'을 만들어 성소수자 연대 활동을 펼쳐 왔다.

강경한 목소리 속에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걸 때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 씨와 장 씨는 "인권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욕을 워낙 많이 먹었다"며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왜 남자인권을 챙기느냐'는 항의를 많이 듣는다"며 "성소수자 인권과 여성인권이 완전히 나뉜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A 씨의 입학을 환영하며 학내 혐오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 ⓒ프레시안(조성은)

프레시안 : '입학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썼다. 굉장히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장태린(이하 장) : A 씨는 법적으로 성별정정을 하고 정시모집으로 들어왔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트랜스젠더가 익숙하지 않아서 거부감은 있을지언정 입학은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입학을 취소하라하고 성별 정정하는 사법체계까지 문제 삼는 걸 보고 심각하다 생각했다.

나수빈(이하 나) : A 씨의 입학이 이렇게 크게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욕은 많이 먹겠다 싶었다. 교내에서 그런 분위기가 고조되고, '트랜스비둘기' 대자보가 붙은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걸었다고 타격이 오는 건 나중 일이다. 대신 당사자에게 응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내가 쓴 자보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즉 트랜스젠더가 어떤 사람들이고 왜 포용하고 이들과 연대해야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그냥 '사법부가 그를 여성으로 인정했으니 입학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다. 강경하게 반대하는 학우들이 핀트를 잘못 잡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싶었다.

프레시안 : 저는 사실 많이 놀랐다. 여성주의는 보통 성소수자와 연대하지 않나. 여대는 여성주의의 중심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성소수자 반대 목소리가 강경했다는 게 사실 충격이었다.

장 : 2018년쯤부터 트랜스젠더 혐오 분위기가 시작된 것 같다. 한번쯤 이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2018년에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20대 페미니스트 중심으로 '터프'가 대두되고 그 흐름이 학교 안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학교에서는 성소수자 관련해서 가장 크게 있었던 일이 작년 2학기에 있었던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때였다. 단과대·총학생회·동아리연합회 대표자들을 모아서 하는 회의다. 그때 학생소수자위원회는 '성정체성과 지향성, 나이, 출신지역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학교를 만드는 기구'라고 했다. 그러니 모 단위 대표가 여대에 '성정체성'이 왜 들어가느냐며 항의한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정신병이라 생각한다며. 그게 속기록에 남아서 그걸 확인하고 문제 삼아 대자보를 작성했다. 그런데 붙인 다음날에 그게 훼손됐다. 여성혐오적인 발언이라면서.

프레시안 :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이야기인가.

장 : 그렇다. 트랜스젠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혐오로 몰아가는게 여성혐오라는 논리다. 어떻게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여성인권보다 우선시할 수 있냐며 논란이 일었다. 인권이 무언가를 우선시하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데. 그전까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트랜스젠더 배제의 목소리가 있었다면, 그 때를 기점으로 결속한 것 같다.

나 : 우리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흐름인 것 같다.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커지고 운동하고 시위 나가고 하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반대로 깊게 공부하는 게 부족했던 것 같다. 운동하고 시위하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소비형 페미니즘'을 경계하자는 거다. 트랜스젠더 배제는 페미니즘 운동을 가볍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흐름이라 생각한다. 그런 외부 분위기가 학교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 생각한다.

배제를 통한 결속...장기적으로 운동의 동력 사라질 것

프레시안 : 2015년 메갈리아를 계기로 '페미니즘 리부트' 열풍이 불었다. 그러다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를 두고 워마드로 분화됐다. 이후로도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기혼여성을 배제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계속 배제로 가는 것이 우려스럽다.

장 : 혜화역 시위(불편한 용기 시위, 불용시위)에서도 문제가 된 부분이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비웨이브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두 시위는 각각 불법촬영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불용시위의 경우 이를 주도하는 그룹 내부에서 기혼여성의 참여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기혼여성은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는 이유에서였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4B 운동'을 한다. 비혼·비출산·비섹스·비연애다. 기혼여성은 결혼해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니 4B운동을 안 한 거다. 불용 시위 공식 홍보물에는 트랜스젠더 금지만 내걸고 기혼여성 금지는 내걸지 않았지만, 불용시위 스태프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던 문제다.

트랜스젠더의 경우엔, 실제로 불용시위에 한 mtf 트랜스젠더가 참여했었다. 선별되지 않은 거다. 여성으로 패싱(겉모습이 여성으로 치부된다는 의미)된 것이다. 그분이 자기 소셜미디어에 불용시위에 갔다 왔다고 후기를 올리자마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트랜스젠더면서 왜 왔냐', '여성들의 아픔에 공감하느냐'라면서. 혜화역 시위가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고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음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유다.

다른 소수자들, 트랜스젠더도 불법촬영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나. 그럼에도 '순수한 여성만 시위 참여가 가능하다'고 프레이밍했다. 그렇게 되니 외부의 안티 페미들은 '페미니즘은 저런 거다' 생각하게 하고 트랜스젠더에 연대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었다. 올바른 운동방향은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 왜 그런 전략을 채택했다고 생각하나.

장 : 가부장제라는 거대악과 싸워야 하는데 그건 장기적이고 거대하다. 당장 뭔가 했다는 성취감을 위해서는 단일 의제에 힘을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소수자 안에서도 더 소수자인 트랜스젠더를 공격함으로써 결집하는 것이다.

지금의 자칭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게 탈코르셋이다. 그런데 탈코르셋한 여성과 mtf 트랜스젠더를 두고 누가 남성이고 여성인지, 젠더퀴어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염색체가 XX야', '주민번호가 2 또는 4로 시작하는 진짜 여성이야' 이런 식으로 소수자 사이에서 위계를 만든다. 그러면서 '나는 약자 중에서도 제일 약자'라는 프레임을 가져가는 것이다. 자신의 약자성에 집착하는 것 같다.

나 : 불용시위나 비웨이브시위는 그런 사람들의 운동 전략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생각한다. 배후에 누가 있고 누가 중심축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여성들은 엄청나게 분포돼있고 하나로 결집하는 게 쉽지 않다. 낙태죄 폐지나 불법촬영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제에서 여성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전략으로 퀴어 혐오를 전략적으로 채택한 게 아닐까 싶다. 외부에 적을 만들어야 내부가 결집되니까. 우리 집단이 결집하기 위해서는 '남성' 이상의 적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 과정이 또 위트있어야 하고.

메갈리아가 흥했던 것도 남성들이 여성을 조롱하던 걸 차용해서 유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전략과 비슷하게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여성이고 우리가 우리를 위해 싸우자' 이렇게 하는 것이다.

탈코르셋 운동을 예로 들면 그냥 '탈코하자' 하면 사람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그러니 트랜스젠더여성을 타겟으로 삼는다. '여자라고 우기는 애들이 코르셋 한거 보면 웃기잖아, 우린 저런 거 하지 말자!' 내지는 남성들 중에서도 꾸미는 사람들을 지목해서 '쟤네 좀 봐, 웃기잖아!' 이런 전략이다. 왜 탈코르셋을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반사적으로 효과를 가지고 오려는 생각이 있다고 본다. 4B 운동도 마찬가지다. '남자를 사귀지 말자' 이런 게 아니라 '저거 봐, 기혼 여성들 결혼해서 애기낳고 저렇게 살잖아. 쟤네 한심해' 이런 식으로. 결과적으로 그 사람들을 배제하게끔. 운동의 동력을 위한 혐오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칭 래디컬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개개인을 만나면 트랜스젠더에 대해 진짜 '악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이다. 이번 일까지 결과적으로 '여성'이라는 범위를 점점 축소시키고 있다. 20대 엘리트 여성만 모아서 단일 의제를 빨리 해치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트랜스젠더 혐오가 필수불가결한 것 아닐까 싶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엔 다 배제하니까 길게 봤을 때는 좋은 전략은 아닌 거 같다

ⓒ프레시안(조성은)

트랜스젠더 입학과 학내 안전은 별개의 문제

프레시안 : 학교에서 '반대' 주장의 대부분 근거가 안전 문제였다. 일리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 : 저희도 안전문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입학한 2017년부터 외부인 남성에 의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실제로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물리적인 위협이 있었다. 여성들이 공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공포심을 해결하는 방법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여성들을 고립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대'라는 공동체는 '여성들만 있는 공간'으로, 사회적 신비감, 대상화 이런 것들이 있었다. 깨끗하고 평화로운 곳. 예전에 고대생들이 이화여대 축제 때마다 침입해서 폭력을 행사했던 건 그런 대상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부인들은 내부가 어떤지 모른다. 그런 환상은 내부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계속 '금남의 구역', '아무도 침입해선 안 돼'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게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줄까.

나 : 진짜 여성들만의 공간을 만들 거면 트랜스젠더 반대가 아니라 반 남교직원 운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트랜스젠더와 안전 문제를 엮어서 '트랜스젠더가 들어오면 안전이 침해된다' 할 게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니까 경비인력을 늘리자' 라는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거다. '남성을 막자', '남성 패싱된 사람을 막자', 이런 게 좋은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탈코르셋한 여성들이 남성으로 오해받아 정문에서 잡히는 경우도 있다.

프레시안 : 그래도 여성들끼리만 있으면 좀 더 안심이 되는 건 사실 아닌가.

장 : 여성들만 있는 공간이 안전하다는 것도 학교의 주요 여론이다. '여성들만 있으면 안전하고 폭행당할 일이 없다'는 식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여성들끼리만 있어도 폭력은 일어난다.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사이버불링을 하고 물리적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도 여성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사람도 있다. 여성만 있어도 안전하지 못할 수 있는데 남성이 들어와서 안전이 해쳐진다고 생각하는 게 더 여성혐오적인 것 같다. '여성들은 다 착해, 안전해, 무해해' 여성은 단일한 집단이 아닌데 무조건 안전하다고 해버리는 거다.

나 : 그리고 일반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과 mtf 트랜스젠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도 잘못됐다. mtf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여성으로 놓고 바디 디스포리아로 괴로워하고 목숨을 걸고 성별정정을 받는다. 돈과 시간, 아픔을 겪고 여성이 됐는데 그런 사람한테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으니까 들어오지 마'라고 한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여대에 그런 이유로 들어올까 하는 의문이다. 낙태죄 폐지 반대 논리랑 비슷한 것 같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들이 문란해지고 낙태가 횡행할까.

트랜스젠더가 우리학교 들어와서 성폭력 안 할 거라 장담할 수 있냐는 말도 있는데, 근거도 없다. 이건 난민 혐오와 비슷한 거 같다. 난민이 성폭력을 저지를 거라는 공포심과 비슷하다. 그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본국으로 추방당할까봐 더 조심한다.

장 : 범죄를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거지 난민이어서, 트랜스젠더여서는 아닐 거라는 말이다. '트랜스젠더니까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이건 정말 혐오다. '여자들은 나약하다', '여자들은 수동적이다' 이런 여성혐오와 무엇이 다른가. 페미니즘 이름을 걸고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고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기혼여성을 혐오한다. 인권운동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화나는 일이다.

프레시안 : '여대'니까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 : 제가 학소위 입장문에도 썼지만 '여자대학교'가 생긴 이유는 여자들은 대학교를 비롯해 교육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성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여자대학교다. 젠더 위계 속에서 약자인 여성을 위한 것이다. 우리 학교가 만들어진지 100년이 넘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을 못가는 경우는 없다.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화여대 김혜숙 전 총장님이 '여대의 목적은 소멸에 있다'고 했다. 우리사회가 여대를 만든 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여대의 소멸과 성평등은 이어져 있다. 젠더 위계 속에서 더 차별받는 트랜스젠더, 젠더 퀴어 등 소수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게 여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mtf 트랜스젠더의 경우엔 남고 나온 게 알려지면 아웃팅 당하는 거다. 트랜스젠더들은 자기들끼리 '졸업장이 없다' 이런 농담을 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나온 학교를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게 여대의 설립 이념에도 맞지 않나. '시대에 발맞춘 여성 리더'를 양성하는 게 우리학교의 이념이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고 그들을 양성해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 배제하고 차별하는 게 숙명여대의 이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제와 차별에 저항하는 게 숙대의 이념이다.

여대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 세대 전까지만 해도 '숙대 졸업앨범에서 결혼할 사람 찍어간다'는 얘기도 있었고, '여대면 시집 잘가려고 간다'는 편견도 있었다. 그 전 세대는 '여자가 대학가서 뭐하냐'는 소리도 있었다. 그런 차별에 싸워왔다. 여성의 활동반경을 넓히고 여성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인가. 여대의 반경을 좁히고 '진짜 여성'을 구분지음으로써 목소리를 줄이고 있다.

▲ 숙대. ⓒ프레시안(조성은)

여성, 'XX 염색체'만으로 정의되는 존재는 아냐

프레시안 : 이 사안을 보면서 '여성'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더라. '여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스로를 왜 '여성'이라 생각하나.

나 : 어려운 질문이다. 확실한 건 염색체로만 정의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염색체는 불안정하다. XX와 XY가 성염색체라고 알고 있는데, 간성도 존재하지 않나. 성을 구분 짓는 부분은 전체 염색체 중에서 아주 아주 일부분이다. 여기서 성을 결정하고 실수로 오류가 나면 간성이 될 수도 있고 성기 모양도 사람마다 다르고 성기를 두 개 다 가지는 사람도 있다. 성염색체가 무조건 우리 성별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 '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가', 사회가 나를 여성으로 정체화했고 바디 디스포리아가 없고 나도 거부감이 없고.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주민번호가 2나 4로 시작해야 여자다', '우리는 국가가 여자라고 인정했으니까 여자다'라는 주장이 있는 것도 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선배 페미니스트들은 국가가 여성을 착취하는 걸 반대하며 국가가 여성이라는 존재에 정의내리는 것에 저항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가가 여성이라 인정했으니까 여성이다'라는 건 모순이다. 국가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 다시 질문해야 한다. 절대적인 근거가 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트랜스젠더의 성별에 대해서도 왈가불가 할 수 없다.

장 : 재미있었던 게, A 씨 사태에서 단톡방을 만들어 혐오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단톡방에 들어가려면 주민등록증과 목소리, 손과 손목을 인증해야했다. A 씨는 이미 성별정정을 거쳤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도 2로 시작한다. 호르몬제를 맞아 목소리가 높아지고 손이 가늘어지면 그 단톡방에 들어갈 수 있는 거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이 아닌데 여성이 되는 것이다. 웃기지 않나. 여성을 구분 짓는 지표가 유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반대로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은 뭔지.

나 : 탈코르셋 운동에 반동적이기도 하다.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몸매에서 탈피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사회가 부여한 여성성이니까. 그런데 손목이 굵고 손이 두툼하면 단톡방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장 : 트랜스젠더 혐오 논리 중 하나가 '우리는 우리를 옥죄는 코르셋을 벗는데 쟤네는 머리 기르고 화장하고 짧은 옷 입네, 여성혐오적이야!' 이거다. 그런데 반대로 변희수 하사를 보고는 '쟤는 남자같이 있으면서 왜 여자라는거야?'라고 반응한다. 이중적이다.

나 : 박한희 변호사가 쓴 글을 봤다. 그분은 어렸을 때부터 바디 디스포리아가 있었고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했지만 여전히 레고를 좋아하고 로봇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포항공대도 갔다. 남자 애들이 좋아할만한 거 좋아했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했다. 이게 커뮤니티에 올라왔을 때 댓글이 '그러면 왜 스스로를 여자라 생각했냐' 이런 식이었다.

자기들이 여성의 범주를 한정해놓고 거기 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소거하는 형태로 계속 분리한다. 동시에 그런 사람들이 또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는 것을 비난한다. '왜 인형 좋아한다 그래?', '인형 좋아하면 여자야?' 이렇게 이중적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거다.

페미니즘 운동의 본질은 '존버'에 있다

프레시안 : 조금 더 어려운 질문을 해야겠다.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장 : 저는 페미니즘은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성, 사회적 배경에 의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운동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소수자들이 사회에 존재하는지를 더 예민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약자성은 이렇지만, 상대적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강자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저는 제가 이렇게 언론을 통해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저도 약자지만 수도권에 거주하고 중위권 이상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강자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환경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는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생존이 가장 큰 문제인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왜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하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조롱한다. 결국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2015년에 페미니즘 리부트는 '나는 이런 차별을 받았다, 힘들었다' 이런 차별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건 당연히 필요하다. 그동안 공기처럼 만연했지만 공론화되지 못한 문제니까. 5년 이상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내가 제일 약자야, 힘들어' 이렇게 고통을 전시하고 상대적인 약자성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앞으로 방향을 더 생각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성공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했다는 걸 고찰해야한다.

나 : 저는 '쓰까들이 잘 버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게 지금 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잔인하고 어려운 말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운동들이 있었다. 노동운동만 해도 남성 중심적이었다. 내부에서 여성혐오가 일어나고 여성들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쉽게 지워지곤 했다. 그런 분위기를 점차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노력해줘서다. 힘들고 죽을 거 같고 여자라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끼고 모욕적인 일을 겪으면서도. '존버'라고 하지 않나. 존버하면서 그걸 바꾸기 위해 수십년 버텨서 민주노총 안에서도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성차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으로 버티고 노력하면 조금씩이나마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절망적이지만.

계속 버티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우리가 가는 방향이 이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힘내서 버티자고 하고 싶다. 소비성 페미니즘을 지양하고 사유하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자고. 요약하자면 '성찰하지 않는 운동은 지속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조성은)
프레시안 : '성찰하지 않는 운동은 지속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번 일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장 : 터프의 동력은 혐오와 차별이다. 당장은 재밌고 쉬우니까. 눈에 띌 수는 있지만 이건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생각한다.

나 : 하나 더 덧붙이자면 지금 많은 영영 페미니스트들이 엘리트 중심의 페미니즘과 그걸 선망하는 걸 탈피했으면 좋겠다.

'내 삶의 페미니즘' 찾았으면

프레시안 :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장 :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바꿀지를 논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페미니즘 운동은 '공부하고 책 읽고 시위해야한다' 이렇게 고착화된 것 같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는 노동의 현장에서, 학자들은 학문의 영역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필요할 때 연대하면 된다. 근데 '넌 왜 시위 안해?' 이런 식으로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가령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화장을 하는 게 일이고 생계인데 왜 탈코르셋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코르셋'에 부역하고 있으니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없나. 그런 식으로 검열하고 자격을 부여해서 '너는 진짜 페미니스트야, 혹은 아니야' 이렇게 나누는 것을 지양해야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가부장제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그걸 답습해서 페미니스트 안에서도 누군가가 더 권력을 쥐고 위계를 나누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정말 맞지 않다고 본다.

나 : 여성들이 좀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그래도 된다. 당장 내 삶이 힘들면 페미니즘을 이용해 개선시킬 수 있다. 화장 안하고 일터에 가고 싶은데 화장하라고 강요한다면, 페미니스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렇게 화장 안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거다. 꼭 엄청난 대의제, 낙태죄 폐지 같은 것이 내가 해야 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서프러제트 운동을 돌아봤을 때 물론 여성운동계의 엄청난 역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서프러제트도 투쟁 막바지에는 참정권을 얻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 죽어나는 것은 하층민 여성이다. 투표권을 얻었어도 하층민 여성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트 여성들이 결국 하층민 여성들의 삶과 투표권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동지들을 내줬는데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같은 페미니스트라해도 사람들이 좀 더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 엘리트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페미니스트 그룹 내의 위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성차별이야말로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차별, 최후의 차별이 될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터프'라는 집단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의제에서 여성주의를 앞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장 : 인권을 '챙긴다'라는 표현을 쓴다. 마치 어떤 인권과 또 어떤 인권이 있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생겼다면 성차별이 여기 있고 노동 차별이 여기 있고 퀴어 차별이 여기 있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부장제를 크게 놓고 봤을 때 성차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퀴어 혐오도 있고 노동 혐오도 있다.

가부장제의 '정상성'이 무엇인가. 제1세계 남성, 백인, 중산층, 이런 식이다. 페미니즘은 이에 맞서는 것이다. 장애인 혐오, 빈곤 혐오 이런 의제들은 다 맞물려 있다. 거기서 성차별이라는 영역만 없애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여성이면서 학생이고, 노동자이고 아시아인일 수도 있다. 속칭 '쓰까'(인권을 이것저것 '섞는'다는 조롱의 의미)라고 한다. 여성운동만 해도 모자란데 여러 의제를 섞는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너무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존재하나. 우리는 여러 사회적 상황에 놓이고 그걸로 나라는 사람이 구성된다. '여성이니까 여성운동을 먼저 해라' 이 전제 자체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한다.

나 :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생물학적 남성과 생물학적 여성간의 계급이 없어지면 모든 차별이 사라지나. 제1세계 중산층 백인 여성과 제3세계 유색인종 여성의 관계가 평등해질까. 그런 여성들을 위해서는 다른 운동이 계속 더 필요하다. 그러니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다른 운동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단일하게 존재할 수 없다. 성차별은 다른 것들과 연결돼 있다. 성차별이 가장 공고하고 여성이 차별의 근본적인 존재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다른 운동을 함께 해야 여성해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나.

나 : 저는 이번 사태에서 일부 여성주의 학자 선생님들에게 실망했다. 어떤 분들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면 안되지만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배경도 이해해줘야한다' 이런 말을 한다. 성차별 사회니까 이렇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정말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도 분명 알 것이다. 같은 층위의 문제가 아니다. 트랜스젠더 혐오는 여성들이 하나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본인들도 잘 알 것이다.

딱 그거다. '하층민 남성 노동자가 왜 여성혐오를 할까' 했을 때 '삶이 너무 힘들어 그런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다. 노동문제, 하층민 문제가 해결되면 여성혐오가 없어지나. 여성혐오 자체가 잘못됐다 말해야 하는데 '걔네도 사정이 있다,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건 진짜 비겁한 거다.

장 : 저는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 헤테로(이성애자) 여성이고 여대에 다니고 있다. 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너는 왜 여자면서 트랜스젠더 인권을 이야기해?', '왜 여성인권을 우선하지 않아?'라는 비판을 듣곤 한다. 그런데 저는 여성인권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대를 거쳐 간 선배들이 그랬듯이 우리 선배들이 여대, 여성, 여대생이라는 말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싸워왔고 우리도 경계를 부수고 넘기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다른 소수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것이다. 소수자성을 가진 여성으로서 경계를 넘자는 말을 할 것이다. 여자대학교의 목적은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혐오자들이 계속 '너는 남성인권 챙기냐' 말을 해도 인권은 무엇을 먼저 챙기는 문제도 아니고, 남성인권을 챙기는 건 더더욱 아니고 내가 가는 방향이 절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목소리를 낼 것이다.

나 : 하나 더. 일부 남성들이 이번 일을 가지고 여대를 폐지하라느니,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이야기해놓고 자기들은 차별한다 이런 말을 안했으면 좋겠다. 그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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