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 알려 '죽음의 경주' 멈추게 할 것입니다"

[현장] 과천 경마장에서 청와대까지 26km 문중원 오체투지 마지막 날

고 문중원 기수 오체투지 행렬의 맨 앞에 선 고인의 어머니, 부인, 장인은 문 기수가 말 옆에서 활짝 웃는 사진이 인쇄된 피켓을 가슴에 품고 걸었다. 세 사람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개를 떨구고는 한 발씩 걸어나갔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행렬이 시청 광장에 도착하자 예순 네 살 장인 오준식 씨가 주변의 만류에도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하얀 민복을 입었다. 부인 오은주 씨는 입을 꾹 다물고는 아버지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오준식 씨가 오체투지를 시작하자 그 앞에서 피켓을 들고 걷던 오은주 씨가 행진 내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후 참가자들은 정부종합청사 앞 문중원시민분향소에서 "문중원을 살려내라", "살인경마 폐기하라", "정부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와 함께 문 기수 영정에 20배를 올린 뒤 최종 목적지인 청와대로 향했다.

설 전 문 기수의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5일에 걸쳐 26km 거리의 오체투지 행진이 진행됐다. 17일 과천 경마장에서 출발한 오체투지 행렬은 21일 청와대 앞 차로에 도착했다. 문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54알째 되는 날이었다.


▲ 아버지 오준식 씨가 오체투지를 시작하자 울음을 터뜨린 오은주 씨. ⓒ프레시안(최형락)


오체투지 청와대 행진 가로막은 경찰

참가자들은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까지 행진한 뒤 "설 전 문 기수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청와대가 나서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항의서한을 전달할 예정이었다.

청와대 앞 차로에 도착한 참가자들 앞에는 경찰 차단벽이 세워져 있었다. 경찰은 "청와대 앞에서 진행 중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집회 참가자들과 충돌 우려가 있다"며 사랑채 방향으로의 차도 행진을 불허하고 인도 행진을 요구했다.


오체투지단은 충돌이 우려된다면 방송차는 두고가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경찰은 길을 열지 않았다. 오준식 씨도 "평화적으로 갈테니 보내달라. 저 사람들은 사람이고 우리는 짐승인가. 저기 있는 사람들은 앉아있어도 되고 우리는 기어서도 못 가는가"라고 항의했다. 오은주 씨는 차단벽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참가자들은 행진을 계속하겠다며 2개 차로 중 1개 차로에 세워진 차단벽을 돌아 차도 위로 1보 1배를 계속했다. 방패를 든 경찰이 달려와 이들 앞을 가로막았다. 참가자들은 오체투지 자세로 땅에 배를 댄 채 경찰 방패 앞에 드러누웠다. 이 과정에서 앞으로 가려던 참가자 중 한 명이 부상을 당해 119에 실려가기도 했다.

대치가 지속되자 인도에도 방패를 든 경력이 배치됐다. 현재(오후 7시) 양측은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오체투지단은 오후 7시 시민분향소 앞으로 예정되어 있던 추모문화제 장소를 대치 현장 앞으로 옮기고 밤샘 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해산 명령을 반복하고 있다.


▲ 경찰 차단벽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오은주 씨. ⓒ프레시안(최형락)

▲ 경찰 차단벽 앞에서 절규하고 있는 오준식 씨. ⓒ프레시안(최형락)

▲ 청와대 행진을 가로막은 경찰 앞에서 1보 1배를 하고 있는 오체투지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널리 알려 죽음의 경주를 멈추게 할 것"

지난 5일 동안 오체투지 행렬은 김용희 삼성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장, 문중원시민분향소 등을 지났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 피디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센터 대표,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고 김태규 씨 누나 김도현 씨, 이재용 삼성 해고 노동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작은예수회 등이 함께 했다.

오은주 씨는 첫날 "설 전 장례를 치르고 싶습니다"라며 "저는 이제 제 남편 문중원만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이 싸움 포기하면 내일 또 누군가 죽을 준비를 합니다. 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널리 세상에 알려 죽음의 경주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라고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하는 심정을 밝혔다.


실제 문 기수가 일하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개장 이래 14년 간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320여 명이다. 320여 명 규모의 직장에서 2년에 1명 꼴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서울과 제주 경마공원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한국마사회와 시민대책위는 앞서 13일부터 15일까지 문 기수 죽음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제도 개선 등에 대해 집중교섭을 진행했지만 양측이 이견만 드러낸 채 끝났다. 마사회는 문 기수 죽음에 대한 경찰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합의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20일과 21일에도 교섭을 진행했지만 진전 상황은 없다고 전했다.


▲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죽음의 경주'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이끌고 오체투지 행렬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문 기수 영정 앞에서 20배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문중원시민분향소에 붙어있는 쪽지.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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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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