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 폐렴, 소통과 투명성이 중요하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우한 폐렴, 홍콩 상륙 ‘했다’ ‘안했다’ 엇갈리는 이유

감염병의 원인을 알 때보다 모를 때 일반인들은 더 위험하게 느낀다. 거의 모든 위험과 관련한 인식, 특히 감염병 위험 인식에서 통하는 진실이다. 이는 에이즈, 사스를 비롯해 세계 감염병의 역사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지금 중국에서 국지적으로 유행하는 우한 괴질 폐렴이 이를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과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 국가는 물론 한국 등 중국과 교류가 활발한 국가, 나아가 지구촌 감염병 관리 사령탑인 세계보건기구(WHO)가 긴장하고 있다. 중국 후베이 성 우한 시에서 원인을 모르는 폐렴이 집단발생한 사실이 지난달 30일 우한 시 보건당국이 각급 의료기관에 관련 내용을 담은 공문을 인터넷을 통해 통보하면서 알려졌다.

그 뒤 우한 시는 지난 5일 우한 시에서 59명이 감염됐고, 이 중 7명은 중증 환자로 모두 우한 시내 의료 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현재 이들 감염자·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 163명에 대해 추적 조사 중이며 현재까지 사망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우한 시는 인구 1100만명 후베이성 중심도시이다. 유학생을 포함해 한국 교민도 1천여 명 거주하고 있다.

우한 폐렴, 홍콩 상륙 ‘했다’ ‘안했다’ 엇갈려

하지만 ‘우한 폐렴’과 유사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지금까지 홍콩 21명, 마카오 8명, 대만 7명 등 중화권 지역·국가에서 3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우한 폐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런 사실 자체를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있다. 홍콩 병원 관계자도 현재까지 홍콩에서 원인 불명의 우한 폐렴에 걸린 환자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국가 시민들은 중국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2~2003년 중국 광둥 성에서 시작해 홍콩을 허브로 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촌을 강타하며 세계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즉 사스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이번과 유사한 괴질 폐렴(나중에 사스로 명명)에 대해 제때 실태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지닌 위험에 대해서는 일반시민들이 위험을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홍콩 정부는 지난 7일 우한에서 발생한 ‘중증 신형 전염성 병원체 호흡기병’을 법정 신고 전염병에 추가하기로 했다. 발열과 호흡기 급성 감염, 폐렴 등의 증세가 있고 14일 이내 우한을 방문했거나 방문자와 접촉한 환자에 대해선 의료진이 즉시 정부에 신고토록 하고 정부는 이 환자들을 격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전파경로·병원체 모를 때 더 위험하게 인식

중국은 환자들의 가검물(검삿감)을 채취해 병원체를 분석한 결과 과거 사망자를 냈던 조류인플루엔자(AI), 사스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중국 보건당국이 이들 바이러스 감염병의 항체 등을 이미 보유하고 있고 이들 감염병과 관련해 과거 많은 검사 실적이 있기 때문에 기존 바이러스 감염병 여부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람은 전파경로, 병원체, 질병의 특성 등을 잘 아는 감염병보다 이를 전혀 모르는 감염병에 대해 더 공포를 느낀다. 괴질에 대해서는 예방할 수 있는 지식과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필요한 공포를 잠재우려면 하루빨리 전파경로나 어떤 병원체인지 실체를 밝혀내는 일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괴질 폐렴과 관련한 괴담이 널리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2003년 한국에서도 사스 의심환자가 발생하면서 이들을 격리치료할 서울시 공공병원 인근 주민들이 괴담에 휘둘려 환자 이송을 물리력으로 가로막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사스가 공기로 전파되기 때문에 이들이 병원에 오게 되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사스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는 괴담을 믿은 이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에도 정부가 확산의 진원지가 된 병원들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다가 외려 이 감염병의 유행을 확산시킨 것을 물론 온갖 괴담까지 퍼지게 만든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소통과 투명성이 감염병 예방과 관리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터득한 것이다.

한국 상륙, 유행 가능성 모두 낮아

중국 정부가 이 우한 폐렴을 처음 인지한 때는 한 달 가까이 된다. 중국 정부가 밝힌 감염환자수가 한 달 가까운 동안 1백 명이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 감염병의 확산력은 감기나 독감(인플루엔자)처럼 전파력이 강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괴질 폐렴이 상륙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또 상륙한다 하더라도 지난번 메르스처럼 유행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다.

미국 방역당국도 이와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지난 6일 우한 폐렴과 관련해 가장 낮은 단계의 경보 조치인 ‘주의(Watch)’를 발령했다. 이는 자국민이 우한 방문을 취소할 필요는 없지만 현지에서 동물이나 의심 환자와 접촉하지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은 수억 명이 이동하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연휴를 보름여 앞두고 뜻하지 않게 괴질 폐렴이 집단 발생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만약 지금보다 환자가 더 계속해서 많이 나올 경우 춘제라는 날개를 단 바이러스(?)가 ‘우한 폐렴’이 아니라 ‘중국 폐렴’으로 덩치를 ‘헐크’처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설 명절을 앞두고 있어 우한 폐렴이 국내에 상륙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함께 방역 당국은 시민들이 우한 폐렴에 대한 가짜뉴스나 괴담에 휘둘리지 않게 평소 올바른 정보를 효과적 소통수단을 활용해 있는 그대로 제때 알리는 투명성이란 그릇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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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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