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문희상 안'이 위험한 이유

[현안진단] 한반도 평화 전략으로 보는 지소미아 사태의 복기

지소미아 사태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연말을 향해 강대강으로 치닫던 한일관계가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의 종료 연장으로 '일단 멈춤' 상태에 들어갔다. 종료 연장 발표 이후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일본에 대한 압박카드로 유용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수출규제조치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여, 한일관계를 7월 1일 이전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외교는 두 가지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평화 공간의 재건이라는 과제이며 다른 하나는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이라는 과제다. 문제는 이들 과제를 과거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전략과 전술을 거꾸로 세운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는 데에서 문제 풀이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위협받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공간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지소미아 종료를 미국을 통한 대일 압박의 외교 카드로 사용함으로써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겨우 열린 평화의 공간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종료 연장 결정이 한일관계에 거칠게 개입해 들어오는 미국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는 점은 누가 보더라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깊은 실망'을 표명했던 미국은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를 'renew'로 표현하며 갱신을 기정사실화하고 환영하고 있다.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걸쳐 미국은 파상공세로 우리 정부를 압박해 들어왔다. 스틸웰 미 국무부 차관보,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차관보,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부차관보, 조셉 영 주일 미국 임시대리대사 등이 잇따라 우리 정부에 경고를 보냈고, 우리 언론은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발신되는 이야기들을 퍼날랐다.

내퍼 부차관보의 발언은 <닛케이신문> 인터뷰를 통한 것이었고, 스틸웰 차관보의 발언은 주일 미 대사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슈라이버 차관보의 발언은 <닛케이신문>과 CSIS의 공동주최 포럼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발언들은 대부분 일본 경유로 나왔는데, 그 배경에 이들이 일본 정부를 설득하고 있었던 정황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미·일 동맹론자들이 전면에 나서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하던 7월 말 이후 워싱턴 외교가의 주류인 미·일 동맹론자들의 목소리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케빈 메어 전 국무부 일본부장이 일본의 한 간담회에서 쏟아낸 발언이 그 전형이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는 비현실적이며, 한반도 위기 시를 대비해 한·일 안보협력이 필요함에도, 이미 해결된 역사문제를 계속 들먹이는 한국이 지긋지긋하다며 한국을 비난했다.

또 다른 미·일 동맹론자 마이클 그린이 11월 14일, 일본의 보수 인터넷매체인 <니폰닷컴>(nippon.com)에 기고한 글에서도 워싱턴 주류의 한일관계 인식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는 한일관계 악화가 잘못된 대법원 판결로 인한 것이라고 한국의 책임을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일본이 중국 견제라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관계 회복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시점에 그가 내놓은 해법이다. 그는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국가 리스트 전면 복귀를 가능하게 하는 조치로 한국의 체면을 살려 지소미아를 유지하게 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고 일본의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기금을 조성하는 안으로 '징용'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미·일 동맹론자답게 그 어디에도 역사의 정의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징용' 문제 해법은 또다시 과거사 문제를 봉인하는 방법이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소미아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선 배경에 미국이 있다면, 이러한 미·일 동맹론자들이 공유하는 방안이 채택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문희상 의장이 제안하여 논의 중인 법안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거꾸로 선 한반도 평화 전략과 대일 압박 전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냉전과 정전을 전제로 한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대립의 질서를 평화와 협력의 질서로 전환하는 의미를 지닌다. 2018년 판문점 남북공동선언에서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미·일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안보의 공간을 대신해 남·북·미 삼각형으로 평화의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워싱턴에서 미·일 동맹론자들의 입지가 작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소미아를 대일 압박카드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발언권이 다시 커졌다. 지소미아 종료가 대일 압박의 전술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전략 수준의 과제 수행에 도전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애초에 지소미아를 카드로 활용하는 것은 신중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안보적 신뢰관계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강행한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종료시킨다는 우리 정부의 선택은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한편 일단 종료를 선택했다가 이에 복귀한다는 것은,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후 변화한 남북관계의 현실을 우리 정부가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에, 2016년에 처음으로 지소미아를 체결할 때보다도 더 큰 파장을 지니게 될 것임을 각오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소미아 종료 연장 결정 또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이라는 전략적 목표와 어긋나는 결정이었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공간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게다가 지소미아 사태 이후 한국의 대일 외교에서 역사적 정의의 원칙이 실종되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문희상 의장이 강제동원 문제 해법으로 이른바 1+1+α로 논의되는 제안의 원형을 제시한 것이 11월 5일, 와세다대학에서 실시된 강연에서였다. 한국과 일본의 책임 있는 기업이 중심이 되고, 이에 양국 국민의 성금, 그리고 화해·치유재단 해산 후 잔여금 60억 원을 더해 기금을 만들어 피해자에게 지급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11월 5일 와세다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국회

이미 그 방식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반대 의견이 제시되고 있었음에도, 문희상 의장안은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다가오던 11월 19일부터 국내 의견수렴 과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문 의장안이 나오는 배경에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체제의 강화 조짐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으로 남은 60억 원을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에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재단 발족에 기여했다는 형식을 갖추어 보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넓게 강제동원의 한 형태였다고 해서 이를 섞어버리는 것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오랜 시민사회의 노력과 그로부터 전개된 독자적 발전과 성과를 무시하는 처사다.

나아가 문희상 의장안은 시민사회의 노력을 수용하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력과도 충돌한다.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점은 생존자의 명예회복과 상처치유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진상규명, 교육홍보로 이동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여, 자료발굴과 연구가 수행되는 연구소, 도서관, 박물관의 기능이 종합적으로 갖추어지고, 독립적 운영이 담보되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책생산까지 할 수 있는 라키비움(lachiveum, library+archive+museum) 설립이 구상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5월 관련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인권과 평화센터(가칭)' 설립을 위한 추진자문위원회를 발족시켜 논의를 개시했고, 그 과정에서 이 구상은 '여성인권평화재단'의 설립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재단 특수법인 설립을 포함한 위안부피해자법 개정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현재 예산과 인원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과 협의하고 있으며, 국회에서 심의를 준비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법은 이러한 경위를 존중한 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다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강제동원 문제는 역사적 정의의 확인, 정치적 현실의 고려, 사법부 판결의 이행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강제동원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일본 기업의 책임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일본이 인정하도록 하여 '역사의 정의가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일본이 이를 인정하는 것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문제는 장기적인 과제로 남겨두고 해결을 향한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한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의 역사인식을 한·일 양국이 공유하여 확인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한 외교 채널을 여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1차적 노력이 되어야 한다.

이 점이 확인된다면 '정치적 현실의 고려'라는 다음 층위로 올라갈 수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점차 고령화하는 현실이 있다. 강제동원 피해 구제의 1차적 책임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있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일본이 이를 거부하고 피해자들은 고령화하는 현실에서 우리 정부가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하는 것인 바, 그 이면에서 대법원 판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합법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를 법적으로 완성하는 조치로 우리 정부에 귀속되는 책임을 법적 기초 위에서 이행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과의 협의나 협력 없이 우리 정부의 일방적 조치로 국내적으로 실시하면 되는 일이다.

이에 대한 국내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사법부 판결의 이행'이라는 다음 층위로 올라갈 수 있다. 즉 판결을 존중하여 일본 기업이 책임을 이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체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복구와 추진으로 평화 공간을 재건하여 일본을 이 공간으로 이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으로 하여금 역사적 책임을 자각하고 이행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기왕에 지소미아의 종료 유보까지 왔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며, 지금이라도 한반도 평화 전략을 위에 놓고 한일관계를 풀어나가야 지소미아 문제도 제대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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