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민주당 '아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석준 칼럼] 본래 진보정당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6공화국 넘어서기'

이른바 '조국 대전'에서 가장 흔들린 정당은 정의당이었다. 정의당이 고심 끝에 내린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은 조국 찬성파에게도, 반대파에게도 실망만 안겨주었다. 물론 둘 중에서 더 크게 실망한 쪽은 후자였다. 전제가 무엇이든 정의당의 입장은 결국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에 찬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심상정 대표는 이에 대해 거듭 '사과'를 말해야 했다.

이렇게 정의당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나 버렸다. 한때 10%가 넘기도 하던 지지율이 5%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심지어는 내분 중인 바른미래당보다도 지지 순위가 뒤쳐졌다. 그래도 11월에 들어서는 좀 달라지고 있다. 9, 10월에 비해서는 정의당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인다. 일부 조사에서는 10% 안팎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갔다고 그저 가슴을 쓸어내리기만 하면 될 처지는 아니다. 단 한 차례 타격으로 당의 토대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구조와 체질 자체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뼈아픈 것은 조국 반대 성향 지지층이 정의당에서 마음을 돌리며 토해낸 회의와 환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의당이 도대체 더불어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했다.

원내 대표 진보정당이라 자임하는 정의당인데, 이렇듯 '더불어민주당 아류' 혐의를 받는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운동의 역사가 이미 20여 년째인데도 이런 소리를 듣는다. 당장의 지지율 추이와 별개로 이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심각한 위기를 가리킨다.

한국 진보정당의 실제 지지 집단은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층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듣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가령 세대 문제도 있고, 이념 문제도 있다. 이제껏 진보정당운동을 이끌어온 지도층은 민주화 세대인데, 이 세대에 속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민주대연합 정서를 공유한다. 정도 차이만 있지 자주파든 평등파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연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진보정당들 가운데 특히 정의당은 이념 측면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정의당은 이념 스펙트럼이 그 전의 진보정당들보다 오른쪽으로 더 넓어진 편이다. 당 안에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흐름도 있지만, 자유주의에 더 친화성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이런 당 내 분위기는 중요한 순간마다 당 집행부가 더불어민주당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는 단순히 당의 일부 세대나 경향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의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2000년대 민주노동당 시기부터 누적된 문제이고, 한국 사회 전체의 교착 상태와도 관련돼 있다.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이 민주당 계열 정당들과 크게 중첩되며 이에 따라 진보정당의 사회적 토대가 범민주당 세력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현존 진보정당들의 직접적 뿌리가 되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적극적 지지와 결합 덕분에 창당할 수 있었다. 그 전의 민중의당, 민중당 등은 이런 조직 대중의 지지가 없었던 탓에 존립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와 비교해 보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유기적 연계는 대단한 성취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노동계급 기반의 확보로 이해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진보정당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노동계급에 바탕을 두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기대는 곧 벽에 부딪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성장해 민주노총을 탄생시킨 민주노동조합운동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좀처럼 더 확장하지 못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 인구는 전체 유권자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더구나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따라 소선거구들로 나누고 나면, 조직 노동은 더욱 미미한 사회 세력으로 보일 뿐이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을 좌우할 수 있는 노동계급 공동체는 오직 울산과 경남 창원 일부에만 존재했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2004년에 1-2명이 아니라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다들 알고 있듯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부분 도입 덕택이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2년 지방선거부터 개혁 성향 유권자들은 한 장 더 늘어난 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역구에서는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민주당 계열 정당을 찍되 정당투표에서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선택함으로써 당시 집권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더 개혁적인 입장으로 견인하거나 견제하려 했다. 2004년 총선에서 이런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 전략이 대중적으로 구사된 결과가 바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었다.

한데 이러한 선택은 이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번 선거마다 반복됐고, 그러면서 아예 한국 진보정당의 지지 구조로 굳어졌다. 진보정당은 스스로 노동계급 정당을 자임하기도 하고 적대자들에게 '민주노총 정당'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기도 했지만, 실제 지지와 득표의 상당 부분은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층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이들 교차 투표층이 진보정당에게 표를 던진 이유는 진보정당을 범민주당 계열을 대체할 대안으로 여겨서가 아니었다. 이들은 진보정당이 범민주당 세력을 왼쪽으로부터 압박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

2010년대에 더욱 굳어진 진보정당의 지향과 지지 구조의 괴리

정당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그 정당이 표방하는 이념을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고, 처음 창당을 주도한 집단의 색깔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잣대보다 늘 더 강력하게 정당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선거에서 실제 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집단과 정당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선거에서 일정한 득표를 보장해줄 지지 집단이 안정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과, 이 집단이 바라는 혹은 적어도 이 집단을 거스르지는 않는 정치 행위를 해야 한다는 요청만큼 정당의 생존을 좌우하는 명백한 진실도 달리 없다.

진보정당도 결코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 중심성' 같은 오래 된 좌파 이론으로 무장한 채 창당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식 입장과 상관없이 원내 진출 이후에는 엄연한 한 가지 진실에 순응해야 했다. 그것은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지지층의 지향과 정서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정치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원내 진출 이후 곧바로 당 안에서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다만 2000년대만 해도 진보정당운동은 이런 운명의 궤도에서 벗어날 방안을 고민하기는 했다. 그래서 민주노총과의 관계에 대해 논쟁을 거듭했고, '비정규직 정당'이 되는 데서 출구를 찾으려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범민주당 세력이 야당이 된 2000년대 말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2008년 촛불항쟁 이후 리버럴 성향의 시민사회는 범민주당 세력과 진보정당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맞서는 민주대연합을 구축해야 한다며 진보정당운동을 압박했다. 단지 명망가나 언론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진보정당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 집단의 정서와 기대가 그러했다. 진보정당들은 결국 이 바람에 부응했고, 그리하여 최근까지 사실상 민주대연합 노선을 걸었다.

이런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정치 지형은 2016-17년 촛불항쟁을 거치며 뒤바뀌었다. 다시 더불어민주당이 집권당이 됐고, 정의당은 자유한국당과 마찬가지로 야당으로서 정권에 맞서는 형국이 됐다. 순전히 논리적으로만 보면, 새로운 정치 지형에서 정의당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익숙했던 민주대연합 체질에서 벗어나 태세 전환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정의당이 그런 전환을 단행했다는 신호는 아직 없다. 오히려 조국 대전 와중에 또 다시 더불어민주당 아류에 가까운 입장을 보였을 뿐이다. 이는 촛불항쟁 이후 원내 개혁연합의 유지를 둘러싼 복잡한 국면이 지속된 탓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에 이제 하나의 구조로까지 정착된 관성 탓이다. 유일하게 안정적이며 가시적인 지지 집단인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해야만 한다는 관성 말이다. 어쩌면 현재 한국 정치 지형에서 '진보정당'은 범민주당 지지 블록의 '왼쪽' 구성 요소로 굳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진보정당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6공화국 넘어서기'

이런 결말을 두고 여러 가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을 이끌어온 지도층의 '배신'이라고 힐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진보정당의 출발점인 좌파 이념과 노동계급 지향이 민주대연합 노선에 압도당한 결과라고 통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이는 나름 진화의 귀결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자유한국당류와 더불어민주당류의 양대 세력이 정치 지형을 독점해온 역사적 배경에다 결선투표제조차 없는 대통령중심제와 소선거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출 제도가 결합된 승자 독식 정치제도가 완강히 지속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자연스럽게 찾아낸 생존과 발전의 길이라 할 수도 있다. 진보정당이 앞으로도 계속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층의 지지에만 의존하는 한, 이 길 '바깥'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비록 지금 진보정당이 도달한 지점이 상당 부분 어쩔 수 없는 진화 과정의 귀결이라 하더라도, 과연 이것이 2019년 현재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진보정당의 지향과 성격이라 할 수 있는가? 만약 수십 년 여정의 소산이 지금 이 사회에 시급히 필요한 역할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지난 여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야 하지 않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 길의 첫 출발점을 돌아봐야 한다. 본래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라는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던가?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같은 이념을 동원해 설명할 수도 있겠고, 노동계급이니 민중이니 하는 개념으로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인 최근 한국사의 맥락에서 의미를 짚어볼 수도 있다. 바로 이 맥락에서 나는 '진보정당' 프로젝트란 다름 아니라 '제6공화국 합의'를 넘어서는 정치 세력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하고 싶다.

제6공화국 합의란 오랜 군부독재 시기를 끝내고 이후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민주주의 체제이자 그 이데올로기다. 현행 헌법에 명문화된 이 체제는 분명 이전보다 진보한 질서이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통한 내적 퇴보를 촛불항쟁으로 극복할 정도로 상당한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체제는 처음부터 거리와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하면서 군부독재 잔당과 보수야당만의 타협으로 시작됐다. 현 정권에서도 증명되고 있는 바이지만, 이 체제는 출구 없는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위장막 구실을 한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중후보운동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진보정당운동은 이러한 제6공화국 합의가 전혀 '합의'가 아님을 온 몸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군부독재 잔당, 보수야당 말고도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한, 제6공화국 합의는 '합의'일 수 없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성이며, 이를 완성할 주체는 바로 배제된 목소리의 주인공들, 거리와 노동 현장의 대중이다. 이들이 정치 무대에 당당히 진입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다시 쓰여야 한다. 이때 민주주의는 '제6공화국 이데올로기'의 모든 한계를 떨쳐버리고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런 '진보정당' 프로젝트는 6월 항쟁이 절반의 실패로 끝난 그 시점에 필요했던 것만큼이나 2019년 현재 절실히 필요하다. 아니, 30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 더 필요하다. 오늘날 제6공화국 민주주의는 사회경제 개혁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가면서 점점 더 심한 썩은 내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저 거대했던 촛불항쟁조차 '제6공화국 이데올로기'라는 덫에 발목이 잡혀서는 한 치 앞도 더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프로젝트가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금, 막상 현실의 진보정당은 애초의 그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한참 먼 어느 지점에 도달해 있다. 제6공화국 민주주의의 전복을 외치는 세력이 필요한 때에 우리에게 존재하는 '진보정당'이란 어느덧 그 제6공화국 민주주의의 작은 부속품이 된 어떤 정당이다. 역사의 슬픈 역설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슬픈 넋두리로만 끝맺을 생각은 없다. 인간 세상에서는 자연발생적인 '진화'의 힘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전환'의 힘 또한 작동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의당을 비롯한 기존 진보정당운동 대열에서 본래 '진보정당' 프로젝트가 실현하려 한 바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시도가 나타나길 바란다. 외양만 그럴듯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에 고민을 집중하길 고대한다. 2020년 총선을 앞둔 몇 개월은 대중의 관심 속에 이런 전환을 감행할 좋은 기회다. 바꿔 말하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운명을 반전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역사가 설령 후자의 방향으로 전개될지라도 비관까지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진보정당 주류가 전환에 실패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제6공화국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진보정당' 프로젝트에 제대로 임하기 위해 다시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대 진보정당이 길을 잃고 퇴락한 탓에 비워둔 공간은 절대 오래 진공으로 남지 않는다. 반드시 새 세대 진보정당이 나타나 새롭게 행진을 이어간다. 이것이 지금까지 세계 진보정당운동 역사가 증명한 철칙이다. 부디 이 철칙의 또 다른 사례를 확인하기 전에 '진화'의 관성을 압도하는 '전환'의 노력이 시작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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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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