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의사와 간호사가 없다

[서리풀 연구痛] 의료 인력의 '분권화'를 생각할 때

최근 한 공공병원 원장이 국회 공청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국립의과대학병원조차 경쟁적으로 수익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의사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말은 구호에 불과하다....지방의료원의 의사 인력 수급 문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의사)을 구할 수 없어 고액을 주고 스카우트해야 하고, 그 인건비를 주려면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해야 해서 필수의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경영 논리에 따라 밀리게 된다."(☞ 관련 기사 : <국회뉴스온> 11월 22일 자 '국회 복지위,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 위한 공공의대 설립 두고 격론')

'구인난'은 어느 한 인력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현상이다.

"최근 응급실 문을 닫은 전남의 종합병원입니다. (중략) 그래서 나온 대책이 간호사 파견이었습니다. 대형병원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지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도록 했습니다. 2016년 시작됐지만 사실상 실패입니다. 파견된 간호사는 3년간 50여 명에 불과합니다. (중략) 추가 수당이 있지만 생활 터전을 옮기면서까지 지역에서 근무하려는 간호사를 찾기 힘듭니다."(☞ 관련 기사 : <JTBC뉴스> 11월 12일 자 '의료진 인력에 '울상'…정부 대책에도 문 닫는 '지방 병원'')

한국에서는 의사, 간호사, 약사도 시장원리에 따라 노동하고 움직인다. 몇몇 개인의 '사명감'이나 '책임'은 그저 에피소드나 신화일 뿐 시장의 대세를 바꾸지 못한다. 체제의 구성원인 동시에 체제를 강화하는 각 개인을 이렇다저렇다 탓하는 일은 무용하다.

모두 동의하는 현상부터 짚자. 지금 여러 곳, 특히 비수도권 많은 지역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력이 모자란다는 데 이견이 없다.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도 아주 좋은 조건이 아니면 인력을 구하느라 쩔쩔맨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한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을 리 없으니, 어느 것 한 가지 사람들을 끌어들일 '매력'이 모자란다. 임금이 비슷해도 교육이며 생활 여건, 문화, 경력 발전 등이 모두 불리하다. 노동시장에서 구인하는 쪽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해당사자마다 의견이 다른 곳은 딱 한 가지, 어떻게 할 것인지, 해결 방법에 관한 것이다. 방법은 거의 전적으로 관점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단지 보건의료 문제에 국한된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상충하는 관점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중 첫째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첫 번째 태도에 이름을 붙이자면 '불가피론'으로, 단순하게는 국가 관점이라도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요점은 이렇다. 이 좁은 나라에서 노인이 늘고 인구가 줄어들면, 인구, 경제와 경제, 사회문화적 권력은 당연히 대도시로 집중되고 지역은 축소되며 결국 소멸한다. 지역의 기업, 학교, 병원, 문화시설, 대중교통이 경제성을 상실하고 시장은 무너지는 과정이다.

(국가 관점에서는) 인위적으로 이런 지역을 살리려는 것은 대체로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이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공공이 개입하는 것은 당면 문제를 줄이는 정도, 최소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이와는 대조되는 두 번째 접근을 '사람 중심' 또는 '권리 관점'이라 할 수 있을까? 널리 알려지고 현재도 작동 중인 '지역균형 발전론'이 아니라 사람이나 권리를 비교 대상으로 한 데 주목하기 바란다.

여기에서 지역 살리기, 지역경제 활성화, 균형발전 따위는 수단일 뿐, 어떤 지역에 사는 사람이든 골고루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핵심 수단이다. 주민 수가 얼마나 되든, 모여 살거나 흩어져 살거나, '시군구’를 유지하는 것보다 사람이 먼저다.

언뜻 국가적 관점 그리고 대도시 주민은 첫 번째를 취하기 쉽고, 비수도권의 중소도시와 농어촌은 나중 관점을 택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과 권리에 무관한 '지역균형 발전론'은 지방을 강조하더라도 국가 중심 시각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런 지역과 균형은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이나 정치인들의 '예산 투쟁’에서나 반짝 드러날 뿐, 실속 없이 일부의 이해관계를 치장하는 데 그친다.

지역소멸의 위기를 맞아, 지역 의료와 인력 논의에서는 이런 관점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우리는 첫 번째 관점이 훨씬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중앙정부-대도시-수도권-전문가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주로 반영되고, 후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지독한 불균형 상태라 해도 좋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지금 인력이 부족하다는 불만과 불평, 요구는 주로 의사나 간호사를 구하는 쪽(병원이나 기관 또는 고용주)에서 나오고, 지역민과 환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의료기관 운영이 어렵고 응급실을 닫았다고 하지만, 정작 환자는 무엇이 가장 불편하고 힘든가?

문제의 프레임도 그렇지만, 해결 방향과 방법에서는 국가 중심성이 더 강하고 지역과 주민은 뒷전이다. 전체 의사 수가 어떻다는 것부터 그렇다. 국제비교가 어떻다, 일 년에 몇 명씩 의사가 배출된다, 수가를 조정해 무엇을 유도한다 등의 시각이 모두 국가 차원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환자는?

지역, 인구 3만 명을 겨우 넘는 어떤 군에 어떤 의료인력이 필요하고 어떻게 구할 것인지, 그 대책을 세우는 것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붕 떠 있다. 단지 지향과 가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대로 국가 중심, 중앙정부 중심이어서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구하기도 어렵다. 경남 산청군이 응급의학 전문의를 구하려면, 누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여기 필요한 재정은?

기존 권력 관계를 바꾸어 지역과 주민의 필요와 요구, 의견에 토대를 둔 의료인력 논의가 시급하다. 여러 구조 중에서, 우리는 국가와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과 의사결정을 '분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접적으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지 말라. 지금처럼 전국이 한 가지 기준으로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 병원, 건강보험의 기준으로는 둔하고 느리며 부정확하다. 다른 무엇보다, 지역에서 스스로 요구하고 만들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바로 무엇을 하기는 어렵다고 하지도 말라. 분권화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지 충분히 짐작하지만, 또한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분권화 또한 단번에 벼락같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그것이 착실하게 축적을 통해야 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면, 당장 방향 잡기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로 농촌 지역에서 운영되는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 체계만 해도 그렇다. 여러 지방의료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역 사정에 맞추어, 주민들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하여, 필요한 인력을 정하고 기르며 구할 수 있는 '틈'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도가 움직이고 시군구가 자기 일로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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