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은 인간 노동에 대한 '느린 폭력'

[서리풀 논평] 사람을 살리는 노동

김용균 재단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가짜 뉴스가 아니다. 산재 추방과 노동자 건강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활동을 목표로 삼고 지난 26일 공식 출범한 진짜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10월 26일 자 '김용균재단 출범…"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만들자"') 그런데도 뜬금없이 '가짜'를 떠올린 이유는 산재 추방, 건강권, 비정규직 철폐 같은 말이 아득히 멀기 때문이다.

매일 이런 소식이 들리는데, 진실과 '진실 이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음식배달,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에 종사하는 '플랫폼 이동노동자'들이 한달 평균 24.5일을 일하고, 수수료 등을 제외한 실수입으로 월 165만원을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이 주 6일,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지만 4대 보험, 노동조합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에선 배제돼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11월 1일 자 '플랫폼 이동노동자 '우울한 실태'…한달 24.5일 일하고 165만원 번다')

"노인 산업재해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60대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중략) 노인 재해는 상대적으로 산재 인정을 받기 힘들다. 100명이 산재를 신청했을 때, 10대는 96.9명이 승인된다면 60대는 87.8명, 70대는 78.6명, 80대는 57.2명이 산재로 인정받는다."(☞ 관련 기사 : <한겨레21> 1285호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

이 시대에는 살기 위한 노동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목숨을 앗아간다. 과거에도 그랬으나 이제 또 다르다. 극단적이고 어이없는 생명 훼손도 심각하지만, 이 시대의 노동은 천천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병과 죽음을 부른다. 이런 노동은 '느린 폭력'이다. 피가 보이지 않는 총상이고 자상이다.

"한 달 평균 24.5일을 근무하고, 일일 총 근무시간은 13.7시간이었다. (중략)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경우도 많아 "토·일 모두 근무한다"는 답변이 35.3%에 달했다. 업무를 하며 생긴 질병으로는 '수면장애'를 꼽은 답변이 28.3%로 가장 많았다. 신경계통 질환(22%), 소화계통 질환(21%)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다수였다. 우울증을 겪는다는 답변도 12% 나왔다."(<경향신문> 기사 중)

이런 노동체제, 또는 생명체제를 그대로 놔둬도, 아니 더 나빠지도록 부추겨도 괜찮을까? 반(反)생명으로 질주하면서도 한국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출산과 고령화, 노동인구가 어쩌고 생산성이 어떠니 하지만, 이런 사회의 '미래'란 그야말로 한가한 소리가 아닐까?

한 마디로, 일하는 사람, 노동자, 그들의 삶과 보람, 건강과 생명은 극단적으로 소외되어 이제 의례적인 말조차 보태지 않는다. 4차 산업이라는 '선동'과 기업과 자본의 미래, 그리고 가장 후진적이고 반생명적인 노동관은 갈수록 노골적이다.

"세계적으로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자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중략)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도 52시간제가 적용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상당수 스타트업·벤처가 여기에 포함된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하는데 혁신은 언제 하라는 건가."(☞ 관련 기사 : <중앙일보> 11월 1일 자 '"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 지키나"')

무려(!) '4차산업혁명위원장'이라는 사람의 노동에 대한 생각이다. '혁명'을 말해도 이들에게 노동과 노동자란 그저 생산과 이윤의 투입요소에 지나지 않을 터, 그러면서 "이대로는 한국에 미래가 없다"라고 하니 그는 도대체 누구의 어떤 미래를 말하는가. 어떤 혁명인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 이 때문에 생기는 산재 사고는 참으로 오랜 한국 노동의 참담한 전통이다. 그 직접 원인, 아무리 말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의 뻔뻔한 야합은 지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죽음이 일상이 되고 그리하여 생활 세계가 구축되면, 어느 사람인들 삶으로 받아들여야 오늘을 살고 내일을 견딜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소설가까지 나서도 누구도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 사망"에 놀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생명을 부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 내면으로 들어와 내재화한다.

이제 플랫폼 노동이니 '긱 이코노미'니 하는 새로운 경제, 그리고 그 체제가 강요하는 새로운 노동이 보태졌으니, 비인간성과 비생명성은 더 교묘하게 은폐되는 중이다. 비정규 노동이나 플랫폼 이동노동은 흔히 임금과 소득, 안전, 일자리, 4대 보험, 정년 문제로 좁아지고, 노동력, 노동시장, 노동통계 등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켜난다.

"통계청이 비정규직 증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신뢰성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정규직 증가와 관련해 "고용예상기간을 묻는 질문은 (올해도 있었고) 2018년 8월에 이미 있었다""통계청이 고용예상기간을 질문한 게 마치 처음인 것처럼 말하는데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동아일보> 11월 1일 자 '"비정규직 급증은 설문문항 하나 때문"이라는 황당한 통계청')

ⓒ시민건강연구소

당신들에게 무릇 비정규 노동이란 무슨 의미이며, 그 말썽 많은 통계를 들먹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생산해서 비정규 노동을 늘리자는 것인가 줄이자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비정규 노동은 그냥 통계의 한 항목일 뿐인가. 모든 노동은 멀리 인간을 벗어나는 중이다.

모두가 그리고 스스로 노동을 공격할 때 다시 확인한다. 노동과 일이 인간 존재의 가능성이자 한계라면, 생명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노동,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최저 기준이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사람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나쁜' 노동이 생명을 위협하는 명백한 근거이자, 보건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설인 과학적 증거. '임금 수준이 같아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건강이 더 나쁘다.' 물질적 조건이 동일해도 노동의 안정성에 따라 몸과 마음의 건강에 불평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 한 가지만 가지고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쁜 노동은 윤리와 정의에 어긋나며, 야만이고 퇴보이다. 국익과 국가 경쟁력,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일자리, 그 무엇을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는다.

비관적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노동의 인간화, 사람을 해치지 않는 노동, 생명을 살리는 노동. 제대로 된 질문부터 회복해야 하니, 그것은 다시 '무엇을 위한 어떤 노동인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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