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 비무장지대' 동북아, 이대로 방치하면…

[현안진단] 동북아 공동 대처가 시급한 축산안보

돼지 열병이 한반도를 기습하다

우리의 축산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방역당국은 경기도 파주의 돼지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하 ASF, African Swine Fever)이 발생한 것을 확진했다. 이후 경기도 연천, 김포, 강화도 등 휴전선 인근 13개 지역에서 확진 판정이 나왔다. ASF는 인체에는 무해하고 돼지류에만 발병하지만 치명적이다. ASF가 치명적인 이유는 아직 예방백신 및 치료약이 없기 때문이다.

ASF는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고 치사율 또한 거의 100%에 이른다. ASF에 걸린 돼지는 40도 이상의 고열과 피부출혈 증상을 보이다가 10일 이내에 폐사한다. 접촉에 의해 감염되기 때문에 ASF 바이러스에 내성이 있는 야생 멧돼지가 주요 매개체로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형태로의 전이도 가능하다.

ASF는 오랜 기간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이었고 1910년대 케냐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후 1921년 영국의 수의병리학자 몽고메리가 ASF라고 명명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1957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상륙한 이후 이들 지역에선 1990년 말에 이 질병이 근절됐다고 발표했다. 1978년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섬에 상륙한 ASF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07년에는 흑해연안의 조지아에서 발병했고 이후 러시아지역으로 퍼지면서 일부지역에선 풍토병으로 존재한다. ASF가 발병할 경우 국제수역사무국(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에 즉시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56개국에서 ASF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주로 유럽 및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발병하던 ASF가 2018년 8월 중국에서 발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9개월 만인 2019년 5월 북한이 OIE에 발병 사실을 통보했다. 자강도 우시군 협동농장에서 발병했고, 17마리의 돼지를 폐사시켰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이후 확산되고 있다는 추가보고는 없다.

북한의 공식 발표 이후 4개월 만에 한국에서도 발병했다. 아직 감염 경로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아시아 지역으로 ASF가 확산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같은 시기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지역으로도 확산중이다. 우리 축산업계에서는 2010년대 중반 유럽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부터 아시아 지역으로의 확산은 시간문제라며 심각성을 지적해왔다. 우리 방역당국과 양돈업계는 중국에서 발병 한 후 상응한 대책 마련에 부심했으나 결국 ASF는 한국을 피해가지 않았다.

북한에서 발병한 사실이 알려진 뒤 휴전선 인근의 야생 멧돼지는 보이는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랜 경험을 가진 유럽 지역에서는 야생 멧돼지를 생포하는데 주력한다. 그 이유는 야생 멧돼지의 특성 상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 활동 반경이 오히려 넓어질 수 있는데다 사살하면 다른 매개체에 전이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경로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데 그만큼 방역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한 트럭 운전사가 집에서 만든 돼지고기 햄버거를 먹으면서 운전하다가 벨기에 지역에서 남은 햄버거를 도로에 버렸는데 이를 야생 멧돼지가 먹고 병이 확산됐다는 것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멧돼지는 내성이 생겨서 바이러스만 보균할 뿐 사망하지는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육식성 조류 및 야생쥐, 잔반 등 다른 경로로도 얼마든지 옮겨질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동경로를 철저히 차단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역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축산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

우리와 육지로 연결된 북한 지역은 철저한 격리 방역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 시장에서 지난 6월부터 8월 사이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하고 소비도 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 시장에서는 살아있는 돼지를 도축한 경우 1kg 당 약 미화 2달러 정도에 거래되지만, 죽은 돼지를 도축한 경우 절반 가격에 거래된다고 한다.

북한이 OIE에 공식 보고한 직후 시장 가격이 폭락했고 그에 따라 소비도 늘었다는 것은 죽은 돼지고기의 유통이 급증했고 북한 주민들이 가격 하락에 따라 소비를 늘렸음을 의미한다. 시장을 통한 ASF의 확산을 짐작케 한다. 최근에는 다시 돼지고기의 시장가격이 예전 수준 이상으로 오르고 있으며 소비도 줄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ASF 확산에 따른 돼지고기 공급 축소와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북한은 최근 부업축산을 장려해 왔다. 북한의 축산은 국영 및 협동농장의 공동 축산과 개인 가정에서의 부업 축산으로 대분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 내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개인들의 부업축산도 크게 늘었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이 발표했던 자료에 따르면 북한 전체 양돈업의 약 60% 정도가 개인들의 부업 축산이 차지했으니까, 지금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이나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일반 가정에서 돼지를 키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나 공동주택에서 주방이나 베란다 쪽에 우리를 만들어서 2~3마리 정도를 사육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산 목록 중 하나다. 대략 10가구 당 1가구는 돼지, 닭, 토끼 등을 키우고 있다. 돼지 한 마리를 6개월 정도 키우면 장마당에 팔 수 있는데 한 마리 당 80달러, 쌀로는 200kg 정도다. 한 가구에서 1년에 2마리를 키워서 장마당에 판다면 쌀 400kg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가계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재산목록 1호인 셈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키우는 돼지들은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의 사료는 주로 잔반인데, 이를 통한 전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ASF의 발병으로 10가구당 1가구라고 계산해도 상당한 가정에서 주 소득원이 없어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돼지고기는 북한주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는데 ASF가 풍토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북한주민들의 건강 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에서 생산, 유통 및 방역시스템을 가동하면 확산을 억제할 수 있겠지만, 북한은 그 시스템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 1416km에 달하는 중국과의 국경, 19km의 러시아 국경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개인 가정에서 사육을 하니까 ASF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소독 시설 등을 사전에 마련할 능력도 안 된다. 도축시설의 위생관리는 기대할 수 없고, 시장에서 그대로 도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방역을 위해서는 언론 매체 등을 통해 교육을 하거나, 장마당 등에서 단속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이 ASF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낮은 것은 물론이고 인체에 해가 안 되다보니 경각심도 낮다. 지금 북한은 축산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받고 있지만, 북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축산안보의 공동협력이 동북아 공동체의 출발이다

남북한은 DMZ를 사이에 두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야생 멧돼지는 물론이고 조류 등이 바이러스를 전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DMZ가 있어서 물리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효과는 있지만, 언제든지 넘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ASF 발병 지역이 대부분 휴전선 인근 지역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아직 정확한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밝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거나 밝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연성은 분명히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돼지를 사육한다. 중국에 발병하면서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억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 됐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중국인들의 음식에 돼지고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도 2016년 이후 돼지고기가 쌀보다 많은 매출을 기록함에 따라 사실상 주식이 된 상태다. 북한주민들 역시 주요 소득원이자 단백질 공급원에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동북아 지역에 연해 있는 국가들의 식량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짧은 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ASF가 풍토병화할 경우 심각성은 더해진다. 일본도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일본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상태다.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를 주장한다. 안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요 먹거리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것도 역시 안보의 영역이다. 지금이야말로 동북아의 축산방역 공동체가 필요하다. 아니 시급하다. 각국에서 발병한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예방백신과 치료약을 공동 개발해야 한다. 한국만 철저히 방역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겨울철만 되면 조류독감의 홍역을 치를 걱정을 하는 게 당연시된 실정이다.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철저한 예방과 방역밖에 방법이 없다.

한국은 북한과의 협력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북한 축산의 특성상 개인 가정들을 일일이 방역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협력하여 공동 방역시스템을 구축하고 예방백신과 치료약을 개발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 북한이 답이 없다면 중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 및 러시아와 축산안보 나아가 식량안보 차원에서 공동협력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동북아의 평화를 향한 공동체의 출발이 될 수 있다.

거창하지만 공허할 수밖에 없는 동북아 공동체라는 구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직접 위협이 되는 분야부터 협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내 각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환경, 보건위생, 수자원, 에너지 분야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세부적이며 실질적인 분야의 협력으로 성과를 내면서 동북아 공동체의 모습을 구체화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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