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바람'이 다시 분다

[서리풀 논평] 기회와 공정을 넘어, 좀 더 평등한 삶을 위한 논의

또 하나의 공론장이 열릴 것인가, 아니면 세계적 '스타'의 유행 정도로 소모될 것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닌, 다른 나라의 '탁상공론'으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저 유명한 토마 피케티가 새 책을 냈다는 소식에 저절로 떠오른 생각이다.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스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6년 만에 후속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펴냈다. (중략)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출간된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1천 232쪽에 걸쳐 불평등의 기원이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있음을 역사적으로 논증하고 불평등의 심화를 막을 아이디어를 제시한다."(<연합뉴스> 9월 15일 자 ''21세기 자본' 피케티, 6년만에 프랑스서 후속작 출간')

세계적 관심을 받는 만큼 2주 전쯤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후 지금 18가지 말로 번역되는 중이라고 한다(한국어 번역은 연말쯤 출간 예정). 250만 부가 팔린 전작 <21세기 자본>과 비교하여 어떨지 모르지만, 벌써 여러 군데 갖가지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임팩트는 역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여론을 바꾸는 것. 한국에서도 여러 언론이 책을 소개하고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해설과 찬반이 홍수를 이룰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작해 내년까지 어떤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할 것인가?

먼저, 통상압력도 금융자본도 무기도 아닌, 지식과 생각이 국경을 넘어 거의 실시간으로 다른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의 성격도. 이 모든 현상을 '지식 권력'이라 부를 수 있다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그리하여 또한 불평등하다.

지식과 정보, 생각을 둘러싼 권력, 정치, 불평등을 따지려면 실제 내용보다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한국으로 좁혀 보더라도 앞으로 벌어질 일의 과정, 그리고 그를 구성하는 권력, 정치, 불평등은 2014년 <21세기 자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당시 '서리풀 논평'의 문제의식 또한 이를 반영한 것으로, 지식의 동원 또는 소비 과정, 즉 정치적인 것이었다. 오늘 현실도 대동소이니, 좀 길어도 당시 논평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을 양해하시라. 물론, 이번에는 비슷한 '사태'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함께 담는다.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그리고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는 불평등의 '탈(脫)정치화' 또는 '반(反)정치화'가 아닌가 싶다. (중략) 이론, 방법, 자료를 둘러싼 논란은 (당사자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해도) 흔히 연구의 맥락을 탈정치화한다. (중략) 한국이라고 사정이 다를까. 벌써부터 '현황 파악'을 강조하고 '정확한 자료'의 부재를 통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많은(때로 지나친) 토의와 학술 행사도 상당수가 이게 초점이다."(2014년 7월 21일 자 '폭주하는 의료 영리화 – 피케티라면?')

실제 경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의 예측.

"여기에만 머물면 소득 불평등은 정치와 경제, 사회의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학술과 전문성의 영역으로 유폐된다. 잘 알기도 어려운 '지니계수''자본소득분배율' 같은 암호가 권력을 쥐고 사태를 주도할 것이다."(상동)

이런 권력관계 속에서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열풍'은 채 2년을 가지 못했다. 마침 대통령 선거 정국으로 이어졌으나 불평등은 정치화, 사회화, 정책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슷하게 그야말로 잠시 유행으로 지난 것이다.

"토마 피케티를 기억하시는지? 그가 쓴 <21세기 자본>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것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2014년 9월 피케티가 한국에 온 때가 정점이었을 것이다. 자칭 타칭 '진보''보수'를 가릴 것 없이 언론과 사람들은 <21세기 자본>에 열광했다. (중략) 지금까지 경과는 실망스럽다. 유력 후보가 아닌 몇몇 사람만, 그것도 여러 이슈의 하나로 (스쳐 지나듯) 불평등을 말할 뿐이다. 불평등은 '주류화'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세금, 노동, 재벌, 교육, 복지, 보건, 지방자치제를 바꿀 것처럼 말하던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로 갔는가?"(2017년 3월 20일 자 '대선에서 '불평등' 이슈가 사라진 이유')

당시 일이 나아간 순서를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다. '흙수저-금수저' 논란, <21세기 자본>과 피케티 열풍, (한국형) 학술 논쟁, 불평등의 비정치화. 언제 이런 일이 싶지만, 아득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채 5년도 지나지 않았다.(<연합뉴스> 2015년 9월 18일 자 '<빅데이터 돋보기> 청년의 상실감이 만들어낸 유행어 '헬조선'')

이미 시작한 이번 피케티 바람도 시작은 비슷하다. 그 유명한 '수저론'은 '조국 사태'를 맞아 극적으로 되살아났고, 마침 세대론과 계급론도 다시 태세를 정비하는 참이다. 한 가지 더, 기회, 공정, 형평, 배분, 정의, 가치와 목표를 그 무엇이라 부르든 그 현실 기반으로서 우리의 경험과 물질적 토대는 점점 더 뚜렷해지는 중이다.

따라서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지난번과 비슷한 크기로 한국 사회의 반응과 논의를 촉발할 공산이 크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지금 진행되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시비를 넓히고 심화할 둘도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바라자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조건도 있다. 언론을 통해 소개된 책의 중요한 내용 몇 가지는 새로운 논의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은 한 번도 자연스럽게 생겨난 적이 없다는 사실. 즉, 그것은 언제나 '합법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치밀하게 만들어졌다. 모든 체제는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불평등을 정당화시켰고 법과 세금, 사유재산, 교육 체계를 통해 불평등을 공고히 했다."(<오마이뉴스> 9월 5일 자 '6년 만에 입연 피케티 "기본소득 넘어 기본자본으로"')

사회적 논의에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그의 책과 내용이 소개되는 과정과 그 안에 내장된 권력관계야말로 모종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하나의 체제로, 그 자체로 논의를 억압하고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가 강조한 불평등을 온존하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그 지식(생각)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려 한다. 실무가 되고, 정책이 되고, 기술이 되고야 만다. 최소한의 논의로 좁힌다.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일부러) 치우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는 관심, 나아가 그가 제안했다는 몇 가지 정책 대안을 단연코 논란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25세 되면 1억 5000만원 주자" 피케티 신작, 佛 지식계서 논란'(9월 18일 자 <조선일보>)이라는 한 보수 신문의 제목이 드러내듯. 앞으로도 그의 핵심 주장은 '현실성' '가능성' '재정' '실물 경제'에 대한 '논란' '시비' '비판' '반발'로 좁아질 것이 틀림없다.

가장 교묘한 정치이며 이데올로기다.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내놓으라는 주장은 자칫 '현실 불가능성'으로 귀결되고, 이 경우 최선의 대안은 개인 그리고 윤리와 도덕으로 흐르기에 십상이다. 으레 정부의 '결단'이나 어떤 집단의 '양보', 또는 무슨 무슨 권력의 '책임'을 말하는 대안이란 모두 윤리로 말하는 또 다른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렇게 가서는 곤란하다. 다시 피케티의 말을 빌리면,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일이 가장 급하다. 불평등을 넘어서려는 사회적 동력을 한두 가지 정부 정책(정확하게는 이에 대한 시비와 논란)으로 무마하려는 시도에 대항하려면, 먼저 불평등의 정치와 대항 이데올로기를 창조하고 형성하며 강화해야 한다.

특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지금 모든 불평등과 그를 둘러싼 정치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좀 더 잘 이해하는 일,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과제를 거듭 강조한다. 누군가의 말대로, "핵심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바꾼 사람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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