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메르스 교훈을 적용하라

[안종주의 안전사회] 정확한 역학조사가 관건이다.

경기도 파주와 연천 등 경기 북부 지역에서 잇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 처음으로 발생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직접 나서 총력 대응을 주문했다. 가축방역 당국은 밤새도록, 그리고 한낮에도 수천마리의 돼지들을 살처분하느라 바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경기 북부가 아니라 전국으로 퍼지면 양돈농가는 물론 돼지고기 가격 급상승 등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 구제역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치명적이고도 전파 속도가 빠른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사회재난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난은 국가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대형 산불이든, 태풍이나 홍수든, 대형화재든 두말 할 나위 없이 조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총력을 다해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는 재난안전 관리 당국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 모두가 잘 아는 상식이다.

메르스 창궐 등에서 얻은 교훈을 적용하라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 전략은 인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대응 전략과 다를 바 없다. 2015년 우리 사회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을 겪었다. 그 상처는 너무나 컸다. 그리고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교훈을 얻었다. 또 몇 차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대유행을 통해서도 가축 전염병과 인체 감염병 확산을 조기에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정확한 전파 경로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 방역을 하려면 최우선으로 정확한 전파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 초기 역학조사가 중요하다. 1차 저지선은 뚫렸지만 2차 저지선이 뚫리면 낭패다. 위기다. 재난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최초 발생의 원인을 제때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유사한 전파 경로로 다른 양돈농가에서 다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아프리카,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 북한 등지에서 이미 대유행을 겪으면서 어떻게 전파되는지가 완벽하게 파악돼 있다. 따라서 발생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가축방역 당국의 능력을 의심케 할 수 있다.

1차로 북한, 2차로 국외 관련성 캐야

감염 바이러스는 분명 국외 어디선가에서 왔다. 국내 최초 발생지가 북한과의 접경지대이어서 일단 북한쪽을 의심할 수 있다. 북한 유행 지역의 강물을 타고 바이러스가 우리 쪽으로 흘러들었고 이 물을 돼지들에게 주었을 가능성과 북한 쪽에서 넘어온 바이러스 감염 멧돼지와 양돈농가의 농장주나 일꾼, 사육 돼지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 째는 이 가축전염병이 유행하는 국외 지역에서 바이러스를 몸에 묻히고 들어온 누군가가 양돈돼지나 양돈농가의 누군가와 접촉을 해 국내 전파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사람이나 돼지와의 직접 접촉뿐만 아니라 외국 유행 지역을 다녀온 이들이 가져온 오염 소시지 등 축산물 찌꺼기(잔반)가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가축방역 당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파주과 연천에서 각각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서로 연관이 있는지와 이 두 농장에서 2주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낱낱이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최초 발생원인 파악과 함께 다른 지역 전파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효과적 방역 대책을 세워 실행할 수 있다. 만약에 하나 이에 실패한다면 2차 저지선도 뚫리게 되고 마침내 전국으로 확산되는 3차 저지선도 뚫리게 된다.

파주 등에서 이 가축전염병이 확진되기 전에 농장에서 기르던 1백여 마리의 일부 돼지들이 도축 등을 위해 차량을 통해 인천 도축장 등 다른 지역으로 실려 갔다고 한다. 만약에 이들 돼지 가운데 감염된 것이 있고 감염 정도가 다른 돼지나 환경 중에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는 정도였다면 파주와 연천 이외 지역에서도 이 전염병이 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축전염병 유행 때는 위험(위기) 소통도 중요

메르스 창궐 당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지역사회에서 메르스가 유행하는 것이었다. 가정과 일부 병원에서만 메르스가 전파되는 양상이라면 이는 우리의 방역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무차별적으로 시민들 사이에 퍼져나간다면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시 다행히도 그런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 뒤에는 생명을 내걸고 집에도 가지 못한 채 한 달 이상 병원과 지역 사회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한 보건의료인과 방역 당국, 공무원들이 있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전염병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데다 백신도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 전파 차단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메르스 대응처럼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잉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양돈농가와 주민들이 불편하더라도 이를 참아내고 협조하는 것이 맞다.

발생 농장과 2차 전파 우려 지역의 도축장 등 관련 기관과 관계자들은 지난 2주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아주 세세한 것까지 빠짐없이 가축전염병 역학조사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조사관들은 이들이 하는 말 하나 하나를 놓치지 말고 귀담아 들어 정확한 원인 조사와 함께 효과적 방역을 위한 기초자료로 삼아야 한다.

가축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막기 위해 또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위험(위기) 소통이다. 막연하고 비이성적 공포로 돼지고기를 소비하지 않거나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가 인터넷과 사회관계방서비스 등에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시민들은 정확하지 않은 관련 정보 유통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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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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