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며, "나는 미국측이 조미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 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말했다.
동시에 그는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담화 발표 직후인 10일 오전 북한은 평안남도 내륙에서 동쪽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2회 발사했다. 이는 8월 24일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한 지 17일만이자 올해 들어 10번째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기존 방사포의 개량형인 '대구경조종방사포' 및 '초대형 방사포', 신형 전술 지대지 미사일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 단거리 4종 세트의 공통점은 저고도 및 회피 기동이 가능해 요격이 쉽지 않고, 사거리도 크게 늘려 남한의 대부분에 다다를 수 있으며, 고체 연료를 사용해 신속한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들이다. 또한 이동식 차량을 이용하는 만큼 은폐도 용이하다.
북한의 의도는?
그렇다면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에는 응할 의사를 밝히면서 또다시 단거리 발사체를 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북한식 안보공백론' 차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2013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 채택 당시에 밝힌 것처럼, 핵무장과 "상용무력", 즉 재래식 군사력은 대체 관계의 성격이 짙다. 당시 북한이 추진하고 기대한 바는 핵무력을 군사력의 근간으로 삼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재래식 군사력은 억제하고 절약한 자원을 경제발전에 쏟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와 전력화 시도는 비핵화 협상이 본궤도에 올라설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냉정하게 볼 때, 2018년 이후 한반도의 군사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한이 군사 분야에 합의하고 이행하면서 조성된 신뢰는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군비증강과 한미연합훈련, 그리고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다종의 단거리 발사체를 과시함으로써 비핵화를 추진해도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보여주려고 한다. 이를 통해 비핵화 결단 이후 제기될 수 있는 '안보 공백론'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4일 "조미대결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안보환경의 변화와 직결되는 비핵화 대화가 시작된 조건에서 조선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균형을 허물지 않고 유지해나가는 문제는 특별히 중요하게 나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이와 관련해 최선희의 3월 15일 기자회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우리 인민들, 특히 우리 군대와 군수공업부문은 우리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 수천통의 청원 편지들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핵포기에 대해 북한 내부, 특히 군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공교롭게도 4주 후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안보 환경을 불확실성을 강조하면서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주문했고, 그 이후 9월 10일까지 모두 10차례의 단거리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이 사이에 판문점 회동, 친서, 최선희의 담화 등의 방식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에게 협상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내부 불만을 달래면서 본격적으로 대미 담판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까닭이다.
지독한 역설들
바로 이 대목에서 지독한 역설을 보게 된다. 흔히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를 두고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이 나오지만, 그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북한의 유감스러운 언행 속에서도 희망의 근거를 살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독한 역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남북한 정상들은 작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급 군비증강에 나선 상황이고, 북한은 이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역대급 단거리 발사체를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북미회담 분위기와 남북관계의 악화가 교차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북미회담은 실제로 열려야 열리는 것이고, 또한 그 성과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미회담 성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남북관계 회복에도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대규모의 군비증강 계획을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발사체 발사를 중단하고 남북한이 합의한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가동에 협력해야 한다.
작년 남북관계에는 영화와도 같은 명장면이 많았었다. 그 가운데에는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북한군 수뇌부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하는 장면도 있었다. "단계적 군축" 합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었다.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선 남북한 국방 책임자들이 군사 분야 이행 합의서에 서명하는 장면을 남북한 정상들이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장면도 있었다.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 당시 가졌던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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