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타협'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김빠진 경사노위, 2기는 더 무력할 듯

1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사실상 해체되었다. 개인적으로 1기 경사노위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도 있겠으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노사정 관계의 역사를 볼 때 구관이 명관인 국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이 봉착한 문제이기는 하나, '사회적 대화'의 판에도 쓸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문성현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위원들이 그대로 남을 것으로는 보이지만, 청년-여성-비정규직 계층 대표 3인 같은, 노사정위원회가 경사노위로 개편되면서 도입되었던 새로운 시도는 빛이 바랠 게 분명하다.

법대로 하길 꺼려 망가진 경사노위

1기 경사노위가 무력해지고 김이 빠진 게 경사노위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경사노위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무리한 압박과 개입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의회대의제를 무력화하는 자유한국당을 달래 뭔가 해보려고 노동 정책의 기조를 쉽게 수정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의 태도가 문제였다. 가장 대표적인 게 법대로만 하면 되었던 노동시간 문제다.

근로기준법은 하루 8시간과 주40시간을 명시해 놓았다. 주당 연장근로는 최대 12시간만 가능하다(주52시간). 이를 무시한 노동부의 '주68시간 행정해석'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공권력의 법집행 의지가 관건인 노동시간 문제를 경사노위에 던져놓고 노사가 알아서 합의하라는 정부 여당의 태도가 문제였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법에 있는 대로 정책을 시행하면 되는 사안을 경사노위에 모인 노사가 합의하라고 압박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국가의 기본 의무를 사회적 대화 의제로 둔갑 시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문제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했다. 기본협약 87호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는 노사 간 합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의지 문제다. 노동자단체가 됐든 사용자단체가 됐든, 그 결성과 운영에서 국가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게 협약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현행 대한민국의 노동법 체계를 보면 사용자단체에 대한 억압과 규제의 조항은 없는 데 반해, 노동자단체에 대한 억압과 규제의 조항은 많다. 노동조합법이 대표적인데 노동조합이 잘되라고 노동자를 북돋우는 법이 되지 못하고, 노동조합이 잘 되지 말라고 정부가 노동자단체의 발목을 잡도록 허용하는 조항들이 많다.

노사 단체에 대한 국가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없애라는 것이 ILO기본협약 87호의 내용이다.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에 결사의 자유를 허용할 지 여부를 두고 국가가 스스로 결단할 문제를 그 수혜의 대상인 노사 양자가 알아서 합의하라고 종용했으니 그 뒤끝이 좋을 리 만무하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셈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국가의 비겁한 의도에 복무하여 '공익위원 합의안'이라는 사기극을 펼친 노동법 교수를 비롯한 법 기술자들의 행태는 비난받아야 한다.

정보와 협의에 충실해야

유엔 산하 노사정 3자 기구인 ILO에 따르면, 사회적 대화는 정보-협의-교섭이라는 꼭지점을 가진 삼각형과 같다. 여기서 정보와 협의와 교섭이 갖는 가치는 동일하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지 않다는 말이다.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어느 하나가 부재하면 다른 둘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우리 상황에서는 정보의 교환과 협의의 진행이 늘 문제가 되어 왔다. 특히 정부 관료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았다. 정보가 부족하니 협의가 내실 있게 진행될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과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집착해 노사 양자에게 교섭을 압박했고, 그 후과는 우리 모두가 목도한 바다.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의 수준은 정보의 양과 협의의 질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노사 간 교섭을 압박했다. 어설픈 교섭을 통해 마련된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 리 없다.

사회적 대화, 노총들의 일상 활동

필자는 '이명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노동조합운동, 특히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교섭을 통해 합의를 하라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내고 노동자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정부 정책들에 대해 노동조합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조합 내셔널센터(national center)의 일상 활동은 조합원 조직이나 단체교섭보다는 사회적 대화여야 한다.

노사관계 현장에서 오랜 경험과 식견이 있는 이가 맡았던 경사노위의 상임위원 자리가 관료로 교체되고, 그동안 경사노위 운영에 비협조적이었던 비정규직-여성-청년 등 계층 대표 3인을 해촉함으로써 1기 경사노위는 막을 내렸다.

2기 경사노위에서는 노사 단체, 특히 노동조합보다는 관료들의 입김이 강화되고, 정부 방침에 협조적인 계층 대표로의 교체를 통해 위원회의 운영이 보다 효율적이고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 때문에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의 경사노위의 역할은 위축되고 심할 경우 껍데기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1기 경사노위에 비해 2기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표성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정당성도 훨씬 취약해졌다.

정부-국회가 할 일, 경사노위에 미뤄선 안 돼

이러한 약점들은 2기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1기 경사노위의 전철을 되풀이하여 2기 경사노위가 정치권과 관료들의 주문을 처리하는 정부 정책의 보조 기구를 자임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하에서 사회적 대화는 또다시 파탄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사노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할 일은 정부가 하고 국회가 할 일은 국회가 하는, 한마디로 국가기관 역할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을 경사노위에 미루는 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국면에서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ILO협약 87호(노동조합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개입 금지)와 98호(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를 통한 노동자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를 비준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2기 경사노위가 충분한 정보의 공유와 충실한 협의의 실천을 통해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 기구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의 핵심은 어설픈 교섭이 아니라 풍부한 정보와 충실한 협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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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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